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용산 학살', 아~ 대한민국 국민이란 게 너무 쪽팔려!

<한 편 시로 보는 세상> 그 경찰특공대가 김석기 개인 경찰입니까?

등록 2009.01.21 21:17수정 2009.01.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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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경림  불에 타 죽은 철거민 농성자들 가족이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경림 시인이 쓴 '산1번지'란 시가 자꾸만 떠오른다

신경림 불에 타 죽은 철거민 농성자들 가족이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경림 시인이 쓴 '산1번지'란 시가 자꾸만 떠오른다 ⓒ 이종찬

▲ 신경림 불에 타 죽은 철거민 농성자들 가족이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경림 시인이 쓴 '산1번지'란 시가 자꾸만 떠오른다 ⓒ 이종찬

 

해가 지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 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

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

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붙어 흐늘댄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

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쳐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     

 

-신경림, '산1번지' 모두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잖아도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가 빚어낸 돈가뭄에 서민들은 아등바등 어쩔 줄 몰라 헤매고 있는데, 강제철거에 언 손 호호 불며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을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다 5명이나 죽였다. 경찰특공대 1명도 죽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수도라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들이 흔히 잘 쓰는 '무장폭도'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총을 쏘며 난리를 피운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더욱 아니꼬운 것은 검찰총장, 국정원장과 더불어 3대 권력기관인 경찰청장에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1일(수) '용산 철거민 학살' 뒤에 내 던진 말이다.

 

"준법 시위는 철저하게 보호하겠지만 불법 폭력 시위는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하겠다… 경찰의 기본 임무는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이자 평화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시위를 한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는 굉장한 강경 단체다. 철거 지역에 개입해 들어가면 망루를 세우고 화염병을 동원하는 폭력시위 전문 단체다."

 

개가 들어도 으르렁거리며 짖을 일이다. 이게 경찰특공대에 의해 저질러진 '용산 철거민 학살'에 대한 대국민 사죄란 말인가. 과잉진압으로 순식간에 경찰특공대 1명을 합쳐 사람이 6명이나 죽은 이 엄청난 사건을, 은근슬쩍 전철연과 철거민들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는 심뽀가 한심하다 못해 딱하기까지 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란 이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자. 

 

이 말 속에는 뼈가 들어 있다.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란 말 속에는 "인명 희생이 빚어지지 않았다면" 당연한 진압작전이었다는 말이 된다. 이 대통령이 속내를 털어놓고 '용산 철거민 학살'에 대해 사과하려 한다면 "과잉진압으로 인명 희생까지 빚어져 참으로…"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하긴 대통령에 취임할 때부터 가장 먼저 '법 질서 확립'을 틈틈이 곱씹은 이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법 질서를 어기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공권력을 쓸 때에는 그 상대편보다 정당성이 훨씬 앞서야 하고, 희생자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a 신경림 강제철거에 언 손 호호 불며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을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다 6명이나 죽였다

신경림 강제철거에 언 손 호호 불며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을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다 6명이나 죽였다 ⓒ 이종찬

▲ 신경림 강제철거에 언 손 호호 불며 농성하고 있던 철거민을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강제 진압하다 6명이나 죽였다 ⓒ 이종찬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게 쪽팔릴 뿐"이다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자 강제진압은 누가 보아도 경찰이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날 농성자들은 화염병과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재 위험이 아주 컸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 특공대는 예행연습 한번 하지 않고 컨테이너와 특공대를 끌어들여 '토끼몰이식' 작전을 펼쳤다. 불을 안고 불구덕에 뛰어든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1983년 10월 5일 창설된 경찰특공대 홈피에 나와 있는 주요 임무를 보면 '테러사건 예방 및 진압', '중요 범죄 진압', '재해재난 및 긴급 상황 발생 시 인명구조'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자들은 이 세 가지 항목 중 어디에 해당되는가. 김석기 청장에게 묻고 싶다. 이들 농성자들은 '중요 범죄'에 해당되느냐고? 

 

21일(수) 저녁 6시 30분. 사이버 경찰청 '국민마당 열린 게시판'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누리꾼들이 쓴 여러 가지 글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잘못을 경찰에게 돌리고 있으며, 책임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경찰을 두둔하는 글들도 어설프게 끼어 있기는 하다.

 

이현식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는 네티즌은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기보다 시민을 애도하는 일이 먼저 아닐까요"라는 글을 남겼다. 여진희란 닉네임을 쓰고 있는 네티즌은 "그 가 건물 안에 당신들 가족이 있었어도..."라는 글을 남겼으며, 닉네임 주운종은 "가장 윗분이 당장 책임지고 사임하세요"라고 썼다.

 

닉네임 김현정은 "아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닉네임 유원석은 "책임자들은 깨끗이 물러나세요", 닉네임 김재한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럴 수 없습니다", 닉네임 최성민은 "난 니들이 수치스러울 뿐이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게 쪽팔릴 뿐이고", 닉네임 임수환은 "당신들 정신 차려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편 경찰을 두둔하는 네티즌들도 간혹 있었다. 노제원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네티즌은  "사람이 죽은 건 슬프지만, 폭력불법집회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썼다. 닉네임 서승덕은 "당신들이 경찰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닉네임 김성진은 "왜 경찰이 욕먹어야 됩니까?"라는 글을 달았다.

 

a 신경림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자 강제진압은 누가 보아도 경찰이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신경림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자 강제진압은 누가 보아도 경찰이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 이종찬

▲ 신경림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자 강제진압은 누가 보아도 경찰이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 이종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국민을 적으로 삼다

 

30여 명 남짓한 철거민 농성자를 강제 진압하기 위해 1600명이나 되는 경찰병력과 경찰특공대 49명을 동원해 저지른 '용산 철거민 학살사건'. 6명이 죽고 24명이 다친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속이 쓰리고 아프다. 오죽 기가 찼으면 한나라당 장윤석 진상조사단장까지도  "도심테러적 성격이 있다"는 말을 남겼겠는가.  

 

농성 현장에 시너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기름에 성냥불을 던지듯 물대포를 수없이 뿌려 수많은 사상자가 나게 한 대한민국 경찰. 불을 피해 난간에 매달린 철거민 농성자들을 바라보고도 매트리스 하나 설치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국민의 경찰. 겨울철에는 강제철거를 하지 말라는 서울시 지침에도 불구하고, 농성 25시간 만에 살인진압을 한 그 경찰특공대는 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란 말인가. 

 

민주노동당은 21일 낸 논평에서 "김 청장은 경찰청장 내정에 대한 보은의 표시로 용산4구역 철거민을 본보기로 삼아 사지로 내몰았다"며 "경찰 공권력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다. 정치력과 행정력의 빈자리를 공권력으로 채워놓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공안적 국정운영 스타일이 빚어놓은 파국적 참상이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아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국민을 적으로 삼아 저지른 용산 철거민 농성자 학살 사건. 건물 옥상 꽉 막힌 가건물에서 생존권 보장을 위해 추위에 벌벌 떨며 철거 반대를 외치다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 불에 타 죽은 철거민 농성자들 가족이 울부짖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경림 시인이 쓴 '산1번지'란 시가 자꾸만 떠오른다.

 

시 속에 나오는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과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 사내들이 용산 철거민 농성자들 얼굴과 겹쳐진다. 농성자들이 죽은 그날 저녁처럼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 통곡이 온다".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 뒷산에 와 부딪쳐 /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 아프게.   

2009.01.21 21:17ⓒ 2009 OhmyNews
#신경림 #용산 철거민 학살 사건 #산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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