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듯한 농촌
얼마 전 서울방송의 <긴급출동 SOS 24>란 프로그램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개밥도 못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소외된 할아버지의 사연이 소개돼 해당 지자체가 누리꾼들의 격렬한 항의에 시달리는 일이 벌어졌다.
때를 같이해 농촌의 노인과 한우의 인연을 담은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흥행위주의 인기몰이에 급급한 국내 영화계를 뒤돌아 보게 하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 우리네 언론들이 앞다퉈서 떠들어 대며 주된 이슈로 자리잡은 이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농촌과 노인이다.
형제와 자식이 떠난 농촌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기다리는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건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궁색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농촌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우리 농촌을 지키던 사람도, 한우도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 세계화와 자본의 논리에 떠밀려 도시민들에게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촌은 이제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듯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정부는 돌아오는 농촌을 부르짖으며 도농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도시 사람들은 농촌을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국책 연구기관은 농촌의 고령화 추세가 이런 상태대로 지속할 경우 2015년 쌀시장 개방과 더불어 2030년에 이르면 우리 농촌은 해체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유무역체제에서 농업보조금 더 늘리는 선진국
반면 선진국들은 농지, 농기계, 주택 등 각종 지원에다 '마에스터'라 불리우는 석사학위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는 농업인 교육시설을 완비하고 도시 젊은이들을 영농 인력으로 양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의 식량생산기반 조성과 지속적인 농촌 유지를 달성한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우리 정부의 농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프랑스는 이런 농업 후계인력 양성 정책을 통해서 실업 빈곤 범죄 등 도시 문제를 해소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농촌이 없는 프랑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시라크 대통령의 말은 이런 점에서 되새겨 볼 만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난해 9월 <대통령과의 대화-질문 있습니다>라는 생방송을 통해 전국의 국민들에게 "농촌을 살려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UR, WTO 등 신자유경제체제 속에서 농촌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직접 지원의 폭이 갈수록 줄어들고 농산물 시장개방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럼에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농업보조금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통계는 앞선 나라들이 농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미 FTA체결에 앞서 미국 정부가 우리측에 선결과제로 요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다름아닌 자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였다. 그만큼 자국 쇠고기산업의 육성과 생산자 보호가 절실한 것이다.
농촌이 세계화에 발목 잡는다?
그럼 우리에게 농촌은 무엇이었나?
혹시 세계화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란 누명을 씌우지는 않았나? 5개년 또는 10개년 농업예산을 더해 놓고 마치 수년간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인양 생색을 내고 투자한 만큼 성과를 거둘수 없다는 핀잔을 늘어놓지는 않았나? 은근히 농촌 주민들을 무지랭이 취급하며 내려다 보지는 않았나? 우리나라의 미래상을 놓고 홍콩 싱가포르를 떠올리며 애써 농촌을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워낭소리>는 사라져 가는 우리의 뿌리를 담고 있다. 눈물이 고인채 소시장을 향하는 한우, 그리고 차마 내다팔지 못하고 끝내 오랜 벗의 임종을 지키며 삶을 정리해 가는 노인은 다름 아닌 기력이 쇠한 우리의 뿌리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찬밥먹는 노예 할아버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 농촌 구석 구석에선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홀로 추운 겨울을 나던 할머니가 얼어서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상당수의 농촌 노인들은 도시에 자녀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면사무소 담당 공무원만 나무라고 그칠 일도 아니다. 이번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면에는 기초생활수급보장자만 380여 명, 장애인수는 350여 명에 이른다. 현재 면사무소의 직원 단 1명이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징계를 강요받고 있는 문제의 담당공무원은 그동안 지역주민들로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애를 써온 모범적인 일꾼으로 알려져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농촌은 우리의 뿌리, 다시 일으켜 세워야
요즘들어 농촌 문제 전문가들의 농촌 마을 방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주민들을 상대로 농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조차도 농촌에 머무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 눈치다. 교육을 받는 주민들 또한 그들 역시 잠시 왔다가는 이방인이란 생각으로 허전함을 채우지 못한다.
<워낭소리>와 '찬밥먹는 노예 할아버지'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TV에서 농촌문제를 다룰 때 일시적으로 농촌을 동정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우리의 뿌리인 농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기대해 본다.
쿠바에서는 농부의 수입이 대학교수보다 높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여건과 괴리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공동체 의식의 발원인 농촌, 그리고 땅을 일구고 먹거리를 제공하며 육체 노동의 가치를 실현해 온 농업인에 대한 인식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농촌은 젊은이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배우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우리의 뿌리인 것이다.
2009.02.13 08:57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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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먹는 노예 할아버지'와 사라져 가는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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