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거부한 서울YMCA의 예고된 패배

7년 싸움 끝에 승소 판결 얻어낸 38명 여성들

등록 2009.02.12 19:45수정 2009.02.12 19:45
0
원고료로 응원

여성실무자들은 단식기도에 돌입하기도 했다. ⓒ 전미옥

여성실무자들은 단식기도에 돌입하기도 했다. ⓒ 전미옥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14부는 서울 YMCA 여성회원 등이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제명(2007년, 성평등을 위반해 퇴회)된 서울YMCA를 상대로 제기한 '성차별로 인한 정신적 피해보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7년 전 가을부터 우리 여성회원 등은 제명된 서울YMCA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회원으로서 총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설득과 대화를 요구했다. 주요 의사결정을 장악하고 있는 이사회에게 성경책과 장미꽃을 전달하기도했고, 편지쓰기를 통하여 평화로운 문제해결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적인 행동은 반복해서 무시당했다. 이후 회원들은 1년 넘게 종로회관을 중심으로 시민게시판이나 목요집회로 항의를 이어갔고, 회원과 시민들에게 부당한 처사를 알려나갔다. 시민사회 역시 남녀평등의 시대를 역행하는 우려스런 행태에 대해 상식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제명된 서울YMCA 이사회와 간부진은 반성이나 개선은커녕 우리 여성회원들을 적대시하고 갖은 모욕을 주며 성차별 횡포를 지속해왔다. 이를 보다 못한 여성실무자들이 단식기도를 통하여 호소했을 때도 그들은 무시와 외면으로 대하였을 뿐 차별당하는 자의 아픔과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7년 싸움 끝에 성차별 이겨낸 38명의 여성

 

더 이상 제명된 서울YMCA 안에서 성차별을 극복할 방법이 없어진 우리는, 성차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과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지방법원에서 소가 기각되고, 다시 항소를 제기하여 이번에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울YMCA는 '성차별로 인하여 한국YMCA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전국연맹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제명된 서울YMCA의 행위는 성차별"이며 "이는 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해치는 것으로서 위법 행위이고, 따라서 제명된 서울YMCA는 그 피해자인 여성회원들에게 1인당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성차별로 인하여 여성회원들의 인격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부당한 성차별을 행하는 서울YMCA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번 판결 이전에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명된 서울YMCA에 성차별을 시정하도록 권고했고,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양성평등포럼과 많은 시민사회단체들, 여성부 등이 수차례 문제해결을 촉구해왔다. 그때마다 서울YMCA는 성차별이 내부관행으로써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으며, 헌장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여론을 무마하고 6년이 넘는 시간을 끌어왔다. 지금 와서 돌아보건대 제명된 서울YMCA는 성차별을 실제로 행하면서, 내부사정을 모르는 외부사람이나 기관들에게는 마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양 거짓된 모습으로 일관해 온 셈이다.

 

우리 여성회원들은 적게는 수년, 많게는 20년이 넘도록 제명된 서울YMCA에서 자원 활동을 해온 봉사자들이다. 재원과 시간이 들더라도 선한 의지를 모아 사회의 변혁과 변화를 모색하는 데 기꺼이 함께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며 활동했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아온 단체가, 한편으로는 이렇듯 내부의 약자를 무시하고 핍박하면서 겉으로는 세상에 의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을 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소수 남성 간부들에게 독점돼 있는 서울YMCA

 

목요집회 개최 모습. ⓒ 전미옥

목요집회 개최 모습. ⓒ 전미옥

 

차가운 길거리에서 진행하던 집회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성차별을 하지 말라는 우리의 호소를 정치적인 음모라고 몰아붙이며, 심지어 고함과 욕설로 우리를 대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참아야 했다. 우리가 겪어야 했던 모멸과 멸시, 남몰래 흘린 눈물은 그야말로 다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우리만의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이번에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배상금은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도 소송의 목적도 아니다. 우리는 소송이라는 방법을 통해 성차별로 인한 고통과 피해를 배상금으로 상징하고자 했을 뿐이다. 지나온 6년간 우리가 받아온 끔찍한 상처들은 억만금을 들인다 해도 치유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우리는 항소심 승소를 통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제명된 서울YMCA의 성차별이 부당한 것이며 그들이 가해자임을 알리고자 하였고, 이번 승소판결을 통해 이를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이번 소송과 제명된 서울YMCA의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명된 서울YMCA는 우리 여성회원들에게 반성과 사과는 말할 것도 없고, 전화연락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이 행한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른 지역의 YMCA 회원과 실무자들이 동역자로서 애정 어린 충고를 수차례 건네주었으나 그들은 모두 외면하고 돌아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미 제명된 서울YMCA가 건강한 운동단체라면 지녀야 할 자기정화와 자기치유 기능을 상실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조차 성차별이 잘못된 것이며, 그렇게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도덕성과 민주적인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기본원리이다.

 

다음으로 하나의 단체와 조직이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고, 소수에 의해 폐쇄적으로 장악되어 있으면, 그 내부에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가 있더라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명된 서울YMCA는 겉으로 수 만 명의 회원과 연간 수 백 만 명의 프로그램 이용자들이 드나드는 커다란 단체이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사회와 핵심간부라는 소수의 보수적인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단체가 자기정화와 자기치유 능력을 상실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밑으로부터의 의견수렴, 외부의 충고와 조언 등을 무시한 채 폐쇄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와 운영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만 여개 YMCA에는 없는 성차별 문제가 유독 이 단체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절차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차별 소송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이 순간에도 성차별을 하고 있는 이 단체는 자원봉사자 대부분과 회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여기에서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며 미래의 지도력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어린이를 돌보는 보육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등 그야말로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조직체로 운영되고 있다.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시민사회단체나 청소년 단체 또는 종교단체 등에 여성 지도력의 성장과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는 '보이는 벽'이 널려있는 것에서부터, 문화적으로 또는 분위기상 가부장적인 폐해가 광범위하게 잔존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겉만 보고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가져왔던 많은 기대들이 깨져나갔다. 단체나 교계나 할 것 없이 공식적인 행사장이나 회의장마다 대부분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여성들은 뒷바라지와 장식물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소송과정에서― 적잖은 비용마련과 수천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제출, 주변의 따가운 시선, 원고 개개인의 어려운 사정, 소송 참여 회원에 대한 제명된 서울YMCA로의 비열한 협박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항소를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하리라는 시선을 받는 시민사회단체가 이런 지경인데, 다른 어떤 곳에서 활동의 과제를 찾을 수 있었겠는가. 제명된 서울YMCA의 성차별은 우리 여성회원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더 많은 단체와 기관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이며 우리 자신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다른 곳의 성차별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갈 수 있는 운동의 현장이라고 믿고 끝까지 지키려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활동을 함께하며 손잡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끝없는 감사를 드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는 무료변론을 기꺼이 맡아주었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자원 활동가들은 언제나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었고, 자신의 문제인 양 행동에 나선 남성회원들은 든든한 우군이었다.

 

YMCA운동의 치부를 솔직히 인정하고 도움을 준 지역YMCA 실무자와 회원들은 YMCA의 자기정화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때로는 바람처럼 흩어지고 때로는 물처럼 모여들며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여성회원들에게 말할 수 없이 뜨겁고 뜨거운 사랑을 전한다.

 

촛불모임 모습. ⓒ 전미옥

촛불모임 모습. ⓒ 전미옥

 

서울YMCA 성차별 철폐 운동 경과

- 1989.   서울YMCA 청년YMCA  여성위원회 참정권 요구

- 2002. 12. 서울YMCA 개혁과 재건을 위한 회원비상회의 '여성특위' 구성

- 2003. 10.  서울YMCA 이사회 여성특별위원회 해체

- 2004. 2. 서울지방법원 서울YMCA 101차 총회 의결권, 선거권 인정 가처분 신청 기각

- 2004. 2. 여성참정권 인정 촉구 1인 시위 시작

여성이라는 이유로 총회 의결권 등을 배제하는 것은 여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인정. 서울YMCA는 여성회원들에게 총회 의결권 등을 허용할 것을 권고한다.

- 2004. 5.  국가인권위원회 서울YMCA 성차별 개선 권고

- 2004. 5.  한국YMCA 전국연맹 서울YMCA 여성참정권 즉각 인정 권고문 채택/ 한국YMCA  여성특별위원회 구성

- 2005. 2.  서울YMCA 총회원 절차이행 가처분 신청, 기각(이사회 재량권이다)

- 2005. 9.  서울YMCA 여성회원 50명 서울YMCA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 2005. 12.  서울YMCA 여성총회원권 요청 남성회원 서울YMCA 명예훼손으로 회원 제명(6월 추진), 성차별철폐 회원연대위원회 이석행 위원장 회원 가입 거부

- 2006. 1.  서울YMCA 여성회원 73명 103차 총회원권 인정 가처분 신청

- 2006. 2.  서울YMCA 여성참정권 소망 여성실무자 철야·단식기도(8명) 돌입

- 2006. 2.   서울YMCA 제103차 총회 남성단체 헌장개정안 부결, 단식기도단이 이사회에 3개의 요구안 전달, 28일 28일 이사회가 단식기도단의 3개 요구 수용하면서 해산

- 2006. 3    서울YMCA 성평등 실현을 위한 목요집회 시작

- 2006. 4.  서울YMCA, 여성참정권 확보운동 회원을 서울YMCA 위원에서 배제

- 2006. 11. 15.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회, 차기 정기총회(2007.2.24 예정)에서 여성회원에게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총회원권을 부여하지 아니하면 서울YMCA를 자동으로 퇴회시키기로 결정.

- 2007. 2. 25  한국YMCA 전국연맹, 서울YMCA 제명

- 2007. 6. 28  서울지법 민사 제13부 손배소 기각 판결

- 2007. 7. 26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 제기

- 2009. 2. 10  서울고등법원 민사14부 서울YMCA에 손해배상 판결

덧붙이는 글 | 전미옥 기자는 이번 소송에 참가한 여성회원 중 한 명이며 현재 '너머서' 공동대표입니다.

2009.02.12 19:4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전미옥 기자는 이번 소송에 참가한 여성회원 중 한 명이며 현재 '너머서' 공동대표입니다.
#서울YMCA #성차별 #승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3. 3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4. 4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