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지긋지긋하니까 그런 거예요"

학원 보충수업장으로 변한 학교... 감동 없는 졸업식장

등록 2009.02.26 11:32수정 2009.02.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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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 다행히 이 날은 날씨가 따뜻해서 야외에서 진행됐습니다. ⓒ 진민용

졸업식장, 다행히 이 날은 날씨가 따뜻해서 야외에서 진행됐습니다. ⓒ 진민용

 

지난 18일 둘째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큰아이와 2년 터울이라 2년 전에도 같은 학교에서 졸업식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분위기는 2년 전과 별로 달라진 건 없더군요.

 

넓은 운동장에서 졸업식이 진행되면서 재학생들은 뒤쪽에, 졸업생들은 맨 앞쪽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식순에 따라 하나씩 진행해 갔습니다. 국민의례·시상식·내빈소개·축사·격려사·재학생의 송사·졸업생의 답사….

 

판에 박힌듯한 졸업식 광경에서 아쉬움에 눈물 흘리던 옛날 졸업식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슬픈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해맑고 밝았으며 심지어 장난을 치거나 친구들과 폰카를 눌러대기도 했습니다.

 

운동장에서의 졸업식이 마치면 교실로 들어가 졸업장과 상장, 기념품을 전달받은 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격려의 말을 듣고 한 사람씩 선생님과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을 보내더군요.

 

6년 동안 가르쳐주신 선생님과 인사할 때 조금은 슬픔과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선생님의 눈망울만 붉게 적셔질 뿐 아이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울었다가는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졸업, "학교가 지긋지긋하니까 그런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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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마친 후 교실에서 상장과 졸업장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진민용

식을 마친 후 교실에서 상장과 졸업장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진민용

언제부턴가 졸업이 아쉬움이 아닌 해방의 순간이 됐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졸업은 해방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최소한 교사들과의 정을 끊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정든 교정에 스며 있던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졸업식 순간만큼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도 졸업식 순간만큼은 아쉬움이 약 2%는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최근의 졸업식 광경은 마치 묶어둔 망아지가 줄을 끊고 튀어나가듯 빨리 마치고 달려나가기 바쁜 듯 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졸업하는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졸업 때는 졸업식이 눈물바다가 됐었는데 요즘은 우는 학생이 없네"

"에이~ 아빠도 참 요즘 울면 쪽팔리지"

 

"그게 왜 쪽팔려? 정든 학교와 선생님과 헤어지는데 눈물나는게 당연하지"

"아빠는 참... 학교가 너무 지긋지긋하니까 그러죠"

 

딸 아이는 그래도 제법 성적도 우수하고 6년 개근을 하는 등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워낙 강해서 졸업의 아쉬움을 덮어버릴 지경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학원 보충수업장으로 변해버린 학교, 더 이상의 추억은 없다!

 

이제 내년이면 큰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가야 합니다. 최근 졸업식장에서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등 일탈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데, 이같은 사태를 촉발하게 된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이상 학교가 추억의 전당이나 사제지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 거기에 교사의 학생폭력, 학부모의 교사폭력, 심지어 학생의 교사폭력... 또 웬만한 수업은 학원에서 다 해 버리고 학교는 학원 보충수업장이라도 돼 버린 듯한 실태로 막장드라마 같은 뉴스들을 접하면서 이제는 학교의 존재 이유를 누군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온 것 같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헤어짐에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제자의 어깨를 다독이던 선생님의 이 말씀은 이제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졸업이 제발 끝이기를 바라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씀은 그야말로 '엽기적인' 말씀이니까요.

 

이제 학교는 더이상 추억의 장소가 아닌,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감옥이 돼 버린 것 같습니다. 하루에 5~6개의 학원을 밤늦도록 돌아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란 그저 낮에 가서 눈을 붙이는 곳이거나, 학원수업의 보충학습장이거나, 심지어 졸업장을 따기 위한 6년간의 등반 코스가 돼 버린건 아닐까요.

 

헤어짐의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의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졸업식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옷을 찢는 중학교, 옷을 벗는 고등학교, 그리고 실업자로 들어서는 관문인 대학교 졸업식…. 갈수록 파행적이고 절망적인 졸업식의 모습만을 봐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만 해결할 수 있을까요. 

2009.02.26 11:32 ⓒ 2009 OhmyNews
#졸업식 #꽃다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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