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66) 그림떡

[우리 말에 마음쓰기 539] ‘배금주의자(拜金主義者)’와 ‘돈벌레’

등록 2009.02.02 13:20수정 2009.02.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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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그림떡

.. 이 상황을 뭐라 해야 하나? 그림의 떡? ..  《박세욱-달려라! 펑크난 청춘, 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73쪽


겉보기로는 힘이 셀 듯하지만, 알고 보면 힘이 하나도 없다고 하여 ‘종이호랑이’나 ‘종이범’이라 합니다. 종이로 접은 배라 ‘종이배’요 ‘종이비행기’요 ‘종이학’입니다. 껌을 싸니 ‘껌종이’이고, 빛깔을 넣어서 ‘빛종이’이며, 빛깔이 하얘 ‘흰종이’나 ‘하얀종이’입니다. 우리들은 ‘종이 + 호랑이’를 ‘종이의 호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껌 + 종이’를 ‘껌의 종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하나, “그림으로 그린 떡”을 가리킬 때에는 ‘그림떡’이 아닌 ‘그림의 떡’이라 합니다.

그리는 붓이면 ‘그림붓’이고, 그리는 물감이면 ‘그림물감’이며, 그림을 모아 잔치를 벌이니 ‘그림잔치’인데, 어이된 일인지 ‘그림떡’만 쓰이지 못하고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 그림떡
 └ 그림의 떡 / 화중지병

그나마 한때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 했으니, 이렇게 네 글자 한자말을 안 쓰고, 우리 말로 풀어내어 “그림의 떡”처럼 쓰는 일로 고마워 하거나 기뻐 하거나 놀라워 해야 할 노릇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화중지병’이란 또 무엇일까요. 어떻게 짜인 말일까요.

 ┌ 畵中之餠 = 畵 + 中之 + 餠
 └ 그림 + 속의(속 + 의) + 떡 → 그림 속에 있는 떡 → 그림 속 떡 → 그림떡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림 중의 떡”이나 “그림 속의 떡”처럼 안 쓰고 “그림의 떡”처럼 쓰는 일로도 ‘참 잘했네(?)’ 하고 손뼉쳐 줄 일이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손쉽게 풀어내려고 애를 썼잖아요. 비록 좀더 마음을 쏟아 한결 살갑고 구수하고 싱그럽게 엮어내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 그림떡 / 그림빵 / 그림돈 / 그림밥 / 그림집
 └ 그림꾼 / 그림잔치 / 그림사랑 / 그림놀이


아무리 마음이 들어도 쓸 수 없거나 가질 수 없거나 누릴 수 없어 ‘그림떡’입니다. 오늘날도 떡은 퍽 즐겨 먹지만, 요즈음 흐름과 요즈음 우리 삶터를 죽 돌아보면서, 뜻은 같고 느낌을 살짝 달리한 ‘그림돈’ 같은 낱말을 빚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고픈 이한테는 ‘그림밥’ 같은 낱말이 어울릴 수 있고, 집없는 사람한테는 ‘그림집’ 같은 낱말이 어울릴 수 있어요. ‘그림빵’이라 해 보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앞가지로 삼아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그림꾼/그림쟁이)”을 가리키는 낱말을 지어 봅니다. “그림을 한자리에 그러모아서 여러 사람과 나누는 일(그림잔치)”을 가리키는 낱말도 지어 봅니다. “그림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그림사랑)”을 가리키는 낱말도 지어 볼 수 있고, “그림을 그리면서 즐겁게 삶을 꾸리는 모습(그림놀이)”을 가리키는 낱말도 살포시 지어 봅니다.

ㄴ. 돈만아는이 (돈벌레)

.. 그런 어머니가 의지할 것이라곤 돈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배금주의자(拜金主義者)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고다니 준이치/홍순명 옮김-농부의 길》(그물코,2006) 42쪽

돈만 아는 사람은 무섭습니다. 불쌍할 때도 있고 딱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참뜻과 참맛을 모르는구나 싶으며, 어쩌다 저 꼴이 되었나 혀를 끌끌 찰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사랑할 만한 값어치가 많고, 믿고 아끼고 돌볼 사람과 일과 놀이가 많은데 고작 돈푼에 매여서 그리 살아야 하나 안타깝습니다.

 ┌ 배금주의(拜金主義) :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     돈 모으기에 두는 경향이나 태도
 │   - 배금주의가 만연하다 / 현대인들은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다
 ├ 배금(拜金) :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함
 ├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 :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     있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
 │
 ├ 돈벌레 : 돈을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
 │   (돈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둘레나 이웃을 살필 줄 모르는 사람,
 │    돈에 온마음을 빼앗겨 사람됨을 잃거나 사람다움이 사라진 사람)
 │   <나는 돈벌레하고 동무하기 싫다 / 돈벌레는 꼴보기 싫으니 저리 꺼져 /
 │    그 사람은 어쩌다가 돈벌레가 되어 저렇게 망가졌을까요?>
 └ 돈만 아는 이 / 돈밝힘이 / 돈바보 / 돈쓰레기

돈을 가장 크고 소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돈만 아는’ 사람은 돈 아닌 우리 터전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웃도 못 보고 동무도 못 보지만, 겨레나 나라도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겨레나 나라가 얄궂고 창피스러운 쪽으로 흐른다 하여도, 먼산바라기나 팔짱끼기로 구경할 뿐, 또는 등돌릴 뿐, 다 함께 즐겁거나 흐뭇한 길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돈만 알기에 ‘돈만 밝힙’니다. 돈이 되어야 일을 하고, 돈이 안 될 듯하면 같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돈에 얽매인 탓에 시간을 돈으로 따집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아름다움과 기쁨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그 돈 한푼도 가져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돈 모으느라 바쁜 나머지 이 돈으로 무엇을 하거나 누리거나 나눌지조차 살피지 못합니다.

돈만 가진 ‘바보’가 된달까요. 돈은 많으나 생각주머니가 텅 빈 ‘멍청이’가 된달까요. 넘치는 돈을 주무르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잘못 알고 있는 ‘머저리’가 된달까요.

 ┌ 돈벌레 / 돈바보 / 돈쟁이
 └ 배금주의자(拜金主義者) / 황금만능주의자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느 만큼은 돈이 있어야 한다면, 꼭 그만큼만 가질 노릇입니다. 좀 모자라면 이웃한테 얻으면 됩니다. 자기한테 조금 넘치면, 자기 둘레에 조금 모자라게 살아가는 이웃한테 나누어 주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번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할 일이 아주 많고, 놀거리도 대단히 많습니다. 땀흘리며 사랑을 바칠 일, 구슬땀 흘리며 신나게 놀거리, 마음을 바쳐 할 만한 일, 온마음 기울여 즐길 놀이가 끝도 없이 많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푸나무를 아끼며 뭇짐승을 껴안을 줄 아는 마음이 되면, 자기 마음바탕뿐 아니라 자기 둘레에 있는 사람들 마음바탕에도 착하고 너그러운 숨결이 고루 자리잡습니다.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자리는 나뿐 아니라 내 이웃과 동무 모두를 따뜻하고 넉넉하게 휘감습니다. 이러는 동안 내 마음밭에서는 살가운 말이 솔솔 나오고, 내 마음녘에서는 구수한 글이 술술 쏟아집니다.

삶을 알뜰히 다스리는데 말이 알뜰하게 펼쳐지지 않을 리 없고, 삶이 알차게 엮여지는데 글이 알차게 쓰여지지 않을 까닭 없습니다. 삶이 얄궂으면 말이 얄궂고, 삶이 흔들리면 글이 흔들립니다. 삶을 아름답게 추스르면 말 또한 아름다이 추스르게 되고, 삶을 못난쟁이마냥 내팽개치면 글 또한 못난쟁이가 되어 뒤죽박죽 되고 맙니다. 그러니, 돈만 아는 바보가 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우리들 말과 글 또한 돈흐름에 따라 휘둘리거나 돈때가 타거나 돈독에 오르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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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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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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