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원 버는 내가 남을 도울 수 있었던 이유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뇌병변 희수 도운 일 기억에 남아

등록 2009.02.22 15:26수정 2009.02.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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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몇번 출연하고 나니 잡지에서도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모 잡지사에 내 인터뷰 내용과 사진이 실렸다. ⓒ 윤태


이 글이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1046번째 글이다. 이중 생나무글이 정확히 100개, 정식기사는 945개이다. 지난 2003년 6월부터 지금까지 올린 글의 현황을 잠깐 분석해 봤다.


처음 송고 당시 나는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는 일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2년 2월에 결혼해 2005년 7월에 큰아이를 낳게 된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밤이면 밤마다 오마이뉴스 기사 쓰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원고 응모 마감날까지, 아니 그 원고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무슨 테마로 글을 써야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다. 굵직한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기사로 전국 방송 TV 출연은 질리도록 해봤다. 잠깐 얼굴 나오는 게 아니라 최대 60분에서 최소 10분까지 휴먼 다큐, 정보, 토크쇼 등의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나온 횟수가 7회(아내는 8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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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때문에 TV에 출연한 우리 부부. 그 내용을 정리해봤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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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내용 정리한 걸 한번에 보이지 않아 두번에 걸쳐 실었다. ⓒ 싸이월드,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쥐똥이 빠진 음식을 먹는 실제 주인공 엄기봉씨의 비참한 생활을 취재·보도한 뒤에는 기사를 내려달라는 영화제작사의 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후 기봉씨를 위한 새집이 지어지기도 했고 후원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PD수첩>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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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수첩 작가에게서 온 메일, ⓒ 한메일캡쳐


이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경기도 안산에 사는 뇌병변 1급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희수라는 아이(당시 5세)에게 도움을 준 일이다.


2005년 11월 경으로 기억된다. 어느 한 사회복지사로부터 이메일(쪽지)을 받았다. 뇌병변 1급 장애를 안고 사는 희수에게 특수 휠체어가 필요한데 그 가격이 무려 420만원. 할아버지 할머니가 희수를 돌보고 있었고 이웃에게 돈을 빌려 특수휠체어를 구입했는데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것. 게다가 월세도 몇 개월치씩 밀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기사 송고 후 '밥풀데기'로 유명했던 전 개그맨 김정식씨가 진행하던 인터넷 방송 '라디오 21'에 희수 이야기가 소개됐다. 당시 김씨는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방송 '사랑의 소리 방송'이라는 인터넷 방송의 본부장으로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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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 돕기 위해 김정식씨 인터뷰 하던날. 직접 디자인 했다는 저 인형이 오마이뉴스 통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인형을 구입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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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복장을 하고 희수에게 '선물' 전달하던 날, 아역 탤런트 출신인 갓난이 김수양씨도 참여했다. ⓒ 윤태


나는 전 개그맨 김정식씨와 함께 희수를 돕기로 했다. 당시 나는 한달에 80만원 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지만 희수를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김정식씨는 인터넷 방송 때마다 희수 이야기를 전했지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김정식씨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김씨 자신이 직접 디자인을 한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인터뷰 사진으로 실었다. 오마이뉴스엔 그 기사가 크게 떴고 드디어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좋은기사 원고료가 속속 들어왔다. 기사를 본 국내 최대 홈쇼핑에서 도와주겠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 일은 잘 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원고료가 수백만원에 달했다. 전액을 희수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원래 좋은 기사 원고료라는 게 취합이 되려면 3개월 정도 소요되고 중간에 카드결재를 취소하면 좋은기사 원고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 측이 배려를 해 줘 좋은 기사 원고료를 미리 받아 희수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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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 할머니의 눈물을 닦고 있는 전 개그맨 김정식씨. ⓒ 윤태


오마이뉴스 좋은기사 원고료를 비롯해 현금 500만원이 모아졌다. 밀린 석달치 월세도 마련됐다. 아마 2005년 12월 24일로 기억한다. 김정식씨를 비롯해 사랑의 소리 방송 관계자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안산 희수네 집을 찾았다. 쌀 몇 포대도 같이 가지고 갔다. 희수 형을 위해 도서 세트도 가지고 간 걸로 기억한다.

KBS <세상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이 따라붙었다. 지상파 카메라가 비추는 가운데 우리는 특수 휠체어 비용 420만원을 빌려준 이웃에게 현금으로 직접 전달했다. 희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희수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김정식씨는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카메라 맨도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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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 성금을 현금으로 세어 보는자리에서휠체어 비용을 갚았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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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라는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휠체어 비용을 빌려주신 희수네 이웃,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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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모은 원고료 총액, 이중 상당액은 희수 돕기에 사용됐다. 좋은 기사 원고료는 모두 희수에게 전달됐다. ⓒ 윤태

'선물'을 전달하고 나오면서 김정씩씨가 "이번에는 누구를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씨익 웃었다. 가슴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 솟구쳤다.

그 일이 있은 후 6개월 뒤 나는 희수 도운 일과 김정식씨의 선행을 정리해 한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올렸다. 무려 63만명이라는 조회수가 나왔고 1600개의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악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언론이 다 해결해줄 수는 없다. 자칫하면 오해가 생길수도 있고 악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위험부담을 알면서도 진행한 희수 돕기 프로젝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 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 입니다
#오마이뉴스 생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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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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