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전남대, 정몽준에게 명예박사학위 꼭 줘야 하나?

등록 2009.02.17 17:44수정 2009.02.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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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호영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전남대에서 정몽준이라는 사람, 굴지의 기업인이자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그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이 글을 쓴다. 전남대가 정몽준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어째서 부당한 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전남대 철학과 대학원생들이 발표한 성명서가 밝히고 있으며 나 역시 대학원생의 일원으로서 그 입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대학이 왜 그에게 학위를 주려고 하며 그는 왜 그 학위를 받으려고 하는가 그리고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난 2007년 전남대는 똑같은 일을 시도했었으나 철학과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정몽준 측에서 그 일을 취소했고, 학위수여는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학교 측에서 다시 이 일을 시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진 사회와 대학의 사정을 보여준다.

대학 측에서는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통해 대학이 스스로 재정을 충당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준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점점 취업문이 좁아지고 있는 사회현실에서 이번 학위 수여로 좀 더 많은 전남대 학생이 현대그룹에 취업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몽준 측에서는 어떠한가? 사실 그에게는 철학박사학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명예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더 넓고 굳건히 해줄 인증서가 필요한 것이다.

마침 그는 이명박 정권의 출범에 때맞춰 한나라당에 입당했으며 지금은 최고위원의 자리에 있는 터, 광주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한번 얻는데 실패한 명예학위를 굳이 다시 받으러 오겠다는 이유일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대학이 누군가에게 어떤 명예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학이 가진 어떤 가치 때문일 것이다. 전남대의 경우에는 5․18광주항쟁을 이끌었으며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왔다는 가치를 가지고 있고, 지금 이것을 이명박 정권에서 집권여당 최고위원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니 사실 대학은 명예에는 관심이 없고 그가 대학에 가져다줄 현실적인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은 그에게 명예를 줄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 가지고 갈 것이다. 그것이 그가 자신의 동료인 다른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함께 오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지난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이건희 명예철학박사학위수여 사건을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는 무노조경영의 원칙을 가진 이건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고 시위를 벌였던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렸던 고려대 교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2년 뒤 이 땅에서 인문정신이 죽었으며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며 가장 앞서서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인문정신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죽었다고 성토했던 인문정신은 사실 그때 시위를 벌였던 학생들에게 있었고, 그들은 그 인문정신을 퇴교 처분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전남대에서는 기업인으로서 반인권적인 행태를 벌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충실한 수행자인 정몽준에게 명예학위를 줌으로써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

성공한 기업인 출신을 대통령으로 앉히는 것으로는 한국 사회의 기이한 불균형이 전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쪽이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기업인에게 명예를 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돈이나 취직자리를 얻으려는 것으로는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나와 너를 포함하는 '우리'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까지 팔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현재를 저당 잡아 지금과는 다른, 달라야 할 우리의 미래를 없애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정다영 기자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정다영 기자는 전남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전남대 #정몽준 #명예철학박사 #명예 #잃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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