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능선에 걸린 빨래가 쓸쓸한 까닭

[랑탕히말을 걷다①] 라마는 소를 잃고, 티베트인들은 나라를 잃고

등록 2009.02.07 17:51수정 2009.02.0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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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랑탕히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인 캉진곰빠(해발 약3800m)에서 바라본 해발 약 6400m의 강첸포. 두 번째 랑탕히말을 걸었는데 운이 좋게도 날씨가 쾌청했다.

랑탕히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인 캉진곰빠(해발 약3800m)에서 바라본 해발 약 6400m의 강첸포. 두 번째 랑탕히말을 걸었는데 운이 좋게도 날씨가 쾌청했다. ⓒ 이주빈


내가 처음 랑탕히말을 걸었을 때는....

강한 자외선이 랑탕히말라야 능선을 거침없이 타고 내려오더니 볼에 쏟아진다. 따갑지만 상냥하다. 녀석을 내려 보낸 하늘, 하늘은 검푸른 바다처럼 티 한 점 없이 시퍼렇다. 기분이 한결 쾌청해진다. 느낌이 좋다. 작년처럼 고소에 시달리진 않으려나.


'눈(雪)의 거처'인 히말라야를 지난해 처음 걸었을 때 나는 심한 고소증상에 시달렸었다. 처음엔 손끝이 저려오는가 싶더니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구역질이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쌍코피까지 줄줄 흘러 나는 코흘리개 꼬마처럼 화장지로 콧구멍 두 개를 틀어막고서 간신히 걸어야 했다.

히말라야를 처음 걸었을 때 고소증상과 함께 나를 심하게 괴롭혔던 것이 또 있었다. 그것은 '달라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해발 몇천 미터까지 올라갔다고 자신이 등정한 높이만을 따지는 이들과 다르고 싶었다. 아무리 산길이라지만 돈으로 우쭐대는 졸부나라의 국민이기보다는 아시아 시민으로서 겸양을 지키고 싶었다. 다리로 걷는 트레킹이 아니라 가슴과 마음으로 걷는 순례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히말라야에서 돌아왔을 때는 무언가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고 자꾸 스스로를 채근했다. 널브러진 유리조각처럼 위협을 가하는 관계들은 정리해야 마땅하다고 다짐했다. 시 한 줄로도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어지러운 마음 조각들은 고개 못 들게 하겠다며 자못 벼르기도 했다.

그래서였던지 나의 첫 번째 랑탕히말 길은 무겁고 어두웠다. 만년설로 살갗을 뽐내는 히말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경외의 찬탄대신 다리에 실린 상념의 신음을 토해내느라 헉헉거렸다.


수십억년을 빛으로 달려온 별들이 히말의 능선에 걸터앉아 곤한 잠을 청한 밤에도 나는, 단칼에 베어 내야할 몹쓸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까칠하고 칙칙한 밤이었다. 그 밤 이후 고소증상은 더욱 심해졌었다.

두 번째 랑탕히말을 걸으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빨래'


a  이른 아침 랑탕히말의 능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듯 빨래가 걸려 있다.

이른 아침 랑탕히말의 능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듯 빨래가 걸려 있다. ⓒ 이주빈


그래서 다시 랑탕히말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몇 가지를 스스로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먼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자 했다. 경외감이 들면 경외감이 드는 대로 보고, 낯설면 낯섦대로 보자. 눈에 보이는 대로 바로 보지 않으면 얄팍한 감정의 동요에 휩쓸리기 쉬울 테니. 그래 도법 스님 말씀처럼 "실상을 보자, 그러면 동요하지 않는다".

둘째로 일기 쓰듯 글을 쓰지 말자 했다. 억지로 공책을 채우는 글이라면 억지생각을 끌어와야 한다. 생각날 때, 마음이 움직일 때 언제든 어디서든 내가 쓰고 싶을 때 쓰자. 그래야 물처럼 부드럽고 새의 나래처럼 자유로울 테니.
        
강박을 덜어내고 걷는 걸음은 가볍다. 랑탕리룽(해발 약7225m)에서 내려온 바람이 히말의 산간마다 둥지를 튼 사람의 마을을 지나 랑탕계곡에 첨벙 들어갔다가 나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서늘하고 맑은 기운이 좁은 가슴을 울린다. 가슴이 서늘해지니 머리가 시원해진다. 머리가 시원해지니 눈이 맑게 갠다. 이제사 보일 것들이 보인다.

수상한 일이다. 눈이 맑아진 이후 가장 먼저 들어오고,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빨래'다. 히말의 능선에 걸린 빨랫감, 히말의 빨래터에서 수다 떠는 아낙들,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 엄마 대신 빨래를 하는 아이….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경 대신 생활을 스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티베트인들의 항중 근거지였던 랑탕

a  엄마 대신 아이들을 빨래를 하고선 뾰루퉁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아이들 역시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네팔 랑탕히말지역으로 이주해온 티베트인들의 후손들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불과 60여 전엔 티베트에 살고 있었다.

엄마 대신 아이들을 빨래를 하고선 뾰루퉁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아이들 역시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네팔 랑탕히말지역으로 이주해온 티베트인들의 후손들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불과 60여 전엔 티베트에 살고 있었다. ⓒ 이주빈


a  티베트인들의 항중 근거지 중 하나였던 랑탕마을(해발 약 3330m). 다른 고산지역과는 달리 너른 초원이 랑탕히말 지역엔 많아 말 등을 기른다.

티베트인들의 항중 근거지 중 하나였던 랑탕마을(해발 약 3330m). 다른 고산지역과는 달리 너른 초원이 랑탕히말 지역엔 많아 말 등을 기른다. ⓒ 이주빈


랑탕은 티베트어로 '소를 잃어버린 곳'이란 뜻이다. 한 라마승이 소를 잃어버려 한참을 찾아 헤매다 찾았는데 소가 놀고 있던 곳이 너무 좋더란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역엔 드물게 초지로 된 평원이 있어서 말 등을 목축할 수 있고, 히말의 능선을 끼고 그 유명한 랑탕계곡이 흐르고, 봄이면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대니 라마승이 보기엔 고산낙원이었을 것이다.

지명유래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랑탕히말 지역에서 해발 3000m 안팎으론 티베트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네팔과 티베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히말라야 능선을 국경으로 접해 있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이 그나마 쉽게 랑탕히말로 이주해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랑탕히말에 살고 있는 많은 티베트인들은 지난 1950년 이후 히말라야를 넘어온 이들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무력 침공한 것이 지난 1950년. 조국 티베트에서 항전의 거점을 잃어버린 티베트인들은 1951년 히말라야 능선을 넘어와 이곳 랑탕히말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에 맞서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해발 약 3330m에 있는 랑탕마을은 랑탕히말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마을이자 티베트인들의 중요한 항중 근거지 중 하나였다.

라마가 소를 잃고 헤맨 곳에서 티베트인들은 나라를 잃고 헤맸다. 나라를 빼엇긴 그들의 안타까움과 분노가 소를 잃어버린 라마만 못했을까. 나라를 되찾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소를 되찾으려는 라마만 못했을까.

랑탕히말의 바람이 다시 산산하게 불어온다. 히말의 능선에 걸린 빨랫감들이 유랑한 깃발처럼 한가롭게 흔들린다. 그러다 한 번씩, 그러다 한 번씩 통곡하는 어미의 좁은 어깨처럼 무참하게 들썩인다.

'끝내 라마가 소도 찾고 고산낙원도 찾았듯 언젠가 티베트인들도 빼앗긴 나라도 되찾고 반가운 이들과….'

마음 속 기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꽝- 꽝-' 폭음이 터진다. 중국 사람들이 네팔에서 티베트 라싸로 가는 도로를 놔준다며 히말의 능선을 폭파하는 중이란다.  

a  사랑코트에서 내려오다가도 빨래 너머로 히말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랑코트에서 내려오다가도 빨래 너머로 히말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 이주빈


#히말라야 #네팔 #중국 #티베트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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