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59) 실하다實

[우리 말에 마음쓰기 550] ‘실한 감자’, ‘실해진 건 배’, ‘체격은 실했지만’

등록 2009.02.13 10:55수정 2009.02.1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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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실한 감자

.. 작년에 캐서 먹고 남은 감자를 심었는데 더러 벌레가 먹었어도 한 소쿠리가 가득 되는 실한 감자를 담아 놓고 보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  《박남준-나비가 날아간 자리》(광개토,2001) 44쪽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고쳐 줍니다. ‘흡족(洽足)해’나 ‘만족(滿足)해’라 하지 않고 ‘흐뭇해진다’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 실하다(實-)
 │  (1) 떡고물로 쓸 깨를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기다
 │   - 깨를 실한 뒤 빻았다
 │  (2) 든든하고 튼튼하다
 │   - 실한 장정을 구하다 / 몸이 실해야 한다
 │  (3) 재산이 넉넉하다
 │   - 그는 겉은 보잘것없어도 살림이 실한 사람이다
 │  (4) 허실 없이 옹골차다
 │   - 읍내까지 10리는 실하게 걸어야 한다 / 밑반찬을 실하게 장만합시다
 │
 ├ 실한 감자
 │→ 잘 여문 감자
 │→ 통통한 감자
 │→ 투실한 감자
 │→ 꽉 찬 감자
 │→ 굵직한(굵은) 감자
 └ …

감자나 고구마는 ‘굵다’고 말합니다. 굵은 모습을 보고 ‘통통하다’고 하거나 ‘투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자는 ‘잘 여물었다’고, ‘꽉 찼다’고 하기도 합니다. 다른 곡식을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 깨를 실한 뒤 빻았다 → 깨를 물에 불리고 껍질을 벗겨 빻았다
 ├ 실한 장정을 구하다 → 든든한 일꾼을 찾다
 ├ 몸이 실해야 한다 → 몸이 튼튼해야 한다
 ├ 살림이 실한 사람이다 → 살림이 야무진 사람이다 /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다
 ├ 10리는 실하게 → 10리는 넉넉히
 └ 밑반찬을 실하게 장만합시다 → 밑반찬을 넉넉히 장만합시다

그나저나, ‘實하다’라는 낱말에 “(깨를) 물에 불려서 껍질을 벗기다”라는 뜻이 있었군요. 그렇지만 이와 같은 뜻으로 ‘실하다’라는 낱말을 쓰는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산이 넉넉하다는 뜻으로 ‘실하다’를 쓰는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에 낱말뜻이 여러 가지 실리기는 했어도, 사람들 말씀씀이에서는 본 일이 없어요. “10리는 실하게 걸어야 한다”처럼 쓰는 일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곡식이라면 ‘알차다’나 ‘잘 여물다’나 ‘굵다’를 넣어 주고, 사람이라면 ‘튼튼하다’나 ‘든든하다’나 ‘다부지다’를 넣어 주며, 살림이라면 ‘야무지다’나 ‘알뜰하다’를 넣어 줍니다. 자리에 따라 다 다르게 넣으면 되고, 쓰임새에 따라서 알맞춤하게 우리 말을 차근차근 골라 줍니다.

ㄴ. 실해진 건 배


.. 에잇! 결국 먹기만 했잖아요. 3년 동안 실해진 건 이 배밖에 없나? ..  《가와쿠보 가오리/설은미 옮김-해피투게더 (6)》(학산문화사,2005) 206쪽

‘결국(結局)’은 ‘그러니까’나 ‘끝내’로 다듬고, ‘3년(三年)’은 ‘세 해’로 다듬어 줍니다.

 ┌ 3년 동안 실해진 건
 │
 │→ 세 해 동안 탄탄해진 건
 │→ 세 해 동안 늘어난 건
 │→ 세 해 동안 나아진 건
 └ …

일본 만화책을 옮겼기 때문에 ‘實해지다’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내 (몸뚱이인) 배가 실해지다”라 말하는 일은 드무니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시골에서는 “돼지가 실해지다”처럼 쓰기는 하는데, 이렇게 쓰는 말도 썩 알맞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돼지가 토실토실해지다”나 “돼지가 몸이 많이 불었다”나 “돼지가 살이 붙다”라 말해야 알맞지 않으랴 싶습니다.

보기글에서는 배구라는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연습보다는 꾸역꾸역 먹기만 해서 뱃살이 늘거나 배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세 해 동안 는 건 이 배밖에 없나”라 하거나 “세 해 동안 나아진 건 이 배밖에 없나”라 할 때가 한결 어울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또는 ‘단단하다-탄탄하다-튼튼하다’ 같은 낱말을 넣어 봅니다. ‘알차다-알뜰하다-야무지다-여물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됩니다.

ㄷ. 체격은 실했지만

.. 한눈에도 건강해 보일 만큼 체격은 실했지만, 어릴 때부터 열도 잘 나고 야사카에서도 가끔씩 학교를 못 갔다 ..  《고쿠분 히로코/손성애 옮김-산촌유학》(이후,2008) 199쪽

‘건강(健康)해’는 ‘튼튼해’나 ‘단단해’로 다듬고, ‘체격(體格)’은 ‘몸’이나 ‘몸집’으로 다듬습니다. ‘가끔씩’은 ‘가끔’으로 고쳐 줍니다.

 ┌ 체격은 실했지만
 │
 │→ 몸집은 단단했지만
 │→ 몸은 다부졌지만
 │→ 몸은 튼튼했지만
 │→ 몸은 좋았지만
 └ …

요즘 젊은이들은 몸이 아주 좋습니다. 요즈음 어린이들도 몸이 참 좋습니다. 못 먹고 못 입고 살았다는 우리들이지만, 굶주리거나 헐벗는 사람을 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이와 달리 북녘땅 사람들은 어린이나 젊은이나 몸이 참 안 좋습니다. 삐쩍 마르다 못해 굶주려 고달픈 사람이 몹시 많아요.

넉넉함을 누리지만 넉넉함을 이웃과 못 나누는 남녘땅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자란 채 허덕이지만 따뜻한 손길을 못 받는 북녘땅 한겨레가 아닌가 싶습니다.

넉넉하게 살면서 넉넉함을 나누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밥거리와 돈뿐 아니라 마음까지 넉넉함을 나누지 못하는 셈입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마음을 실어 내어 펼치는 말과 글에서도 넉넉하지 못하니, 말은 말대로 넋은 넋대로 어지러워지고 말아요. 좋은 몸집만큼 좋은 마음이 되고, 좋은 마음만큼 좋은 말이 되면서, 좋은 말이 좋은 넋으로 이어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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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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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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