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초임은 150만원도 안 돼... 깎자고?"

청와대의 '대졸 초임 삭감' 논의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생각

등록 2009.01.16 18:02수정 2009.01.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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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제2차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안정시켜 고용을 늘리는 이른바 '잡 쉐어링'(job sharing)에 대한 제안도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로 공기업 대졸 신입사원들의 초임을 깎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도 거론됐다.

이날 김기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고용 증대를 위해 대졸 초임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공기업에서 먼저 선도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청와대쪽은 이런 제안에 대해 이 대통령이 "검토해보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대졸 초임 삭감' 논의에 대해 취업을 코앞에 둔 대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취업 준비생들 이야기는 들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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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한 4년제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취업관련 특강. 각 대학 교양 수업에서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 등을 초빙하여 취업과 자기소개서 작성 등을 지도하는 강의가 매 학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송주민


취업준비생 하유영(가명·24)씨는 "'낮아진 임금을 받고도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 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가 없지 않느냐,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나누기보다는 능력껏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다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김나라(가명·22)씨는 "임금을 줄여 그만큼 정규직 채용을 높이면 좋지만, 말만 쉽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임금을 많이 받는 직장에 가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동기부여가 없어지면 의욕도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 서영훈(27)씨는 "지금도 사람들이 돈을 안 쓴다"며 "소비를 진작한다고 하면서 연봉을 줄이면 나부터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효과 없는 미봉책에 불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단보다 10배 높은 임원 연봉 낮추는 게 효과적"

이날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주요 국가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대비 금융업계의 대졸 초임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61%, 일본은 135%, 한국은 207%로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며 선진국과의 비교사례를 들어 '대졸 초임 삭감'이 가능하다는 근거 수치를 제시했다.


이날 청와대 회의에서 거론된 '대졸 초임 삭감' 방안은 공기업을 예로 든 것인 데다, 아직 아이디어 수준인 상태여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만약 이같은 방안이 시행된다면, 공기업에 이어 금융계와 일반 기업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취업 준비생들은 만약 이같은 방안이 문제점에 대한 대비책 없이 구체화될 경우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졸업 후 취업준비 중인 오미란(27)씨는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도 초임은 낮은 수준이었다"며 "일부에 국한된 고액 연봉을 너무 확대 적용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올해 대학 4학년인 최경숙(28)씨는 "금융업계야 기업체에서 가장 연봉 높기로 유명하다, 중소기업은 월 150만원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걸 낮추면 되느냐"며 "말단들의 10배씩 되는 임원들 연봉을 낮추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대졸 초임에도 거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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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모별 대졸 초임 한일 비교(2007) 한국경총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00인 이상 대기업 대졸 초임은 평균 2만9806달러로 일본의 동일규모 기업 평균 2만5256 달러보다 18.0%(4550달러)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 한국경총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대졸 초임이 계속 유지된다면, 취업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2월에 조사해 최근 발표한 '주요국의 대졸 초임 비교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규직 대졸 초임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1000인 이상 대기업 대졸 초임이 일본에 비해 18%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립대 건축과 4학년 신지은(24)씨는 대졸 초임 거품론을 이같이 주장한다.

"대졸 초임에 거품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게 취업난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누구나 초임 연봉 3000만원 이상은 받으며 일하고 싶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기업은 경쟁률이 세서 들어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임금이 높을수록 선호도가 높아지고 거품이 꺼지기 쉽지 않다."

오는 2월 취업 예정인 이강아(가명·26)씨는 "정말 취업 문을 뚫기 힘들었다"며 "임금을 조금 덜 받더라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생긴다면 기꺼이 감수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당시의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청와대의 지하벙커에서 논의된 '대졸 초임 삭감' 방안은 경제위기 한파 속에 최악의 취업대란을 겪고 있는 예비 취업자들에게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찬반 의견 모두 '일자리 확대'에 대한 바람만은 똑같다. 아울러 대졸 초임 삭감 방안이 일자리는 늘지 않고, 임금 등 복지만 후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현실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 또한 높다.

덧붙이는 글 | 이나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나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취업 #취업준비생 #대졸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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