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면 하루키처럼 잘 쓰려나

러닝머신 1시간, 23시간보다 즐거운 이유

등록 2009.01.28 11:27수정 2009.01.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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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는 헬스장의 러닝머신. TV까지 있어서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습니다. 헬스하기 정말 잘한 것 같네요. ⓒ 이상규


저는 저번주부터 헬스장에 다니며 체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 대학교 다닐 때 한 달에 단돈 만원만 내고 헬스장 다니면서 운동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 헬스장을 이용하게 되었네요. 워낙 동네 헬스장 가격이 비싸다 보니(우리 동네는 3개월에 11~15만원 정도 합니다) 이용하기가 부담스러웠는데 결국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헬스를 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살을 빼기 위해서인데요. 제가 5년 전에는 164cm 55kg에 마른 체격이었는데 지금은 체중이 무려 18kg이나 초과했습니다. 군 입대에 대한 부담감에 폭식으로 스트레스 풀다가 72kg 상태에서 입대했던 추억(제가 입대하기 2~3개월 전에 논산 훈련소 인분 사건 터져서 앞날이 까마득 했습니다), 군대에서 살 빼다 말년에 다시 불어났던 것, 그리고 군 제대 이후 지금까지 불규칙적인 생활로 살이 빠지지 않고 있는 것, 그로 인한 만성 무기력증 때문에 다시 헬스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체력을 키우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작년 11월 말까지 육체 노동을 하다보니 2개월 동안 밖에 나가서 힘 쓰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추위에 약한 체질이라 밖에 잘 나가지 않다보니 기운빠지는 날이 많았죠. 그러다가 어느날 오르막 오르는 것 조차 숨을 헐떡일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스치더군요.

그리고 제가 헬스하게 된 '진짜' 목적은 글을 잘쓰기 위해서 였습니다. 군 전역 이후 지금까지 쉴틈없이 언론사에 글을 기고하고 블로그까지 하면서 많은 글을 써왔지만 그로 인해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날은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컴퓨터 모니터만 멀뚱히 쳐다보는 날이 있었고 글 쓰는 도중에 딴짓거리하다 시간 허비한 적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두통과 무기력증까지 겹치다보니까 '삶의 활력소'를 위해 운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서점에서 최근 국내에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유명 소설가)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육체노동이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는데요. 하루키는 '글을 잘 쓰기 위한 3요소'인 체력, 집중력,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33세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하루키가 마라톤을 하게 된 계기와 그동안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회고록 양식으로 상세하게 작성되었는데, 저에게는 '강력 추천'이나 다름 없던 책이었죠.

그래서 책을 다 읽어보니까 '나도 달리고 싶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하루키가 단거리보다 장거리를 즐겼던 것처럼 역대 100m 최고 기록이 15.8초였던(체력장이 유행하던 시절에) 저 역시 장거리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5년 전 학교 헬스 다닐 때 러닝머신 타이머가 최대 30분으로 맞춰있다보니까 그 시간을 단 1분, 1초라도 걷지 않고 계속 뛰어다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러닝머신이란 존재가 만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에 있는 어느 헬스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헬스장 시설을 보니까 5년전에 다녔던 학교 헬스장보다 근사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운동기계들이 있어서 좋았던 점도 있지만 런닝머신 바로 앞에 TV가 비치되어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헬스하는 기간동안 런닝머신을 이용하면서 '헬스장에서 틀어주는' 흥겨운 댄스와 힙합 음악을 듣고, 런닝머신 앞에 놓인 TV까지 보니, 그야말로 황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닝머신 기계가 많이 있어서 '5개에 불과해 줄을 서야만 했던' 학교 헬스장 시절의 불편함을 잊게 했고, 옆사람에게 소음 공해가 되지 않도록 TV에 헤드셋을 끼워놓은 헬스장의 '센스'가 맘에 들었죠. 결과적으로 거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헬스장 런닝머신 타이머는 최대 1시간까지 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학교 헬스장에서 이용했던 것보다 시간이 2배로 많아서 좋더군요. 그래서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을 단 1분 1초라도 걷지 않고 힘껏 뛰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것을 달성할 수 있다면 하루키처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어쩌면 허황된 꿈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예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글을 썼고 언젠가 글을 쓰는 것을 본업으로 삼게될지 모를 저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많이 굳어지고 관절까지 딱딱해지다보니 1시간을 뛴다는게 쉽지가 않았더군요. 20~28분 뛰었다가 잠시 '걷고-뛰고-걷고-뛰고' 패턴을 이어가다 1시간을 채웠죠. 워낙 겨울철이라 갑자기 운동 시작하면 몸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예전에 학교 헬스장에서 체력을 키웠던 시절보다 몸이 안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루키가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토로 뛰었던 것처럼 웬만하면 많은 시간을 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헬스장을 찾은 목적이 1시간을 걷기 위해 거금을 지출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뛰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들더군요. 헬스장을 찾는 '저 같은' 젊은 남자들을 보니까 러닝머신 이용할 때 많이 뛰려고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더군요. 그래서 그들에게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쩔 때는 달리면서 오기가 발동하더군요.(어쩌면 저의 달리는 성향이 특이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1시간 달리면서 가장 행복했던 게 바로 TV였습니다. 러닝머신을 뛰는 것과 동시에 리모콘으로 채널 돌리는 재미에 빠지다보니까, 달리는게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TV를 계속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다보니 TV를 잘 보지 않지만, 헬스장에서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프로 같은 다양한 채널들을 접하면서 '인생의 활력소를 찾은 것 같다'는 마음속의 자신감이 저의 뇌리를 스치게 했습니다. '행복한' 엔돌핀이 저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1시간 동안 운동하니까 러닝머신을 더없이 즐기고 싶더군요.

러닝머신 1시간을 마치고 나면, 어지러워서 금방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뭔가 성취감을 이룬 것 같은 행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것이 운동의 묘미구나'라는 느낌과 함께 말이죠. 어느 누구도 압박하지 않고 저 혼자 스스로 즐겁게 뛰다보니까 런닝머신 1시간이 23시간보다 더 귀하다는 깨우침을 얻었죠.

아직 운동 기간이 짧지만, 러닝머신 1시간을 하면서 저의 필력은 특별히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제가 토목전공이어서 글을 잘 쓰는 비법을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고 혼자서 독학했던 것이기 때문에(그래서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만) 필력 업그레이드를 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죠.

하지만 헬스를 한 이후부터 만성 무기력증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거둔 값진 소득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모니터를 멀뚱히 쳐다보거나 딴짓거리하는 경우가 줄었으니까요. 런닝머신 1시간을 꼭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오늘은 반드시 이 글을 써야 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면서 '글쓰기 권태기'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하루키가 강조했던' 체력, 집중력, 지구력이 차츰 향상되리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다 보니까 더욱 간절히 달리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 런닝머신을 이용하면서 무슨 일을 겪게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인생 성공'을 위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굳이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러닝머신으로 깨우쳤으니까요. 그래서 런닝머신을 이용하는 1시간이 요즘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책으로 가르침을 준 하루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헬스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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