▲2007년 뮌헨 회담에서 연설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Russian Presidential Press and Information Office
체제붕괴 직후 러시아 외교노선에서 아시아의 중요도는 급격히 하락하였다. 1994년 2월에 발표된 안드레이 코지례프의 문서에서 아시아는 CIS, 유럽, G7 국가들 이후 네 번째 중요한 지역으로 거론된 바 있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는 다시금 대 아시아 외교를 강화해 왔다. 푸틴의 후임 메드베제프 대통령은 푸틴 외교노선의 기본적인 틀을 근본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의 기구들에 대한 러시아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2012년 APEC 정상회담이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극동 및 자바이칼 개발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등 동북아와의 협력은 앞으로 더욱 긴밀해질 예정이다.
또한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서 태평양함대에 핵잠수함 배치를 추진하는 등 극동지역의 전력을 강화해오고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도는 직·간접적 측면에서 상승하고 있다. 동북아시아는 공동의 지역 안보레짐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데다 특히 북핵문제로 인하여 세계적 차원의 안보위협 요소가 상존함으로 인하여 중국, 일본, 미국 등 강대국들간의 패권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하는 6개국의 군사지출이 전 세계 군사지출의 65%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러한 동북아의 잠재적 안보위협 상황에서 러시아의 동북아정책은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갖는다. 러시아는 무엇보다도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견제하고자 하며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력을 복구하고자 한다. 동시에 러시아의 동북아정책은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경제개발을 위한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관계의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러-중 및 러-일 관계첫 번째, 미국의 헤게모니를 견제하기 위하여 러시아는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긴밀히 하고 있다. 러시아는 1996년 4월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에 서명하였으며 2001년 친선협력조약을 맺었다. 또한 카자크스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과 공동으로 구성한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하여 정치·경제·군사적 협력을 심화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는 표면적으로는 이슬람근본주의와 테러리즘에 대한 공동전선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한다는 공동의 목적 하에 구축된 중앙아시아-중국-러시아를 연계하는 지역안보레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는 군사적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왔으며 중국에 SU-27전투기, S-300지대공 미사일시스템, 최신예 T-80 탱크 등을 판매하고 첨단군사기술을 이전하였다.
중국과의 정치·경제·군사 협력의 강화는 서유럽 NATO 확장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나토는 지난 몇 년간 러시아의 전통적인 세력권이라고 할 수 있는 동유럽을 서서히 잠식하여 들어왔으며 최근에는 러시아의 접경국가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가입협상이 진행중이다. 또한 미국은 이란의 유럽공격에 대한 방어를 이유로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메드베제프 대통령은 미국이 미사일방어기지건설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재래식무기감축협상을 중단하고 칼리닌그라드와 벨로루시에 미사일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응수한 바 있다. 러시아는 또한 그루지야의 반러 성향에 대하여 '5일 전쟁'이라고 칭해지는 그루지야 침공으로 대응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공히 나토의 확장과 미국의 독주에 대한 견제장치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협력의 상대만은 아니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오고 있으며 천안문사태 이후 중단되었던 군사협력을 클린턴 정부 이후 적극적으로 재개해온 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대 일본관계 역시 관리해오고 있다. 러일관계는 남쿠릴 열도문제로 인하여 경색되어 있는 상황이며 이는 동북아의 긴장을 불러오는 주요 영토분쟁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자원개발에 일본의 풍부한 재정자원을 동원하고자 하며 일본 역시 일정한 경제협력의 이점을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지배구조에 대한 견제가능성 확보 및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서의 러시아의 지지 확보를 위하여 러시아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