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앉아서 밥 얻어 먹을 수 있는 거야?"

식구들한테 요리 전수하기...남편이 만든 잔치국수

등록 2009.01.12 15:36수정 2009.01.1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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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완성된 잔치국수 송송 썰은 김치를 얹어 매콤한 것이 어른용으로 적당하다.

완성된 잔치국수 송송 썰은 김치를 얹어 매콤한 것이 어른용으로 적당하다. ⓒ 송진숙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엄마가 뿔났다>가 아니더라도 정말 나도 다른 가족들처럼 늘어지게 쉬어 보고 싶다. 일요일날 늘어지게 자고, 나 먹고 싶을 때 먹고, 책 읽고 싶을 때 방해받지 않고 책읽고 싶고.


요즘 시간이 나서 모처럼 맘에 드는 책 골라서 읽다가 수십번 일어나게 된다. 아침상 차리러, 세탁기 빨래 넣으러, 세제 넣으러, 유연제 넣으러, 간식거리 고구마 구우러, 다된 빨래 널으러.....
어느덧 점심때, 남편이 점심을 뭘 먹을 거냔다.

"글쎄, 칼국수 끓일까? 간단히 라면 먹을까?"
"잔치국수 하지. 내가 할게"
"할 줄 알아?" "가르쳐만 줘"

예전같으면 시키는게 더 힘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했다.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가지가지 다 가르쳐 줘야 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위치까지 가르쳐 줘도 못찾는 경우가 많아 가르쳐주고도 꺼내주러 일어나야 했다. 결국 지쳐서 포기하고 내가 하곤 했다.

이젠 생각을 바꿨다. 귀찮아도 가르쳐줘야겠다. 그래야 다음에 스스로 하지.

"여보, 이리와 봐."
"다시물은 이렇게- 중간냄비에 2/3쯤 물을 넣고 잘라놓은 다시마 한 줌, 냉동실에서 굵은 멸치 꺼내서 한 줌, 표고버섯 잘라놓은 거 한 줌 넣어서 가스불 위에 올려 끓이면 돼"
"제일 큰 왕냄비에는 물을 4/5쯤 넣어 끓여(3인분). 물이 끓으면 국수는 한 줌이 대략 1인분(저울에 재더니 150g이란다-나중에 삶은 국수가 남아서 120g정도로 수정해야 할 듯하다)이니까 3줌을 넣어 끓여"
"다시물은 끓으면 건더기는 바로 건져내고 냉동실에 있는 썰어놓은 파 두 줌 쯤 넣고 계란은 대접에 두개를 풀어놨다가 팔팔 끓는 다시물에 (가스를 끄고) 가만히 넣어(이때 절대로 젓지마. 그래야 국물이 맑거든)."
"국수는 끓을 때 몇 번 저어주어 덩어리지지 않도록 해"


들어와 책 읽다 국수 끓는단 소리에 나가 익었는지 봐준다.

"면이 다 익었으면 불끄고 수돗물 틀어놓고 소쿠리에 건져 흐르는 물에 잘 비벼서 끈적거리지 않게 해"
"면기에 헹군 면을 넣고 만들어놓은 국물 가만히 붓고 김장김치 송송 썰어 올리고 김부스러기 올리고 참기름 살짝 돌리고 통깨 뿌려주면 끝"


"이제 할 수 있겠지? 다음엔 내가 안거들어도 되지?"

"당신 좋아하는 김치넣은 텁텁한 국수(의정부 사람들은 털랭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겨울에 만들기 쉽고 간단하고 뜨겁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자주 해먹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물의 양을 잘못 맞추면 국수가 불어터져 국물은 오간데없이 꼭 O밥같아 아이들은 질색이다-남편은 식사 한끼 좀 해보라면 꼭 이렇게 만들어 식구들의 왕비호 음식이다)만 하지 말고 이렇게 해줘."

그동안 식구들이 독립을 못한게 아니라 어쩌면 내 스스로 독립을 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다른 식구들을 세우는게 아니라, 내가 먼저 홀로 서서 그들이 일어설 때를 기다려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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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숙

#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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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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