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나에게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당신 생각으로는 자신이 아들을 성가시게 하고 있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 별과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내보다도 현저히 별과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심지어 어머니는 나에게 별과 우주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조금 흥분하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뺨이 불그레하게 물들기도 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0세기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알아내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미 우주의 나이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수 세기 동안 진행되어 왔다. 20세기 들어 지질학자들은 바위에 남아 있는 방사성 원소를 분석해 지구의 나이를 대략으로나마 추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모순을 담고 있었다. 그들이 추정해낸 우주의 나이가 별의 나이보다 적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오래 된 별의 나이는 120억 살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이것은 허블망원경으로 관측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오래 된 별의 나이이지 우주의 나이는 아니다. 우주의 나이를 알려면 우주의 최변방에 있는 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별에서 오는 복사열이 관측되어야 한다. 또한 복사열의 온도가 절대온도인 마이너스 273도의 미세 근사치임이 측정되어야 한다. 절대온도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온도를 말한다. 그 너머에는 공간은 물론 시간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곳까지의 거리를 광년으로 측정하면 우주의 나이가 계산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짤막하지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언제 와?”
“일주일 예정입니다.”
어머니는 벽에 있는 달력을 보고 나서 말했다.
“돌아오면 네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평생을 혼자서 사신 어머니였다. 나는 아버지가 내가 젖먹이였던 조선전쟁 시절에 전사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짧은 기간이나마 같이 했으며 서로의 얼굴을 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네 아버지는 네가 세상에 태어났는지조차 모르실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이번 학회에서 네가 찾는 별이 보고되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우주 변방에 그 별이 있는지조차 확실히는 알 수 없어요. 그건 그렇고 방금 하신 말씀을 더 해 보세요.”
“성급히 알려 하지 말고 갔다 와서 차분히 들으려무나.”
멀리 있는 별은 찾았지만 가까운 별을 잃다
스튜어디스가 두 손바닥을 모아 손끝으로 내 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 안전벨트를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스튜어디스는 내가 벨트를 다 채울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 엠 소리라고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말없이 벨트를 채우고는 무심히 기창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 학회에서 허블 망원경의 관측 결과가 나왔고 나의 주장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판명 났다. 내가 주장했던 별 중의 하나를 찾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주의 최변방에 있는 마지막 별을 찾는 것이었다. 아무튼 내 연구는 일단 성공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외로움이 치밀어 올랐다. 120억 광년 떨어진 별은 찾았지만 가까운 나의 별을 잃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그 별을 임종조차도 하지 못했다. 아울러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마저도 놓쳐 버렸다. 나는 아버지를 보지도 못했다. 미상불 어머니 말대로라면 아버지에 의해 나는 존재조차 인식되지 못했다. 그것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는 별개로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왠지 삶이 허망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빈소는 평양의대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아내가 겪었을 당혹과 노고를 위로하지도 못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어설픈 자세로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내와 딸은 조객을 접대하느라 슬픔 같은 것을 담고 있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어머니의 직장이었던 인민문화성에서 보낸 조화(弔花)가 서 있었고 내 직장인 김책대학교의 꽃바구니가 영전에 놓여 있었다.
내가 어머니의 편지와 일기장을 아내로부터 전달받은 것은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이었다. 나는 아내가 나 없이 어머니를 임종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아들의 마음이 번잡할 것을 걱정하셨던 거예요. 어머니께서는 상을 완전히 치른 후에 당신에게 보이라고 하셨어요.”
그날 밤 나는 어머니가 남긴 간략한 편지와 두터운 일기장을 책상에 놓고 앉았다.
석주에게,
왠지 몰라도 너는 이번 학회에서 너의 별을 찾을 거라는 확신을 나는 지니고 있다. 그 대신 나는 네가 떠난 날부터 너를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예감도 동시에 들었단다. 그래서 서둘러 편지를 쓰고 어미에게 맡기는 거다.
일기장에는 네가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너는 너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네가 너의 별을 찾았다면, 그것은 그 분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분은 인간의 기원이 별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을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마냥 허구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모두 알다시피 우리 민족은 불과 반세기 전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전쟁을 치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상대에 대해 불신과 증오를 감추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그 불행을 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 불행을 팔아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때의 우리는 참혹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아름다운 일들은 이곳저곳에서 피고 있었다.
별이 있는 한 우주가 아름답듯이,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 아니겠냐? 아들아, 나는 먼저 너의 별에 가 있을 테니, 너는 서두르지 말고 너의 일을 다 끝내고 오너라.
일기장의 첫장을 넘기자 빛바랜 흑백사진 하나가 나왔다. 산을 배경으로 인민군 장교복을 입은 처녀 적 어머니와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나는 오른쪽의 중년 남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왼쪽 청년이 내 아버지라는 것은 얼굴 윤곽만으로도 쉽게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날 밤 앉은 자리에서 어머니의 일기를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우리 자식들에게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역사와 정치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당시의 정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평양외국어대학 역사 교수로 있는 내 후배를 서너 차례 불러내 어머니의 이야기와 결부된 당시의 전황과 국내외 정세에 대해 들었다.
루스벨트가 아니라 트루먼입니다
후배는 교재 연구비와 강의료 조로 매번 술을 요구했다. 그런 이야기는 술을 마시며 해야 된다는 것이 후배의 지론이었다. 나는 몇 번에 걸쳐 후배에게 청요리와 문배주, 때로는 평양소주를 사 주며 열심히 경청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나로서는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역사와 정치에 둔감하고 무지했는지를 깨달아야 했다. 그리고 후배는 내가 역사와 정치에 심각할 정도로 무식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노골적으로 이상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나는 조선전쟁의 개시일이 6월 25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후배는 내가 이름을 아는 국내외 정치가가 여섯 명 외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나는 김일성과 박헌영과 이승만과 김구의 이름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더 안다고 했다.
“선배님, 당시 미국 대통령은 루스벨트가 아니고 트루먼이었어요.”
나는 후배에게 이런 식으로 번번이 면박을 당해야 했다.
“선배님이 알고 있는 천체망원경 이름은 몇 개나 되지요?”
나는 열 개 이상 알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건 왜 물어?”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조국에서 일어났던 전쟁 이야기를 우리 자식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60회 정도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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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람] 어머니와 두 남자가 담긴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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