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런 시기에 결혼해야겠냐?"

2009년 대한민국에서 결혼하기 ①

등록 2009.02.12 09:50수정 2009.02.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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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작년 9월경이었다. 1년 넘게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도 나의 불확실한 장래와 부족한 경제적 능력 때문에 미뤄오던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결혼 결심의 가장 큰 촉매제는 우습게도 미국대선이었다. 당시 오바마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거의 확정되어가던 그 때. 언젠가는 전공인 북한학을 살려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던 내게 그의 당선은 하나의 기회로 보였다.

아무리 반북을 기치로 내건 현 정부지만 미국의 대북노선이 바뀌는데 지금까지의 정책을 그대로 견지할 수 없을 터, 북한과 관련된 일자리가 늘지 않을까? 전공도 살리고, 돈도 벌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그래 조금만 더 열심히 돈을 벌면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Yes, We Can!

상황 판단이 이러하니 당장 그 동안 미뤄왔던 결혼을 떠올릴 수밖에. 조금 서둘러 결혼을 하고 몇 년 동안 돈을 모은 뒤, 여자 친구와 함께 각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되겠거니. 물론 내 나이 서른둘이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노력하면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겠거니.

시련


그러나 이와 같은 나의 결심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크나큰 시련을 맞게 되었다. 미디어를 통해 슬슬 흘러나오던 미국 발 경제위기가 본격화 되는가 싶더니, 그 여파가 심각한 모습으로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내가 근무하는 물류업에서도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7월까지 천정부지로 치솟던 유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곤두박질쳤으며 대신 환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세계경기의 침체와 함께 물량은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주위 여러 회사들이 부도의 위기에 내몰렸다.


기업들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덕분에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에 속한 노동자들이 속속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당장 내 옆에서 멀쩡히 있던 직장동료들이 일이 돌아가든 말든 자본의 논리로 인해 사직서를 써야 했으며, 남은 사람들은 나간 사람들의 업무까지 완수하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그것도 연봉은 깎인 채로 말이다.

어느 늦은 밤, 집에 가기 위해 올라탔던 택시 안에서 기사가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어찌 되었건 회사에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상황이 이쯤 되니 사람들에게 결혼소식을 알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부모님의 지인들이야 대부분 은퇴하시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시니 비교적 괜찮겠지만, 현장에서 경제위기의 한파를 그대로 맞고 있는 나의 지인들에게 결혼을 이야기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제위기가 나의 경사를 부담으로 둔갑시키고 만 것이다.

먹고 살기 어려워 아내의 맞벌이를 위해 계획 없이 가진 둘째 아이를 지웠다는 회사 동료 앞에서, 가지고 있던 펀드가 반 토막 나는 바람에 결혼 계획이 무기한 연기 됐다는 동료 앞에서, 그리고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 동료들에게 어찌 그리 쉽게 나의 결혼을 운운하겠는가.

부조금 하면 보통 5만원, 10만원이 체면치례인 이 시대, 그것은 분명 적지 않은 돈이었다. 아무리 인맥이 중요하고 체면유지가 중요한 한국사회라고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청첩은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었다.

청첩을 할 수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덕분에 사람들은 내가 약간 결혼 눈치라도 보이면 꼭 이럴 때 결혼을 해야겠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핀잔을 주었다. 물론 웃으며 말하고 웃으며 듣는 입장이었지만, 어쨌든 청첩을 해야 하는 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고 과연 이 결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 과연 결혼은 가능한 것일까? 정부는 출산율이 급감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그 해결책을 찾는다고 난리지만, 임신·출산은커녕 그 전 단계인 결혼 자체부터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a 청첩장 결혼을 하려고 보니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청첩장 결혼을 하려고 보니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 더카드


결혼률 20% 감소의 의미

이런 답답한 내 마음과 통했을까? 때마침 뉴스에서 보도 한 꼭지가 흘러나왔다. 결국 나와 같이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소식이었다.

“경제위기로 결혼도 미뤄… 지난해 20% 감소

경제 위기 여파로 목돈 마련이 어려워진 결혼적령기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월간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혼인은 2만700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600건(-19.6%) 감소했다. 전 년 동월 대비 혼인 증감률은 7월 5.2%, 8월 -8.8%, 9월 10.3%, 10월 -6.5%를 기록하다가 11월 들어 급감했다. 통상 11월은 연중 결혼 성수기이지만 지난해 11월은 2004년 이후 11월 중 혼인이 가장 적었다.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혼인도 29만1000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1만4700건(-4.8%) 줄었다.”

위 소식을 전하는 뉴스 앵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20%가 줄었다니, 그러려니. 물론 그것은 보도 자체에 감정을 섞지 말아야 하는 언론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건 자체가 한낱 숫자로 치환되면서 그 사건 속에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일어난 풍경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독 신경 쓰이던 그 기사.

결혼률 20% 감소. 그것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미 <88만원 세대>에서 우석훈 박사가 지적한 바 있듯이 그 사회 젊은이들의 자립 시기는 그들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결혼이 곧 독립을 의미하는 바, 결혼률 20% 감소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독립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가계를 꾸릴 수 있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남자의 경우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까지 졸업하여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다 되어도 독립할 수 없는 상황.

따라서 결혼률 20% 감소는 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청년실업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독립으로서 결혼을 주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 자체에 필요한 자금 역시 뻥튀기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현실 아닌가.

나이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돈벌이가 없어 독립도 하지 못한 채 아직 부모님의 품속에서 마냥 눈치만 봐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 아마도 이들의 존재는 가까운 미래 자연스레 결혼적령기의 상승과,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짐이 될 것이다.

이제 혼기가 꽉 찬 이들이 명절에 듣는 그 무시무시한 ‘언제 시집·장가갈래?’라는 질문은 단순히 결혼만의 문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험난한 시대 속에서 그 질문은 곧 ‘취직 안하냐?’라는 질문과 같은 무게를 갖게 되었으며, 개인의 능력과 선택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치환되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마냥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구직을 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 역시 그들의 눈이 높고 개인의 능력이 모자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결혼은 개척정신을 갖고 모든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대통령의 윽박지름으로도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결국 결혼률 20% 감소라는 지표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결혼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하루빨리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함을 보여준다. 결혼이 그 사회의 연속성과 구성원의 재생산을 위한 전제라 한다면 이를 개인만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사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왕에 결심한 이상 난 2009년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속에서 결혼을 추진하고 있고, 온갖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겪고 있는 그 현실적인 제약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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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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