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장관의 막무가내 '자학 교육관'

[분석] 일제고사 결과 '하향평준화' 확인됐다고?

등록 2009.02.17 16:10수정 2009.02.17 16:10
0
원고료로 응원

다음은 초등학생들이 요즘에도 심심찮게 부르는 '연상되는 말 이어가기' 노래를 바꿔본 것이다.

 

"원숭이 ×구멍은 빨개, 빨가면 수박, 수박은 맛없어, 맛없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짧아, 짧으면 기차…"

 

이런 식이면 노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물에 대한 판단이 솔직하지도 않고 본질에 맞아떨어지지도 않은 탓이다.

 

평준화 깎아내리려는 '헛다리' 발언

 

a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전국 18개 대학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학들의 내년도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고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전국 18개 대학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학들의 내년도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고 있다. ⓒ 유성호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전국 18개 대학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학들의 내년도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고 있다. ⓒ 유성호

안병만 교과부장관이 지난 16일 2008학년도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토해낸 '하향평준화' 발언도 위와 같은 해괴한 노래를 빼닮았다. '평준화 비난'이라는 특정한 목적이 앞선 탓에 평가 결과에 대한 분석이 본질에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안 장관은 이날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교육계는 '평준화' 논리에 따라 학교간 차이를 밝히지 않아왔고… 이번에 전수평가를 시행해 본 결과, 학력이 '하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치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모양새다.

 

교과부는 17일 이 같은 평준화 비판 주장을 담은 전자메일을 교과부 홈페이지에 가입한 국민들과 교사들에게 일제히 뿌리기도 했다.

 

그와 교과부가 이런 주장을 내세운 근거는 단 하나다. "기초학력미달 학생이 초6 학생들은 양호한 반면, 중3과 고1 학생들은 10% 전후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평준화와는 인연이 없다. 마음만 앞선 '헛다리 짚기'식 발언이다.

 

우리가 따라 배우려는 미국은 기초학력미달 43%

 

지난해 학업성취도평가는 미 부시정부의 NAEP(국가학업성취도평가)처럼 교육과정 목표 달성정도를 따지기 위해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 '기초학력미달' 등 4단계로 나눠 분석했다. 다만 이번 교과부 발표에서는 우수 학생 숫자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우수학력' 단계를 뺀 채 3단계(보통이상, 기초, 기초학력미달)로만 발표했다.

 

지난 해 우리나라 초6, 중3, 고1 학생들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각각 2.4%, 10.0%, 9.0%였다.  이 수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달 비율이 높아지는 세계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뿐더러 세계적으로 봐도 무척 낮은 수준이다.

 

2008년 교과부가 내놓은 'NAEP 결과'란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제8학년(우리나라 중3) 대상 2005년 수학과 과학 평가에서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각각 32%, 43%였다. 반면 2008년 우리나라 중3은 수학과 과학에서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각각 12.9%, 11.7%였다.

 

같은 시기, 같은 시험은 아니었지만 미국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미 중3생의 수학과 과학 보통학력 이상 학생 비율은 29%와 27%였다. 우리나라의 같은 과목 51.0%와 55.7%에 비해 한참 낮은 수치다.

 

또 안 장관이 '하향평준화' 대상으로 지목한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세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대학까지 평준화 체제인 핀란드와 함께 줄곧 수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rends in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Science Study, 이하 TIMSS) 2007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세계 2위, 과학 성취도는 세계 4위였다. TIMSS 2007은 국제 교육성취도 평가 협회(IEA)에서 세계 50개국 약 23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평가결과다.

 

2007년 12월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 2006)에서도 우리나라 고1(만15세) 학생들은 읽기 1위, 수학 1∼2위, 과학은 5∼9위를 기록했다. 이 PISA 2006 조사는 OECD가 총 57개국(회원국 30개국 포함) 약 40만 명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를 벌인 결과다.

 

 지난 해 7월 교과부가 공개한 미국 NAEP 결과

지난 해 7월 교과부가 공개한 미국 NAEP 결과 ⓒ 교과부

지난 해 7월 교과부가 공개한 미국 NAEP 결과 ⓒ 교과부

 

평준화된 서울의 강남, 제주의 제주시는 왜?

 

'하향평준화'라는 안 장관의 말이 맞으려면 거의 100%에 가까운 평준화 체제인 초등학교 기초학력미달자가 중고교보다 많아야 옳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교과부 자료인 '고교평준화 실시현황'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국 12개 시·도의 23개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 일반계 고교의 약 50.4% 수준이다.

 

안 장관식 분석이라면 초중고 평준화 체제인 서울 강남 초중학생들의 영어·수학 성적이 전국 최고 순위를 차지했을 뿐더러 기초학력미달자 또한 가장 적은 편에 들었다는 사실은 설명할 수 없다.

 

전국 최고 학업성취도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 보도된 제주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교육청이 있다. 제주시는 고교 평준화, 서귀포시는 비평준화 지역이다.

 

그런데 평준화 지역인 제주시는 기초학력미달자는 적은 반면, 보통학력 이상의 성적을 가진 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각각 9.5%, 9.7%였다. 보통학력 이상 비율도 차례대로 66.9%와 63.1%였다. 같은 제주도인데도 평준화 지역이 더 높은 학력 수준을 나타냈다는 얘기다.

 

이념논쟁 당사자 안 장관, 서울 문제 해명해야

 

안 장관은 16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대책발표 마무리 발언에서 "이 방안에 대해 이념적 논란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이념적 논쟁에서 벗어나 우리 공교육의 수준을 어떻게 하면 더 높일 것인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하향평준화'란 발언으로 이념 논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바로 안 장관 자신이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아파트 전세 값보다도 많은 돈을 3년 학비로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형사립고 100개 확대방안과 같은 '반 평준화 고교 설립'을 위한 포석인 것으로 보인다.

 

책임 있는 교육수장이라면 '일제고사'와 같은 학력신장방안으로 5년간 초중고 교육에 '올인'한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이 왜 이번 평가에서 거의 꼴찌를 했는지 그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 더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을까?

2009.02.17 16:10ⓒ 2009 OhmyNews
#일제고사 #학업성취도평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5. 5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