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관광객들 "한국 사주는 정말 놀라워요"

[현장] 경기 불황에도 사주카페는 성업중

등록 2009.01.20 15:07수정 2009.01.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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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어렵고 해서 공무원 준비나 해볼까 하는데, 잘 될까요?"
"니 사주에 관운이 들어있어야지."

15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의 한 사주카페. 평일 낮 시간인데도 카페의 12개 테이블에는 빈 곳이 없었다. 한 테이블에서는 역술가의 사주풀이가 한창이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20대들이 차를 마시면서 역술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주카페에서는 비단 20대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사주카페를 찾았다. 경기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 사주카페만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10대 고등학생도, 20대 취업준비생도 사주카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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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카페와 역술인 사주카페에 온 20대들이 역술가의 사주풀이를 유심히 듣고 있다. ⓒ 이나영


A사주카페 주인인 역술가 류광렬(47)씨는 기자에게 "보름 동안 손님이 이만큼 많이 몰렸다"며 2㎝두께의 연습장 하나를 내보였다. 이 연습장은 상담 기록으로 빼곡했다. 그 중 10대들의 상담 기록이 눈에 띄었다.

류씨는 "얼마 전 고등학교 1학년생이 와서 문과·이과 중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사주를 봤고, 또 몇 해 전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사주 봤던 학생이 이젠 선생님이 돼 제자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입시철이라 교복 입은 10대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사주카페를 가장 많이 찾는 연령층은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20대 취업준비생이다. 특히, 올해는 경기 불황이 극심해지면서, 취업 걱정에 애타는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사주카페를 찾고 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손님들도 가득 찬 A사주카페에서 구인호(29)씨를 만났다. 그는 "이제 곧 졸업인데,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이라며 "사주풀이를 듣고 나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B사주카페에서 만난 박진아(23)씨는 "2월 졸업하는 세 명의 친구들과 같이 왔다"며 "아무래도 경기가 어려워 취업이 어렵다 보니 앞으로의 진로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역술가 도강(45)씨는 "'취업이 힘들다'며 사주카페를 찾는 20대가 많다"며 "이들은 '공무원을 준비할까', '사업을 해볼까'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데, 이에 대한 카운슬러 역할까지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주가 폭락에 이혼 상담 부부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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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카페 이대앞의 한 사주카페, 이대앞에만 이런 사주카페가 22개나 있다. ⓒ 이나영

최근 사주카페를 찾는 직장인들도 많이 늘었다. 류광렬씨는 "얼마 전 외국계 은행을 다니는 한 30대 전문직 여성이 증권회사로의 이직을 상담했다"며 "이 여성처럼 이직 상담을 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어렵게 취업을 한 사회초년생도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계약직인 이아무개(27)씨는 "경제가 어렵다 보니, 재계약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회사에서 치가 불안하다"며 "어느 시기에 어느 직종으로 이직을 해야 나쁜 운을 피해 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주카페를 찾았다"고 밝혔다. 얼마 전에 취업했다는 최다운(25)씨도 "지금의 직장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사주카페에는 40·50대 이상의 연령층도 눈에 많이 띄었다. 경제 불황으로 철학관의 기본 복비 3만~5만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사주카페의 경우, 복비가 1만원으로 철학관에 비해 저렴하다.

특히, 최근 부동산 가격·주가 폭락으로 큰돈을 잃거나 직장을 잃은 50대 중년부부들이 사주카페를 많이 찾는다. 심한 경우는 이혼 문제를 상담하기도 한다.

역술가 이규철(가명·40)씨는 "이혼을 요즘 부부들은 쉽게 생각한다, 특히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가정경제도 불안하다보니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들의 고민을 많이 듣는다"며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조언을 해준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치밀하게 메모해와 물어봐"

서울 명동에는 '占い(우라나이)'라고 쓰인 간판을 단 사주카페를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여기에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관심을 보인다. 일본에서 직접 예약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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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카페를 찾은 일본인들 일본인들은 메모까지 해와서 꼼꼼하게 사주풀이를 듣는다. 과거의 일들까지 맞추는 역술가의 이야기를 신기해 했다. ⓒ 이나영

보통 20분 상담 이후 1분당 추가 요금을 받는 일본과 달리, 명동 사주카페에는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복비가 일본보다 최대 50% 저렴해진 점도 일본인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다.

아키코 노가미(23)는 "낮에 예약을 하고, 쇼핑을 한 뒤 저녁에 시간 맞춰 왔다"며 "역술가가 일본어로 사주를 봐줘 편리했고, 역술가가 학교생활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다 맞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쇼코 카수마타(27)는 "일본과는 다르게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물어보고 싶은 걸 모두 물어볼 수 있었다"며 "친절하게 설명해줘 마음이 편안했다"고 전했다.

역술가 혜운씨는 "일본인들은 꼼꼼하고 시간약속을 잘 지키고, 미리 질문을 메모해와 치밀하게 하나하나 묻는다"며 "한국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직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애정이나 건강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 한다"라고 했다.

"불황에 위안 얻고 싶어하는 사람 몰려"

사주카페 업자들은 "요즘은 경기가 불황이지만, 사주카페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한두 개씩 꾸준히 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이대·홍대·신촌 등 대학가에는 사주카페를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손님들이 북적이는 사주카페도 많았다.

한때 사주카페들이 붐이 일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사주카페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음료나 토스트 등을 서비스로 제공하거나 백화점 상품권 등을 내건 이벤트도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주카페로 모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불황으로 힘든 상황에서 사주를 통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역술가 도강씨는 "사주가 나쁘게 나오더라도 좋은 때가 곧 올 것이라고 에둘러서 희망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주카페 #경기불황 #20대 #역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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