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길고양이골목길 길고양이는 골목집 기름통에 앉아서 낮잠을 잡니다. 잘 자고 있는데 제가 옆에서 사진 찍으며 지나가니 슬쩍 뒤돌아보기는 해도 그냥 웅크리고만 있습니다. (인천 동구 만석동 골목길)
최종규
집에 물이 나오지 않으니 괴롭지만, 집 앞에 있는 지하상가 뒷간에서 물을 떠 와 그럭저럭 씻기도 하고 보일러에 넣기도 하니 지낼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상가가 일요일 하루 동안 문을 닫고 쉬는 바람에 물 한 방울 만지지 못하고 지내고 맙니다. 여느 날이 아닌 일요일에 지하상가가 쉰다니 놀랍고, 지하상가가 쉰다고 건널목 없는 이곳 인천이라는 동네에서 찻길을 가로지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 다니라고 이리 하나 싶어 놀랍니다.
인천시에서는 이 지하상가를 '전통공예 특화 관광명소'로 삼고자 5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공사를 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한다며 지하상가를 거쳐 길을 건너는 동네사람 발걸음을 막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관광명소도 좋고 전통공예 지하상가도 좋습니다만, 먼 데서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보여줄 무엇인가에만 마음을 쏟는 나머지, 정작 이런 '관광명소'를 옆에 끼고 살아가는 동네사람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어떤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ㄷ출판사에서 전화가 옵니다. 곧 펴낸다는 자전거 이야기책에 넣을 제 사진을 저보고 한 장 찍어서 보내 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마 하고 말했지만 제가 제 사진을 찍어야 한다니, 더구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찍어야 한다니, 게다가 골목길에서 자전거 타는 모습으로 찍어야 한다니, 참 까마득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할 텐데, 맡아 줄 만한 분이 있을까 모르겠고, 맡아 준다 한들 제가 바라는 느낌으로 담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보다, 이제까지 '자, 사진 찍자' 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이 없었기에, 어떤 틀에 따라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일이 고달픕니다. 고향동무한테 연락해서 몇 장 찍어 봅니다. 처음부터 썩 내키지 않았기에 사진을 찍는 내내 조금도 달갑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는 그만두고 동무녀석하고 두어 시간 남짓 수다를 떱니다. 동무녀석이 그 골목집에서 살았던 이야기, 지금 자리에서는 스무 해 넘게 살았고, 그에 앞서는 바로 앞집에서 살았으며, 몇 해 앞서 지금 집 바로 앞집에서 불이 나서 자기 어머니와 누나가 다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둘이 골목집 담벼락에 붙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동네 분들은 꾸준히 지나다니고, 동무녀석은 한 분 한 분 인사를 건넵니다. 교회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세 식구 뒷모습을 슬쩍 사진에 담는데, "야, 요즘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사람들 사진 함부로 찍어? 미○○○ 붙잡아 간 거 몰라?" "그래서 앞모습 안 찍고 뒷모습만 찍잖아." "뒷모습만 찍어도 위험해." "그래, 그래서 요새는 뒷모습 찍기도 잘 안 하고, 아예 사람을 못 찍겠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