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냉전 해체가 유럽 냉전 부활 막는다

오바마 행정부에 보내는 정책권고안 (상)

등록 2009.01.20 18:13수정 2009.01.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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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1일 오바마 미 대통령(당시 당선자)가 차기 백악관 외교안보팀 내정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 제임스 존스 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
2008년 12월 1일 오바마 미 대통령(당시 당선자)가 차기 백악관 외교안보팀 내정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 제임스 존스 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AP=연합뉴스

1월 20일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외교안보정책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도전과 과제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금융경제위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이란과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핵확산, 지구 온난화, 전 지구적 빈곤과 질병 등은 오바마 스스로 강조하는 우선순위의 의제들이다. 이 밖에도 유럽에서 회자되고 있는 '제2의 냉전' 방지와 또 하나의 슈퍼파워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관계 설정도 오바마 행정부의 커다란 숙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이들 의제 가운데 북핵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비핵평화의 의미와 의의를 강조하고 싶다. 이는 한반도 문제가 다른 사안에 비해 더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의제들은 모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커다란 도전이자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에 이에 합당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의제가 품고 있는 역사적 의의와 성공 가능성, 그리고 '확산 효과(spill-over effect)'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역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의

먼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자. 이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강요된 '분단'과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준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 분단을 주도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소홀했던 점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한반도 정전체제와 분단상태를 해소하려는 진지한 노력과 협력은 미국의 역사적 책무이자 한국과 미국을 진정한 친구로 만드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의의는 단순히 과거의 불행을 치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반도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냉전이 끝났다"고 말하지만, 한반도, 아니 동북아의 냉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한반도 냉전은 단순히 남북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북미·북일간의 적대관계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냉전구조를 청산하지 못하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대립관계의 부활로 이어져 동북아에서도 '제2의 냉전'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반도 문제 해결은 불행한 20세기를 청산하고 미래지향적인 21세기를 열어나갈 수 있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해결의 성공 가능성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가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성공 가능성'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성공 가능성은 시급성 및 중요성과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의제에 집중해 먼저 해결하는 것은 다른 사안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높여주고, 성공에 따른 긍정적 확산효과에 힘입어 다른 사안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바로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체제 유지의 보루인 핵무기를 포기할 리 없다"며, 외교 무용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포기 여부는 선입견을 가지고 예단할 사안이 아니라,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경직된 이념과 선입견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야말로 원칙과 이익과 근거에 기반을 두어야 할 외교의 포기이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만큼 이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렇다면 외교를 통한 북핵 해결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통해 우호협력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북한 스스로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면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줄곧 말해왔다. 이것만큼이나 북핵 해결의 성공 가능성을 담보해주는 것도 없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보유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한 2007년 이후의 성과들이다. 2007년 2월 13일과 10월 3일 각각 합의된 9.19 공동성명의 1단계, 2단계 이행조치로 인해,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했고, 불능화 조치도 80% 가량 마쳤다. 또한 영변 핵시설 가동일지를 미국에게 넘겨주었고, 많은 논란 끝에 핵신고서도 제출했다. 영변 핵시설의 상징이었던 냉각탑도 폭파했다. 이는 불능화 조치가 마무리되면 북한이 더 이상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이용해 핵물질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5대 핵보유국과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가 보여주듯 핵개발에 성공한 어떤 나라도 몇 개의 핵무기를 갖는데 만족한 나라는 없다. 수백-수천개의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2차, 3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 핵개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군사강국인 한국 및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은 5-10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상태에서 핵개발을 멈췄다. 이는 북한의 궁극적 목표가 핵보유가 아니라 이를 지렛대로 삼아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의 전략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이는 거꾸로 미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전략적 결단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터프하고 직접적인"이외에 또 하나의 수식어가 필요하다. 바로 '통 큰'이다. 큰 것을 받으려면 큰 것을 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경수로 사업 재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관계정상화, 핵정책의 변화를 포함한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준비태세의 조정 등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평화의 '긍정적 확산효과'

 제6차 북핵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가 열린 2008년 12월 10일 오후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중국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숙소로 돌아가며 기자들의 추가질문을 받고 있다.
제6차 북핵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가 열린 2008년 12월 10일 오후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중국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숙소로 돌아가며 기자들의 추가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셋째로 한반도 비핵평화의 '확산효과'이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목표는 물론이고 미국의 국익과도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의 세계는 '거대한 그물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상호연관성(interconnectedness)이 대단히 강하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핵 해결의 '긍정적' 확산효과에 대해서는 둔감한 반면에 북한 핵보유시의 ‘부정적’ 확산효과에 대해서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 핵무기의 다른 국가나 테러집단으로의 확산 가능성, 동북아에서의 핵도미노 유발, 핵비확산 체제의 불안 가중, 한반도 유사시 핵전쟁의 위험성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인식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북한 핵보유에 따른 불안감에 압도되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강화,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에 대한 군사적 대처와 같은 강압적 수단을 선호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책은 북한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자극해 핵무기 보유 동기를 더욱 자극하게 하는 역효과가 있다. 반면 북핵 해결시의 '긍정적 확산효과'에 주목하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동기와 의지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우선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미국의 '악몽'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가장 우려하는 이유는 북한의 핵물질이나 핵기술이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의 손에 넘어가 미국이나 동맹국이 공격을 당하는 '핵 테러 9.11(Nucler 9.11)'의 발생 가능성에 있다. 이는 반대로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핵 테러 9.11'의 가능성을 크게 낮춰, 미국의 최대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북핵 해결은 출범 40년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NPT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핵정책,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등으로 지난 8년간 크게 후퇴했다. 이를 우려한 오바마 행정부는 NPT 체제를 강화해 핵감축을 추진하는 한편,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에 대해 자동적인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이 조약에서 탈퇴한 국가이기 때문에 NPT 개정은 북한에 대한 제재 부과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최선은 2010년 5월 NPT 검토회의(review conference) 이전에 북핵 문제 해결의 큰 진전을 이루는 것이다. 북한은 NPT 역사상 최초로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실험까지 단행한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NPT 체제는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셋째, 북핵 해결은 오바마 행정부가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는 이란 핵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6자회담과 북미 직접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이란 핵문제 해결에도 미국, 이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참여하는 '이란판 6자회담'과 같은 다자주의와 미국-이란 양자대화를 병행하는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북한에게 경수로 제공 조건으로 핵연료를 외부에서 제공하고 사용후 연료봉은 다시 외부로 반출하는 것에 합의한다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 해결에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북핵 해결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문제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고, 이란에게는 타협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넷째, 북핵 해결은 6자회담을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로 발전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관문’이다. 냉전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강대국들이 각축전을 벌여온 동북아에서 공동의 번영과 공고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자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양자간의 합의와 간헐적인 정상회담, 그리고 6자회담과 같은 임시적인 장치를 넘어 보다 효과적인 지역적 틀을 만들겠다"는 것을 아시아 정책의 목표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괄적인 목dh표는 북핵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

다섯째, 북핵 해결은 미러간의 '제2의 냉전'을 막는데 기여한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 계획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이 맞물리면서 유럽에서는 제2의 냉전이 회자되고 있다. 만약 오바마 행정부가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하면, 러시아와의 핵감축 협상, 테러리즘과 질병·빈곤·기후변화 등 초국적 위협에의 집중, 이란과 북한 핵문제 및 아프가니스탄 사태 해결 등 오바마 행정부가 정책적 우선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목표들은 커다란 훼손을 입게 될 것이다.

반면 북핵이 해결되고 한반도에서 냉전이 해체된다면, 미러간의 '제2의 냉전'도 막을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긴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협상의 성과는 무시하고,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MD 구축을 천명했다. 그리고 이란 핵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근거로 동유럽에도 MD 배치를 강행하려고 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냉전해체가 '제2의 냉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핵 해결은 이란 핵문제 해결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또한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미국의 MD를 추진해야 할 시급성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MD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악화된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끝으로 북핵 해결이 가져올 확산효과는 미국의 막대한 군비 부담을 줄여 미국의 재정정책에도 숨통을 터줄 수 있다. 미국이 7천억 달러 안팎에 달하는 군사비를 줄이지 않으면, 재정적자를 줄이고 사회복지와 교육과 녹색경제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또한 미국의 막대한 군사비 지출은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군비증강을 야기해 군비경쟁과 잠재적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어왔다. 그런데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MD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무기 프로젝트의 속도와 규모를 조정하는데 기여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을 통해 병력 운용의 유연성을 높여줄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확산효과로 인해 군사비를 크게 감축할 수 있는 국제적 안보환경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기사: 오바마의 대북정책, '북한과 통 큰 목표'를 공유하라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에 이어질 기사: 오바마의 대북정책, '북한과 통 큰 목표'를 공유하라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북정책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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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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