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더 이상 짭새 아닙니다!"
이랬던 신임 청장 내정자, 뭔가 다를까?

청와대, 김석기 후임 강희락 해경청장 발탁... 내일 발표

등록 2009.02.16 13:45수정 2009.02.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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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더이상 일제시대의 '순사'나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의 '하수인', 군사정권시절 최루탄으로 날을 지새며 데모나 막는 '짭새'가 아니라 공정한 법을 집행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찰입니다."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가 지난 2001년 경찰청 공보관 시절 언론인들에게 보낸 편지)

 

'용산 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이어 새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희락(56) 해양경찰청장. ⓒ 연합뉴스

'용산 참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이어 새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희락(56) 해양경찰청장. ⓒ 연합뉴스

청와대가 '용산 참사' 책임으로 사퇴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후임으로 강희락(56·치안총감) 해양경찰청장을 내정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강 내정자는 경찰 내 보기 드문 사법시험 합격자(26회) 출신으로 지난 1988년 경정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경찰청 경무과장(총경), 경기경찰청 수사과장, 서울중부경찰서장,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공보관(경무관), 워싱턴 주재관, 경찰청 수사국장(치안감), 대구·부산경찰청장,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등 경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지난해 3월 7일 해양경찰청장(치안총감)으로 임명됐다.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뒤를 이어 경찰청장으로 지명된 강 내정자의 임무는 막중하다.

 

'용산 참사'와 '청와대 이메일 지침' 등 대형 사건에서 거듭된 거짓 해명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현재, 청와대로선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을 추스릴 수 있는 강한 실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강 내정자를 '낙점'한 데는 이런 배경이 포함돼 있다.

 

'한화 김승연 보복폭행' 당시 "이택순 사퇴" 요구 부하들 반발 잠재우기도

 

강 내정자는 경찰 내부에서 '수사통'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오랜 공보관 생활로 언론 홍보의 생리를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강 내정자의 이력 속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강 내정자는 경찰청 공보관으로 임명된 지 2개월 뒤인 지난 2001년 2월 각 부처 공보관실과 언론사 편집국장·논설위원·사회부장 등 1000여 명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경찰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전임 공보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강 내정자는 이 편지에서 "경찰권 행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또 "경찰은 더 이상 일제시대 순사나 자유당 시절 정권의 하수인, 군사정권 시절 최루탄을 쏘며 데모나 막는 짭새가 아니다"라며 "국민들로부터 존중받는 경찰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썼다.

 

8년 전 쓴 그의 편지는 이제 15만 경찰의 총수로 새 임무를 맡은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다"라던 강 내정자는 당장 '청와대 이메일 지침'에 대한 거짓말로 또 한번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경찰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지경이다.

 

강 내정자는 지난 2007년 4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파문이 일었을 때 경찰청 차장으로 '지휘라인'에 있었다. 당시 검찰은 '보복 폭행 은폐 의혹'이 커지자 강대원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 장희곤 전 남대문서장 등 실무책임자들은 물론 이택순 전 경찰청장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강 내정자도 예외 없이 서면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청장과 강 내정자는 '요행히' 책임을 피해 갔다.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이 전 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경찰청 차장이었던 강 내정자가 "경찰청장 사퇴를 주장하는 경찰들에게 엄중 경고, 징계하라"며 진압에 나섰다. 결국 이 사건은 장희곤 전 서장 등 수사 실무책임자들이 옷을 벗고 형사 처벌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고, 이 전 청장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옛날 경찰은 무도 단증만 있으면" 구설수... 부하들 인권위 진정 '해프닝'

 

이밖에도 강 내정자는 지난 2004년 7월 경찰청 수사국장으로서 '연쇄살인범' 유영철 수사를 주도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자메시지 부정행위 사건도 원만하게 마무리한 이력이 있다. 또 이 시기에 경찰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사경과제'를 도입해 성공시킨 공로도 있다. 수사경과제는 수사경찰을 일반경과에서 분리해 별도의 경과를 신설한 것으로, 수사전문가 양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과의 경합에서 밀려 해양경찰청장으로 옮긴 뒤로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 선원들의 집단폭행으로 부하직원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강 내정자의 임명에 경찰 내부의 반발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사법시험 출신인 강 내정자가 한때 경찰 하부조직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적은 있다.

 

경찰청 차장 시절인 지난 2007년 5월 강 내정자는 전남지방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경찰의 인력충원 구조를 설명하며 "과거 형사기동대 직원들은 무도 단증만 있으면, 운전요원들은 대형면허증만 있으면 (경찰에) 들어왔다"고 발언했다.

 

강 내정자의 발언이 알려지자 하위직 경찰관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봇물터지듯 나왔다. 급기야 하위직 경찰관들 모임인 '무궁화클럽' 소속 회원은 강 내정자가 경찰관들의 인권을 무시했다며 같은 해 5월 19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부하직원들이 상관인 경찰수뇌부를 고발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이 일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강 내정자의 해명으로 무궁화클럽 회원들이 진정을 철회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지난해 3월 해양경찰청장으로 조직을 옮긴 뒤 1년 만에 복귀하는 강 내정자가 안팎의 불신을 해소하고 조직을 잘 추스를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강희락 #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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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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