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게 하는 일제고사

적성과 소질을 탐색하고 닦는 것이 학업이 되어야

등록 2009.02.23 09:18수정 2009.02.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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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심어주는 공부 아이들에갠 책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현장 체험학습으로 꿈을 키워주는 것이 더욱 좋은 공부다. ⓒ 정근영

▲ 꿈을 심어주는 공부 아이들에갠 책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 보다는 현장 체험학습으로 꿈을 키워주는 것이 더욱 좋은 공부다. ⓒ 정근영

 

30년 전의 악몽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발표되던 날, 당국자는 '임실의 기적'이라며 환호했다. 산골의 작은 학교가 대한민국 최고의 학력이라면서 공교육의 승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조작'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상식으로 용납이 안가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이 꼴지고 벽지가 일등이라는데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무지가 놀랍다. 사람 잡을 언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안있어 대구, 부산, 전주에서 잇달아 성적 조작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제 성적조작 의혹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모르긴 해도 내 경험으로 짐작해 보건대 이들 지역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대부분의 학교에서 크고 작은 성적조작 사건은 일어났다고 본다.

 

국가 수준의 학력평가라면서 이렇게 허술하게 치르는 시험도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담임교사가 자기반 아이를 대상으로 감독해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채점까지 하도록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 결과에 따라서 신분과 명예, 소득이 달라지고 근무조건이 바뀐다면 성적 조작의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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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마을 일제고사로 점수따기 경쟁이 판을 치게 되면 이런 현장 학습도 자취를 감추게 되지 않을까. ⓒ 정근영

▲ 안동 하회 마을 일제고사로 점수따기 경쟁이 판을 치게 되면 이런 현장 학습도 자취를 감추게 되지 않을까. ⓒ 정근영

 

초임교사 시절의 기억

 

문득 30여년 전의 초임지 교사 시절이 떠 올랐다. 그때 나는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당시 OO군교육장은 시골학교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교육장이 되어 출세(?)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 시절에 교사들에게 '학력책임'이란 명찰을 달고 다니게 하면서 달마다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고 교사들에게 학력 향상을 닦달했다. 일부 효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는 당시 교육감인 A씨의 눈에 띄어 교육장이 된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엇길로 나가지만 A교육감 역시 그렇게 해서 출세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 주무시는 호텔에서 바로 보이는 어느 공고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실습실에서 학생들과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실습을 하는 것이 대통령 눈에 띄었고 이로써 교육감에 발탁되었다는 소문은 이 지역에서는 관심있는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교육장이 된 뒤 그는 군내 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달마다 군 교육청이 주관하는 일제고사를 치르게 했다. 부정을 막기 위해서 시험 감독과 채점을 다른 학교 교사들과 교체하게 했다. 밤 늦게까지 채점하고 통계처리까지 해서 당일로 그 결과는 나왔다. 이때 채점을 빨리 하기 위해서 시험시간에 채점을 하는 것이 예사였고 더러 학생을 동원하기도 했다. 

 

교육장은 수첩에 그 결과를 정리해서 기록했다. 아동들의 시험성적은 담임교사의 근무성적으로 그 학교의 성적은 교감과 교장의 근무성적으로 바뀌었다. 성적이 좋은 학급(학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무지막지한 꾸지람을 쏟아 내었다.

 

하면된다

 

이렇게 되자 달마다 학력을 올리기 위한 닦달은 결국 아동들에게로 쏟아졌고 아무리 애를 써 보지만 학력이 올라가지 않자 부정이 동원되었다. 학력이 낮은 반은 낮은 반대로 높은 반은 높은 반대로 군내 전 학교 전 학급에서 기발한 부정시험 방법이 동원되었다.

 

우선 좌석 배치에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공부를 잘못하는 학생을 주변에 앉게 한 다음 정답을 가르쳐 주도록 했다. 지우개에 정답을 써 주거나 쪽지를 돌리거나 했다. 또 교감은 감독교사를 매수(?)하여 감독을 느슨하게 하도록 유도했다. 부정행위를 적발하거나 감독을 엄하게 하는 교사는 바가지 바가지로 욕을 해서 몹쓸 놈으로 만들었다.

 

이제 학력은 달마다 쑥쑥 올라갔다. 평균 40점 받던 학급이 다음달엔 80점이 예사이고 90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자 당국자는 "역시 하면 된다"며 이들 학교를 성공 사례로 선전했던 것이다. 국가 수준의 일제고사, 그 결과로 승진, 전보, 성과상여금 등에 반영한다면 이런 부정은 그치지 앉을 것이다.

 

빙산의 일각

 

이번에 밝혀지고 있는 성적 조작 사실은 얼음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임실 교육청의 경우와 같이 상부의 지시나 상부에서 일어난 부정은 이렇게 밝혀지기도 하지만 피검자인 학생과 감독자인 담임교사가 서로 짜고 부정시험을 치르는 것을 밝혀내기란 정말 어렵다. 이번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꼴찌를 받은 학교를 제외하고는 부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 꼴찌학교의 경우도 정도의 차가 적었을 뿐이지 부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30년전의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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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점수를 따는 데는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교실에서 교과서를 외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재미난 공부는 멀어지고 말 것이다. ⓒ 정근영

▲ 경복궁 점수를 따는 데는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서 공부하는 것 보다는 교실에서 교과서를 외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재미난 공부는 멀어지고 말 것이다. ⓒ 정근영

 

학업이란?

 

학업이란 무엇일까? 학업성취도 평가는 반드시 지필고사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국어사전에서는 학업을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 '주로 학교에서 일반 지식과 전문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공부하는 일'이라고 풀어 놓았다. 문제를 풀어가는 데는 적당한 풀이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학업은 학생이 하는 일이라고 하자. 학생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공부다. 그렇다면 학업이나 공부는 같은 말일 것 같다.

 

사람은 타고날 적부터 적성과 소질이 다르다. 욕구도 다르다. 이렇게 적성과 소질이 다르고 욕구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세상은 조화를 이루고 서로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만약에 이 세상 사람들의 욕구가 똑 같다면 그래서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그 세상은 엄청난 싸움터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배우가 되고 싶어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고 또 다른 사람은 농삿꾼이 되고 싶어해서 욕구가 서로 다르다면 서로 다툴 일이 없다. 서로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일제고사가 나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똑같은 욕구를 갖도록 유도하고 서로 다투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마다 적성과 소질이 다른데 그것을 무시하고 하나의 소질만 발휘하도록 이끈다면 그것은 정당한 교육이 아니다. 지금은 고문서 속에 잠자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이지만 그 헌장에도 저마다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존중한다고 했다. 저마다 타고난 적성과 소질, 서로 다른 욕구를 충족시켜나가자면 가는 길이 달라야 한다. 교육을 통해서 적성과 소질을 찾고 닦는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적성과 소질에 맞는 공부라면 그 공부는 즐겁지 않을까.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공부, 그것이 학업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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