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시계는 도시보다 빠르게 돈다

[랑탕히말을 걷다②] 종일 걷기만 하는데 하루가 바쁜 까닭

등록 2009.02.10 19:26수정 2009.02.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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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캉진곰빠로 가는 길에 돌탑과 오래된 룽다(기도 깃발)가 이정표처럼 서있다.

캉진곰빠로 가는 길에 돌탑과 오래된 룽다(기도 깃발)가 이정표처럼 서있다. ⓒ 이주빈


시간의 속도는 공간에 따라 다른 것인가. 희한하게도 히말라야의 시계는 도시의 시계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오로지 히말의 능선을 느리게 걷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랑탕히말을 걷는다는 것은 보통 둔체(해발 2030m)에서 출발해 툴루샤브루(해발 2210m), 라마호텔(원래 이름은 '창탕', 해발 2410m), 랑탕(해발 3330m)을 거쳐 캉진곰빠(해발 3800m)까지 왕복 약 100km를 걷는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하산 길은 약간 다르게 잡을 수 있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꼬박 열흘 정도는 걸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해 떠서 해질 무렵까지 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걷는 것뿐이다. 더러 경사가 없고 오솔한 길이 눈앞에 펼쳐지면 길 위의 벗들과 살뜰한 얘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채 10분을 넘기 힘들다.

다시 오르막 경사가 심해져 숨이 턱밑을 탁- 탁- 치는 것은 물론이고, 평지라 해도 해발 3000m가 넘는 산길에서 호흡 길게 수다를 떨며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발 2000m 이상의 높이에서 섭생을 하고 살아본 적이 없는 탓이다. 몸은, 그렇게 민감하다.

많이 걸어야 하루에 10km 남짓. 달팽이 걸음 같은 속도로 느리게 걸을 뿐인데 하루는 번개 치듯 빠르게 흘러간다. 희한한 일이다. 히말 산간에서 흘러가는 단조로운 일상의 속도가 도시의 빠르고 번잡한 일상의 속도를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도시에서 얼마나 분주한가. 눅눅한 몸을 잠에서 깨우기 위해 알람을 3분 간격으로 맞춰두고 신호를 보내지만 피로에 찌든 몸은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집을 나서는 순간 도시의 숱한 신호는 한 바퀴 구를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낯선 자들이 보내는 무심한 눈빛은 공허하게 '왜?'라는 시비만 남긴 채 사라져간다.

일터에 도착하면 숱한 전자명령체계들이 하루를 조직한다. 휴대폰 전원을 켜 상사의 즉각 호출에 대기한다. 어제 진행했던 일의 경과가 무사한지 전자메일에게 안부를 묻는다. 구조조정의 위협으로부터 나는 무사한지 메신저로 동료들과 '뒷담화를 까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과다. 느닷없이 내게 던져진 선배의 일을 해치우고나면 나의 일이 징징대고 운다. 그리고 마침내 밤이 되면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겠다며 회식이라는 일터로 출근을 한다.


a  랑탕히말을 걷는 나의 그림자. 오로지 걸을 뿐인데 나의 하루는 너무 분주하다.

랑탕히말을 걷는 나의 그림자. 오로지 걸을 뿐인데 나의 하루는 너무 분주하다. ⓒ 이주빈


그런데 수상하리만큼 그런 하루는 너무, 길다. 많은 일을, 숱한 독촉을 받으며, 얽힌 관계 속에서 해내고 있지만 나의 하루는, 너무, 길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일과 스트레스, 명령으로 구성된 나의 하루는 전혀 분주하지 않다. 손 쉴 틈도 없을 것 같은 그 시간의 구성을 찬찬히 열어보면 멍하게 혼을 놓고 게으른 상념에 빠져 있는 자신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전혀 분주하지 않다. 자동차의 속도보다 빠르게 흐를 것 같은 도시의 일상은 전혀 빠르지 않다. 다만 복잡하게 구성돼있는 일상의 단면이 껍질로만 흘러가고 있어서 빠르다고 느낄 뿐이다.


그런데 오로지 걸을 뿐인 히말라야 고지산간에서의 하루는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부처님이 스물 네 시간 중 최소한 아홉 시간은 몰래 빼 드신 것 같다. 도시에서는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하루가 더디기만 하다. 분주한 것만 같은 지루한 하루들이 결국 주말을 학 머리를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도시의 생활과 일상에는 몰입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몰입할 일이 없고, 몰입할 관계가 없고, 몰입할 기다림이 없는 것이다. 몰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일이 일상을 구성해도 한 구석이 휑하다. 휑한 일상에 분주함이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가 좋아 떠나왔고, 제가 좋아 걷는 길은 몰입의 길이다. 힘들어도 제가 좋아 오로지 걸을 뿐이니 흥이 절로 난다. 그 몰입의 힘으로 뚜벅뚜벅 걷는 것이다. 히말을 걷는 걸음의 속도는 달팽이의 속도지만 몰입의 지경에서 밀고 가는 시간의 속도는 지구의 자전속도를 능가한다. 오로지 몰입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걸을 뿐인 그토록 단순한 일이 하루를 분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분주함은 네온사인 번쩍이듯 ‘바쁜 척’이란 허상으로 가득하다. 반면에 히말에서는 오로지 걸어야 그 다음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 ‘바쁜 척’ 엄살 떨 시간도 없다. 오로지 걸어야만 한다. 걷기 위해선 온 마음과 온 몸의 힘을 다해 바쁘게 다리를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도가 없다. 바로 그때 시간은 그렇게 몰입해있는 나를 비껴 누군가와 함께 흘러가버리고 만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떠난 자들과 길 위의 나그네들이 무척 외로울 것이라 얘기한다. 맞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던가. 문제는 '외로움이 어디로부터 오는가'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외로움의 실상과 허상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도시에서 외롭지 않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하는가. 내게로 타자가 오는 길은 이 뿐인 듯 24시간 휴대전화를 항상 열어두고 산다. 초 단위로 부쳐지는 전자편지도 못 미더워 아예 메신저를 켜둔다.

a  랑탕히말의 허리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에게로, 또 사람이 사는 마을로 길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랑탕히말의 허리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있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에게로, 또 사람이 사는 마을로 길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이주빈


이촌, 삼촌도 모자라 일촌을 한 명이라도 더 맺으려 전자쪽지를 날린다. 관심 있는 분야마다 카페에 가입해 동호인을 만든다. 그 마저도 온라인만 하면 '정 없어 보여' '번개'도 치고, '오프 모임'도 나간다. 온·오프모임을 하고도 배설하지 못한 외로움은 블로그에 토해놓으며 새로운 이웃을 찾는다.

그 많은 일촌과, 그 많은 동호인들과, 그 많은 친구들과, 그 많은 이웃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늘 외롭다 한다. 사이버와 현실의 공간에서 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몸서리치게 고독하다 한다.

무엇이 외로움일까. 왜 외로운 것일까. 외로움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외로움은 많이 받는다고 치유되는 병이 아니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즐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은 몰입할 수 없는 관계의 허상으로부터 오는 병이기 때문이다. 황홀하게 몰입할 수 있는 관계,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서로 넉넉하게 몰입할 수 있는 관계만이 외로움을 없애는 약이다.

이때의 몰입을 사랑이라 부르면 어떻고, 헌신이라 하면 또 어떻고, 나눔이라 한들 어떻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자신에게 참으로 깊게 들어갈 줄 알아야 타자 역시 너르게 품에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걸을 뿐인 나의 하루는 오늘도 분주하다. 오로지 걸을 뿐인 내 외로움의 끝엔 그대가 기다리고 있다. 다시 랑탕히말에 노을이 드리운다.

a  랑탕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봉오리인 랑탕리룽에 드린 노을. 이 사진은 2008년 처음 걸었을 때 둔체에서 찍은 것이다.

랑탕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봉오리인 랑탕리룽에 드린 노을. 이 사진은 2008년 처음 걸었을 때 둔체에서 찍은 것이다. ⓒ 이주빈


#히말라야 #걷기 #외로움 #시계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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