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김일성 "후방을 철옹성같이 다져야"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9회] '반달'

등록 2009.02.20 14:45수정 2009.02.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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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조수현은 사령부 옥상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사과 빛과 유자 빛을 얼크러트려 놓은 듯한 이색적이고 환상적인 노을이었다. 그녀는 전쟁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그 노을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그녀는 여고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한시도 조용해 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불과 5년, 다시 조국은 전화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녀의 조국은 언제나 전시동원 아니면 비상체제가 계속된 나라였다. 하지만 그런 나라의 소녀일수록 더욱 사랑과 평화를 갈망하는 처녀로 성장하는 법이다. 이윽고 조수현의 수척한 눈빛은 노을 속에서 뭉게구름처럼 솟아나는 한 청년의 영상과 마주쳤다.

“저는 이두오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 앞에서 그렇게도 스스럼없고 자연스럽게 행동한 사람을 일찍이 체험해 본 적이 없었다. 청년의 눈빛과 표정은 그녀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의 만남이 이렇게도 선연히 각인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혹시 그가 다시 나타날지도 몰라 틈나는 대로 서점을 기웃거려 보았다. 매번 그녀의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낮에만 오던 공습이었는데 이제는 저녁 시간대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찬 권총을 매만져 보고는 천천히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대피소에 들어간 그녀는 며칠 전 청년과 같이 서 있던 자리에서 발을 멈추었다. ‘저는 이두오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 가슴에 난생 처음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고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공습이 끝나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창문은 모두 등화관제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감찰부장이 입을 열었다.


“공습에 대비해 지구별 분산 조치를 앞당겨 취하기로 했소.”

감찰부는 동·서·남·북·중 다섯 구역으로 분산된다고 했다. 조수현은 서울 북방인 성북구 지구대를 맡기로 결정 나 있었다. 나름대로는 가장 후방에 속한다고 해서 여성에게 배당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가 여자라서 후방을 맡는 것은 반대합니다.”

감찰부장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 소좌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장 동무가 하신 게 아니고 내가 배치한 것이오. 수현 동무가 여성이라서 성북구를 맡긴 것이 아닙니다. 성북구는 서울에서 학자와 예술인이 가장 많은 곳이라서 수현 동무의 적성에 맞춘 것뿐이오.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좀 유연하게 다뤄야 하지 않겠소?”

박 소좌의 말에는 타당한 논리가 있었다. 조수현은 정중히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앞질러 생각했습니다.”

인민재판, 어디까지 진실인가

다음 날 조수현은 사관 한 명과 사병 열다섯 명을 인솔하고 인민감찰부 성북지구대장으로 부임했다. 지구대는 길음교와 정릉의 중간 지점에 있는 국민학교(초등학교) 건물 일부에 자리 잡았다. 건물 앞으로는 맑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었다. 냇물 건너에는 돌로 지어진 교회당이 있어 모임 장소로 이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길을 따라 북한산 쪽으로 오르면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 병원과 지서 다리가 있었다. 지서 다리를 건너 오른쪽은 청수장(일제 때 요릿집 이름)이라고 했고 왼쪽은 배밭골이라고 불렀다.

조수현은 두세 동 단위로 묶은 지역 책임자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지역 책임자들은 해당 동의 주민 중에서 선발한 공산주의자였다. 이른바 바닥빨갱이들이었다. 조수현은 그들 중에서 인상이 좋은 남자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첫인상이었다.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나이 든 남자는 무조건 인상이 중요하다. 사람은 생긴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쇼펜하우언지 키에르케고르인지 하는 서양 철학자는 사람을 만나면 첫인상을 꼭 기록해 놓으라고 했단다. 그가 나에게 잘 해주면 나중에 그의 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릉1,2동 책임자 박광태의 인상은 지역 책임자들 중에서 가장 표독스러웠다. 그의 얼굴에서는 남자들에게는 흔치 않은 음기가 흘렀다. 그는 동네 영창에 벌써 사상 불온자를 11명이나 넣었다고 탁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기껏해야 다섯 명을 넘지 않았는데 유달리 그의 지역에는 구속자가 많았다.

“차후로는 인신 구속 시 감찰부의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조수현은 박광태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박광태는 비슬비슬 조수현의 눈빛을 피했다.

“인민재판이 전면 금지되었다는 것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랍니다.”

개전 후 서울 여러 지역에서 인민재판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동숭동 서울 문리대 교정, 서대문구 송월동, 명동 국립극장 앞, 돈화문 앞, 명륜동 입구 등이 인민재판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6월 26일 김일성은 방송을 통해 “후방을 철옹성 같이 다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동분자를 대거 숙청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계급의 적대감이 가장 과격하게 표현된 인민재판에 대해 비난과 원성이 높아지자 인민공화국은 서둘러 인민재판 금지령을 내렸다. 그것은 개전 열흘 후인 7월 5일의 일이었다. 모택동이나 김일성 같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전시 후방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민폐 근절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바닥빨갱이들이나 빨치산 그리고 후퇴하는 인민군들은 반대자들에 대해 수시로 인민재판을 실시한 것이 사실이다.

남조선 보수 지식인의 일기

조수현은 지역 책임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해 보기로 했다. 특히 박광태의 서류는 더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들었다. 서류 검토를 끝낸 조수현은 확실한 증거가 없이 구속된 20여 명의 민간인을 풀어주기로 했다. 그녀는 인민공화국 명의의 석방 명령 공문에 서명했다. 그러고는 지구대 요원들을 모아 놓고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우리 공화국의 장점은 포용력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해방 후 김일성 주석께서는 매국적 친일파와 악덕 지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동참케 하였습니다. 반면 남조선의 이승만은 친일·지주 세력은 비호하는 대신 중도파인 여운형, 우익인 송진우, 심지어는 임시정부 출신 우익인 김구까지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승만이 인민의 지지를 잃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감찰부는 명백한 반동이 아닌 사람을 함부로 체포·처벌하는 일을 철저히 감시해야 합니다. 인민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 조국통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관건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조선 사회의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고발과 탄원이 줄을 이었고 지역책들로부터 인신 구속을 품신하는 요청서가 쇄도하고 있었다. 조수현은 정릉동에서 박광태가 올린 구속 품신서에 유다른 관심이 가 있었다. 대상자가 역사 전공의 대학교수이기도 했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뚜렷이 차이가 나는 이유로 그를 구속시키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김성식이었는데 집에서 압수된 일기장이 증거물로 제출되어 있었다. 일기장에는 이번 전쟁이 북침이 아닌 남침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성식은 교수이면서도 학교에 잘 나가지 않을 뿐더러, 학교의 새 지휘부 일에도 비협조적이고 비타협적이라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부르주아 반동이니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수현은 김성식의 일기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일기는 노란 종이 노트에 단정한 만년필체로 쓰여 있었다. 남조선 지식인들은 한자를 즐겨 쓴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성식의 일기는 한자를 전면에 쓰지 않고 괄호 처리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일기는 전면전이 발발한 6월 25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김일성 #인민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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