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재벌이 지상파 진출하면 여론 다양화?

[현장] 방송법 개정안 2차 토론회... 참가자들 "한나라당 개정안 부실"

등록 2009.02.03 21:08수정 2009.02.0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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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3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에서 '방송법 개정에 대한 쟁점'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수신료가 묶여 있고 광고시장이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방송 전환조차도 힘든게 현실이다. 방송 시장을 확대하고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참여를 막고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정윤식 강원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미디어의 핵심 역할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여론의 균형, 민주적 사회질서 유지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방송의 사유화를 통해 미디어의 경제 권력 감시 역할을 약화시킬 것이고 미래 한국 사회에 실질적 위험을 양산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 등도 지나치게 과장됐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토론은 평행선을 달렸다. 3일 한국방송학회(회장 최양수) 주최로 열린 '2009 방송법 개정안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지상파 방송 진출 허용'을 골자로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미디어법 개정안을 놓고 치열한 여야 충돌이 예상되는 임시국회가 2일 시작한 가운데 개정안을 주도하고 있는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과 이에 맞서 전병헌 민주당 의원도 참석해 입씨름을 벌였다.

"대기업 참여하면 여론다양성 해쳐" - "다채널 시대 오히려 여론다양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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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 유성호

쟁점은 신문·방송 겸영과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 허용이 여론의 다양성을 침해하느냐의 문제였다.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통신·방송의 융합으로 미디어 산업 빅뱅으로 인한 다매채 다채널 시대에 여론 독과점은 일어나기 힘들다"며 "오히려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화하고 방송 시장 참여자를 늘리면 여론 다양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MBC와 KBS2를 민영화하지 않고 MBC의 소유구조도 손을 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도 "디지털 전환을 위해 지상파 방송은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상태인데 지금 상태로 방송 시장의 진입을 막아 놓으면 모두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며 "일단 대기업과 신문 등이 방송 시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콘텐츠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신문이 방송을 장악한다고 하는데 기업의 규모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신문이 지상파에 진출하더라도 열세적 경쟁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병헌 의원은 "미국 ABC 방송을 소유한 디즈니사는 ABC 시사프로그램이 디즈니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자 이를 폐지시켰고, NBC를 소유한 GE도 NBC가 핵폐기물 관련 부정적인 보도를 내보내자 프로그램을 폐지시켰다"며 "이와 같이 신문과 대기업의 참여로 방송의 저널리즘 역할이 약화되면 표현의 자유와 여론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교수도 "신문은 정파적 언론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방송은 정파성보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는데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면 정파적 보도 내용의 방송화가 초래된다"며 "방송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도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중앙매스컴이 비호한 사례에서 보듯이 대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공공적 언론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자본 투입됐다고 글로벌 경쟁력 갖춘 콘텐츠 나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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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민주당 의원 ⓒ 유성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홍보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이남표 MBC 전문연구위원은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일자리 창출, 글로벌 미디어 그룹 육성 등 이런 장밋빛 전망을 강조하는데 주장의 근거가 너무 빈곤하고 효과를 입증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산업 자본을 투입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가 바로 생산되고 경쟁력 갖춘 미디어 기업이 생긴 사례는 없다. 디즈니만 해도 자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후 ABC 방송을 인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교수는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는 일자리 창출 등 산업 측면의 성과는 지나치게 과장되고 확대 해석되고 있다"며 "어차피 보도 부분에서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으니 차라리 대기업의 참여로 세계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이 보도 채널에 진출할 수 없도록 법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병국 의원은 "통신과 방송이 융합된 미디어 환경에서는 양방향 영상의료 서비스, 교육 등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의 서비스가 생겨날 것"이라며 "지상파 방송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찬성측 "사후 규제는 강화해야"

평행선을 달리던 참석자들의 토론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안의 사후 규제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접점을 찾았다.

신문과 대기업의 진입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론 독과점을 막기 위한 시청률·점유율 규제나 퇴출 조항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미디어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찬성하는 학자들도 사후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윤식 교수는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언론 자유 침해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 입법을 하는 것이라면 그 다양성의 정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를 토대로 '시청률·점유율' 규제를 안전장치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 방송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과 대기업을 참여시켜 산업을 살리겠다고 한다면 방송 시장 전체에 대한 선행조사를 한 후에 구체적인 사후 규제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1차 토론회를 열었고 이날 토론회는 2차 토론회였다. 토론회에는 학계뿐 아니라 방송 종사자 등 200여명의 방청객도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방송법 개정안 #미디어법 #정병국 #방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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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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