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 서초동 서울 중앙지방법원.
김태헌
"즉결 받으러 왔는데요?" 한 40대 남성이 종이 서류를 즉결 담당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저쪽에 가서 앉아 계시다 저 따라서 오세요."
즉결심판은 2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등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경범죄처벌법 등)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경찰이 법원에 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형사법정 501호에 모인 사람들 20일 찾은 서울중앙지법 즉결심판 대기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즉결심판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경찰관을 따라 형사법정 501호로 들어갔다.
"생계 때문에라도 해야죠."
즉결심판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법원에 도착한 송아무개(46)씨. 그는 전단지를 부착하다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법원에 오게 됐다.
"전단지 붙이다 왔어요. 전봇대에 전단지 붙이다가 현장에서 적발 돼서..."
아르바이트로 불법 광고물을 부착하다 난생 처음 법원에 왔다는 송씨는 전단지를 붙이면 하루 5만원 가량의 일당을 받는다고 했다.
"학원을 경영하다가 부도나서 전단지 붙이는 알바를 했거든요. 고정적인 일도 없고 하니까. 부업으로 전단지를 붙였는데, 법원까지 오게 됐네요."
그는 벌금을 다시 내더라도 생계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쩔 수가 없죠. 지금 IMF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인데 이런 것까지 단속을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피곤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조용히 대기실에 앉아 있던 김아무개(29)씨는 호객행위로 즉결심판을 받게 됐다. 낮에는 제과점에서 일 하고 밤에는 알바로 '삐끼'를 한다는 그 역시 법원에는 처음이다.
"빵가게가 요즘 장사가 잘 안 돼서 오래 근무를 못하고 낮 시간에만 일 하거든요. 일하는 시간이 적으니 월급도 적고요. 그래서 밤에 삐끼 일을 하는 거죠."
김씨는 제과점에서 시간제로 일하고 80만 원을 받지만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호객행위를 했다고 이야기 한다.
"불법인줄은 알죠. 그런데 생활이 안 되니까요. 밤·낮으로 일해도 얼마 못 벌어요. 요즘은 술 마시러 오는 사람도 없어서 허탕 치는 날이 많아요."
손님을 호객한 횟수에 따라 수당을 받지만 최근엔 유흥가를 찾는 사람이 줄면서 김씨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도 함께 줄었다.
경제난으로 인한 생활형 범죄에 대해 법원은 벌금을 감액해 주기도 했다.
이날 즉결심판을 진행한 한 판사는 "기준에 따라 벌금 부과 금액이 있지만, 경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벌금을 낮춰 주겠다"며 송씨와 김씨에게 각각 3만원과 5만원짜리 벌금을 부과했다. 물론 다시 재범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2006년과 2007년 각 3600여 건이던 즉결심판은 2008년 들어 5033건으로 급증했다. 소액재판도 매년 증가...재판부 증설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