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다 다른' 우리 말 이야기를 띄우려고 하나하나 갈피를 잡아 놓습니다. 모르는 누가 보면 '난수표'가 아니냐고 생각할 텐데, 제가 쓰는 글을 옳게 여미려고 용을 쓰는 몸부림입니다.
최종규
저는 제 글이 잘 쓴 글이라 여기지 않고, 옳게 쓴 글인지 잘 모르겠으며, 즐겁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나눌 만한 글까지는 못 된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 ‘이런 목소리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일 뿐입니다. 제가 찍는 ‘헌책방 사진’은, 이 나라에 수십만이나 되는 사진쟁이들 가운데 딱 한 사람이라도 ‘헌책방이라는 데를 꾸준히 찍어서, 꾸밈없는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며 남기는 발자국일 뿐입니다. 요즈음 부지런히 찍는 ‘골목길 사진’ 또한, 골목길로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은 많으나, 골목길 삶이란 무엇인가를 속속들이 살피고 꿰뚫는 몸짓은 하나도 안 보이기에, 골목길에서 태어나 골목길에서 자랐고 골목길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몸으로 헤아리는 이야기를 그 모습 그대로 담자고 하는 어설픈 몸부림입니다.
제가 쓴 이런 글과 저런 사진을 죽 돌아보면, ‘그런 글과 사진도 기사냐?’라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중얼거림은 기사로 올리기보다 블로그에 올릴 때가 낫지 않느냐’는 소리도 곧잘 듣습니다. 그래서, 지난 1994년부터 인터넷방에 이런저런 글과 사진을 차곡차곡 올려놓습니다. 써 둔 글과 찍은 사진은 훨씬 많지만, 제 인터넷방 하나(
http://hbooks.cyworld.com)에 올린 글은 3만 건이 넘고 올린 사진은 몇 천 장이 됩니다.
또 다른 인터넷방 하나(
http://cafe.naver.com/ingol)에 올리는 ‘인천 골목길 사진’은 지난 몇 달 사이에 700장 남짓 됩니다. 지난 2007년부터 인천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2만 장쯤 찍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찍을 테니, 더 많은 사진을 더 오래오래 올리리라 봅니다. 찾아와서 들여다보는 사람이 적다고 해도 신나게 쓰고 찍으면서 즐겁게 올립니다. 누군가 한 사람한테라도 이런 글과 사진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니까요.
오늘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잉걸 기사로 뽑히는 글이 2000 꼭지가 넘어갑니다. 2000 꼭지 가운데 절반쯤은 우리 말 이야기이고, 다른 절반쯤은 책과 헌책방 이야기입니다. 골목길과 사진 이야기들이 100 꼭지쯤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 말 이야기는 거의 모두 잉걸 기사로만 다루어지지만, 우리 말 이야기가 잉걸이 아닌 버금이나 으뜸 기사로 다루어진다고 하여, 우리들이 우리 말을 살피고 헤아리는 매무새는 하루아침에 나아지거나 새로워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는 말이요 늘 쓰는 글인 만큼, 느린 걸음이라 하여도 날마다 한두 발자국씩 뚜벅뚜벅 내딛으면서 차근차근 생각하고 익히고 되짚으며 열 해나 스무 해쯤 가다듬어야 비로소 말문이 트이고 글문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제 삶을 돌아보면서 깨닫거든요. 2000년에 처음 띄웠던 ‘글이라 하기 어려운 글’이 지난 아홉 해에 걸쳐서 ‘이제 좀 글이라 할 만한 글’로 거듭나는 모습을 몸소 또렷하게 느끼거든요.
부지런히 우리 말 이야기를 쓰고 국어사전을 살피고 책을 읽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부터 어떤 말을 써야 하는가’를 배웁니다. 이렇게 배우는 말로 ‘정보와 지식만 다루는 재미없고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 날마다 먹는 밥이 물리지 않듯 날마다 냠냠짭짭 맛나게 먹어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살찌울 수 있는 이야기로 추스르자고 다짐합니다.
개인 인터넷방에 올리는 글은 그저 ‘개인 인터넷방 글’이기 때문에 좀 어수룩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신문 기사로 띄우는 글은 어찌 되었든 ‘열려진 자리에서 모두가 가지는 글’이기 때문에 어수룩해서는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빈틈이 많더라도, 글 하나 띄우는 그때까지 모든 힘과 슬기를 여미어 펼치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스스로 새 사람이 되어 새 이야기를 쓴다고 마음을 먹고 글을 씁니다. 내 몸부림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내 몸부림 하나로 내 몸뚱이를 바꾸겠다는 마음입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을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고 느끼도록, 내가 디디는 한 걸음을 나 스스로 즐겁게 여기도록, 한 땀 두 땀 천천히 나아가는 글이요 사진입니다.
이제 2009년 2월 16일에 2000 꼭지를 채우는 글을 남깁니다. 앞으로 2010년에 3000 꼭지를 채울 글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 이 걸음을 지치지 않고 내디딜 수 있을까요? 어느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어느 하루도 대충 보내지 않도록, 어느 하루도 어영부영 흘려보내지 않도록 추스르면서, 꾸준하게 몸부림을 치면서 말걸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저한테 있는 온 사랑과 믿음을 고이 실어내자고 다시금 두 손 모아 비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