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덕분에 담배 끊었네~

2년 전 '금연 수기' 올린 뒤 유혹 뿌리쳐

등록 2009.02.12 10:36수정 2009.02.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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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2월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지 2년이 지났다. 그 당시 동료교사들은 떠나는 나에게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오라는 이야기보다 1년 뒤 귀국할 때는 꼭 담배를 끊고 재회하기를 바란다는 농담 섞인 말을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교사들의 말에 우스갯소리로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20년 이상 피운 담배를 쉽게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기에 교사들의 말은 으레 하는 인사말로 받아들여졌다.

출국하기 전에 제일 먼저 챙긴 것이 담배였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공항 면세점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최대한도(4인 기준 8보루)의 담배를 사기도 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담배만은 끊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타국 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담배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필리핀 도착 후, 나의 흡연량은 국내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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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내가 담배를 끊어야만 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어학연수를 받기로 한 대학 교내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었고 담배를 피우려면 학교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교문 밖까지는 걸어서 5분 이상 걸렸으므로 다음 강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라도 쉬는 시간 10분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매번 그런 불편이 있음에도 담배 피우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한 번은 짧은 시간 내 담배를 피우러 갔다가 강의시간에 지각한 적이 있었다. 강의실 문을 열자 교수님을 비롯하여 함께 강의를 듣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자리로 돌아가 앉자 주위 사람들이 코를 막으며 인상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시 뒤, 옆에 앉아 있던 필리핀 여자로부터 쪽지가 건네졌다.


"당신, 한국사람 때문에 강의를 들을 수가 없어요. 당신 몸에서 나오는 '담배 냄새' 정말이지 역겨워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제발 제 옆에 앉지 마세요."

그 쪽지를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제야 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을 그 사람들은 불쾌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로 국적까지 들먹이며 필리핀 현지인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에 나는 모멸감마저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의 행동이 외국에서 보여주지 말아야 할 일종의 추태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한국인으로서 수치심마저 느껴졌다.

그 충격으로 필리핀에서 금연을 시작했다. 마침내 금단현상과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난 뒤, 한 달만에 담배를 끊게 되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 금연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금연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흡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오마이뉴스 쓰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기사화된 후, 만에 하나라도 내가 다시 흡연을 하게 된다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며칠을 고민하고 난 뒤, 용기를 내어 나의 금연수기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였다(2007년 7월 30일). 그 후, 내 기사는 '오름' 기사로 채택되어 수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조횟수 3만5000 이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수많은 댓글(70개)이 달려 한편으로 겁나기 시작했다. 내 금연기사가 이렇게까지 누리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댓글에서 누리꾼들은 대부분 내 금연을 축하해 주었으며 약속을 꼭 지킬 것을 주문하였다. 반면 그 금연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며 아예 포기하라는 식의 댓글을 단 누리꾼도 있었다.

귀국 후(2007년 12월), 나를 보자마자 동료교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학연수와 관련된 이야기보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내 기사( "당신 같은 한국인 냄새, 정말 역겨워요")를 잘 읽었다며 지금도 그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물어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동료교사들은 필리핀에서 쓴 내 기사를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흡연 유혹이 생겼다. 그때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와 누리꾼들의 댓글을 읽으며 그 유혹을 뿌리치곤 했다. 그리고 당시의 심정을 글로 써 다시 <오마이뉴스>에 게재('다시 찾아온 흡연의 유혹', 2008.4.11)하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흡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담배를 끊은 지 3년이 되어간다. 아직 단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어본 적이 없다. 이 모두가 내 금연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공개한 탓이 아닌가 싶다. 올 초, 많은 애연가들이 금연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으리라 본다. 어쩌면 금연계획이 작심삼일(作心三日) 되어 흡연을 다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금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본다. 의지가 약한 애연가에게 나와 같은 방법을 택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누리꾼과 약속을 하라. 누리꾼의 쓴소리가 두려워서라도 담배를 끊게 되리라.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
#오마이뉴스 #금연 #필리핀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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