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을 갖기보다 별장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아프리카에서 보낸 한 철 4]

등록 2009.01.14 09:14수정 2009.01.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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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 관계와 사업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조건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승리'라는 어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승리라는 단어는 이미 상대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승리' 대신 '행복'으로 바꾸겠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끊임없이 승리하는 법을 훈육하고 교육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고의 접근 방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희생을 안기는 '승리' 대신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상생'이어야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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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어린이 에이즈 퇴치를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저도 몇 랜드를 보탰습니다. ⓒ 이안수


여행이 제게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법을 제게 가르쳐줍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고자 했던 곳에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함박 웃음과 제가 도달하고자 했던 그 곳에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의 손짓 한번이 앞으로 무수히 마주쳐야 할, 제가 양갈래길에서 어느 길을 택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일소해 줍니다.

제가 여행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홀로 승리하는 법 대신 함께 행복해지는 법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행도 피아 경계를 허무는 마력이 있습니다. 첫 대면에서는 머슬머슬했던 것들이 시간과 함께 계면 활성제를 뒤집어 쓴 옷의 때처럼 떨어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일주일. 이제 애초의 그 서먹함은 사라지고 요하네스버그의 어떤 사람들과도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이곳에서의 사람들이 제게 기꺼이 표면활성제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어제 다시 소웨토에 들어갔었습니다. 아리잠직한 고등학교 일학년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깊이 파인 재킷에 뽕브라(볼륨 업 브래지어)를 하고 가슴 계곡을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13살의 그 소녀들은 소웨토에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멋을 내고픈 성급한 마음이 어른들의 스타일을 쫓았지만 아직 앳되고 천진한 표정을 숨길 수 없듯,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속내를 감출 수는 없지요. 그들은 행복이 부자들의 높은 전기 담장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없는 소웨토의 낮은 지붕 아래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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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멋을 부린 이 13살 천진한 소녀들에게서 소웨토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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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했거늘 소웨토에는 차를 탄 사람과 차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천의 자동차 수리소에서 자신의 차 수리를 맡긴 차주의 느긋한 표정과 그 차 아래의 비좁고 위험한 공간에서 용접봉의 불똥을 얼굴로 맞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이안수


일요일, 한성트레이딩의 문정심 선생님과 하트비스푸르트 댐(Hartbeespoort Dam)의 한나절 나들이를 즐겼습니다. 이 댐은 깊은 내륙에 사는 요하네스버그 사람들을 위해 만든 레저용 댐입니다. 그 호수의 크루즈 위에서 건너편 물가 별장들을 보면서 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별장 안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요트를 타다가 와인 파티를 하고, 지치면 잠들겠지요? 하지만 저 별장을 제가 소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별장을 가진 친구들 두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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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즐기는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 별장을 소유하기보다 별장 있는 친구를 사귀는 법을 압니다. ⓒ 이안수


그렇습니다. 소유 대신 점유가 중요합니다. 많이 소유하기 위해 유한한 시간을 몽땅 허비하기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행복을 누리는 그 짧은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우리 모두가 저 호화별장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설혹 소유권을 누구로부터 받았다 하더라도 관리와 유지는 우리를 뼛골 빠지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별장을 소유한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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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비스푸르트 댐은 발전이나 식수가 아닌, 레저용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땅이 갈 곳이 없는 조벅의 사람들은 주로 이곳에서 하루 나들이를 즐깁니다. ⓒ 이안수


어젯밤 윤과 애릭은 오늘 떠나는 저를 위해 작은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산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웠습니다. 피자에 와인도 한 병 곁들였습니다. 스스로 어릴 때 한국을 벗어나 여러 나라를 떠돌며 공부했던, 그래서 코즈모폴리턴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윤, 과묵함과 큰 신뢰를 느끼게 해주었던 싱가포르의 애릭. 이들의 존재가 제게 큰 힘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곳 부족함이 없었던 별 다섯 개의 호텔을 벗어납니다. 참 넓고 쾌적하며 안전했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누려볼 수 있을까 싶은 호화로움과 편리함이 있었습니다. 여행자는 유목하는 사람입니다. 목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곳은 더 없이 좋은 초지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유목자는 한 초지에서 안주를 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종국에 한 초지를 황폐화시키며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지붕 없는 길 위와 숲속과 사막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일말의 아쉬움도 없습니다.

20년 전에 이곳, 조벅으로 오신 한태철 선생님은 아버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7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서야 한국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의 안온한 둥지, 한국으로부터 이렇듯 먼 남아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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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B CBD의 중심가 인도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한 아이의 어머니. 이 분은 짐을 들고, 이고 어깨에 걸쳤습니다. 그리고 등에는 아이를 업었습니다. 삶은 이처럼 질기고 숭고합니다. ⓒ 이안수


저는 앞으로 약 50일간 남부아프리카 지역에서 크게 신뢰받고 있는 '노마드 어드벤처 투어'(Nomad Adventure Tours)의 다국적 오버랜드 트럭(Overland Truck) 여행에 동반하게 됩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남아공 전역을 비롯해, 남아공 내의 작은 두 왕국 스와질랜드와 레소토 그리고 인접국인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를 돌아 조벅으로 되돌아 온 다음 현지시간 3월 1일에 O.R 탐보 국제공항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3월 2일에야 헤이리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장대한 여정은 남부아프리카의 장엄한 자연과 그 자연 속에 생명을 의탁한 모든 생명들, 이곳에서 처음 원시 모듬살이를 시작했던 인류의 흔적들, 아직도 그들의 습속을 고수하고 있는 부족들, 이곳에 도시를 일구고 현대를 사는 대처 사람들의 삶을 모두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 장엄한 자연과 진솔하고 진지한 사람들의 속살과 속내를 수만 장의 사진과 글로 담아 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절제되지 않는 술과 담배로 이미 많이 파괴되었겠지만 여전히 100조개는 넘을 저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시켜 가겠습니다.

앞으로 이 호텔을 벗어난 뒤의 네트워크 환경은 알 수가 없습니다. 여건이 허락하면 간간히 안부를 남기겠지만 소식이 뜸해도 제가 자연의 품속에 있음을 의심치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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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벅을 떠납니다. 또 다른 초지를 찾아….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 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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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NOMADTOURS #요하네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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