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의 일이니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안내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학교 밖으로 쫓겨난 게 말입니다. 교실이 아닌 곳에서 맞는 바람 찬 한뎃잠 풍찬노숙(風餐露宿)이 뼈에 사무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서 어느새 졸업을 하게 되었다구요?
뉴스를 통해 선생님들의 졸업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쫓겨난 학교에 가서 졸업하는 제자들을 배웅하고 오셨더군요. 아이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고 껴안아 주셨다지요. 결국 눈치(?)없는 눈물이 또 터지는 바람에 겨우 수습해 놓은 웃음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지요.
아직 이별에 대처하는 기술과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잘 모를 아이들일 텐데 어쩌면 그렇게도 영글었는지, 선생님과의 갑작스런 이별마저 아이들에겐 성장의 힘이 되었나 봅니다. '슬픔도 힘이 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신들이 드리운 가르침의 깊이를 알게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 어제(13일) 졸업식을 했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들은 선생님대로 저마다 기쁨과 아쉬움이 눈물로 반짝이며 교차하는 때가 바로 졸업식이지요. 바람이 매우 사납게 불고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졸업식 풍경은 화사하고 따뜻했답니다.
하지만 "잘 훈련된 교장이 / 교사들을 길들이고 / 즐겨 길들임을 받으며 교사들은 / 학생들을 길들이는 소리"(고영규 시, <조지 오웰의 교무실> 중에서)가 익숙한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당신들과 같은 선생님들의 정의로움이 제 대접을 못 받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바닥이 질기고 튼튼한 운동화라도 새로 한 켤레 장만해야 할까 봅니다.
일부 학교에선 "담임으로서 졸업식장에 설 수 없으며, 특별석을 마련할 테니 손님으로 앉아 있으라"는 배려(?)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이를 정중히 사양하고 교실에서 졸업식 행사를 진행하셨다더군요.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손님맞이용 특별석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실, 희망을 그리는 칠판과 분필이 있고 사제 간의 온기가 깃들어있는 교실이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특별석 운운하는 학교 측의 억지는 다시금 혀를 차게 할 뿐입니다.
"교사가 굴종을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 부끄럽지 않고서 교단 위에 서기 위해 // 타협과 굴종을 가르치느니 백묵을 쥐고 죽는 일이 낫겠기에" (이광웅 시, <이종근>중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특별석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듯 자태를 뽐내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리에 나서면 어느덧 부는 바람에서 찬 기운이 가시고 훈훈한 느낌이 듭니다. 막바지 반짝 추위와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곧 봄이 올 겁니다.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 그런 학교의 선생님"(도종환 시, <어릴 때 내 꿈은> 중에서)으로 돌아오시는 날도 봄처럼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 바로 그것이니 말입니다.
부디 그날까지 기운 잃지 마셨으면 합니다. 연어처럼 돌아와 품에 안길 제자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힘들 내세요. 언제고 아이들이 돌아와 깃들일 모천(母川)은 바로 당신들의 품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힘으로 지금의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시기를.
봄바람과 함께 당신들의 복직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추신>
가만히 읊조리면 참 행복해지는 시이기도 하고, 조용히 따라 부르면 따뜻한 결의 같은 걸 하게 되는 도종환 시인의 시이자 노래를 첨부합니다. 함께 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시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 노래 : 노래패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임정훈 기자는 중학교 교사입니다.
2009.02.14 16:0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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