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그분들' 원하는 대로 늙어갈까 두렵다

[일제고사를 없애라③] 일제고사로 해직된 김윤주 청운초 교사

등록 2009.02.28 17:41수정 2009.02.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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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시민사회종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고사 폐지, 학업성취도평가 무효, 성적조작 책임자 문책, 파면해임 교사 원상 복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다시 일제고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거진 일제고사 점수조작 사건으로 교육 당국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실 당황하는 척하는 것뿐이다. 이미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교육청에 '에헴'하고 앉아 있는 그분들이 누구신가? 학교현장의 작동원리를 빤히 잘 알고 있고, 그 작동원리에 가장 기민하게 적응하고 세심하게 순응한 결과로 얻어낸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계신 분들이 아닌가.

'에헴' 하던 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무리 시민사회에서 일제고사가 야기할 비교육적 행태를 경고하고 한 번 더 신중히 짚어보자고 호소해도 그분들은 귓등으로만 들을 뿐이다. 온 마음과 영혼은 윗전의 심중을 살피는 것에 가 있다. 왜냐하면, 결국 자신들의 경력을 보살펴 줄 사람은 학생이나 시민이 아니라 윗전이기 때문이다. 교사일 때는 학교장을 향한, 학교장이 되어서는 교육청을 향한, 교육청에 가서는 상급기관을 향한…. 일생을 상급기관을 향한 해바라기꽃 한아름 피워 올리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대한민국 학생 전부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미 그들은 비정규직 일반화를 통해 대학가를 취업경쟁에 매몰시킴으로써, 독재시대에도 유일하게 저항문화로 생동하던 20대 청춘들을 생활인으로 주저앉히고 있다. 하지만 이제 청소년들이 문제다. 촛불을 들고 거리고 나오질 않나, 줄 세우기 교육에 반발하지 않나.

평등과 연대, 사회참여의 감수성을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질식시켜 놓지 않으면 지금의 승자독식 구조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 과연 일제고사는 이 구조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그 역할이 얼마나 지대하기에 미국 공화당 교육당국조차 거부할 권리를 안내하고 시행하는 일제고사를 마치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4대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처럼 중죄로 엄벌하려 드는 것일까.


'스카이'로 가는 과정은 이미 셋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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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가면을 쓴채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반대하며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보자. 국제중, 특목고, '스카이'(SKY) 대학교로 이어지는 학벌획득의 과정이 이미 셋업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생존 기득권 확보를 위한 가장 무난한 코스이며, 이 코스 선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부모의 경제력임은 현재의 모든 지표가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공교육이 이것저것 끌어들여 발버둥 쳐봐도, 무한경쟁에 의한 선발제도라는 틀 내에서는 해답이 없다.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한 고가의 사교육은 꾸준히 생성되고 진화한다. 결국 서민이 등골 휘어지게 자식 학원비를 대어본들 사교육시장만 살찌우고 아이들만 잡을 뿐이다.

그런데, 게임의 룰과 목적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대안실천이 그나마 일부라도 시도되고 있는 학교현장에 일제고사라는 몬스터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이 학교와 지역교육청의 명예와 책임자의 커리어를 좌우한단다. 어떻게 되겠는가. 뻔하다.

이 몬스터는 교육과정 자체를 규정해 버리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문계고를 보라. 몇 십년째 대입교육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가장 지적탐구력이 왕성할 시기의 청소년들이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지낸 지 오래인 대한민국이다.

이제 한국의 학교는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풀이와 서열획득을 위한 교육에 폭 파묻혀야 한다. 그래야 '반 평균' 깎아먹는 놈이란 소리 안 듣고, 너 땜에 승진 못했다는 말 안 듣고, 너희 학교 땜에 망신당했단 소리 안 듣는다. 이것은 개인의 초연함이나 내공으로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다.  적어도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어떨까. 일면식도 없는 국가라는 최고 권위기관으로부터 자신의 등급을 판정받고 통보받는다. 어린 시절의 자존감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확립되는가는 개인의 생애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사람은 자기 자존감이 형성된 기준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고 삶의 행로를 결정한다.

이 시험을 억지로 강요할 이유 없다

굳이 초등학교에까지 일제고사를 무리하게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므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경쟁하여 등급을 받으며, 내 서열을 올려줄 선생님을 선호하고, 반 평균을 올려주는 아이를 예뻐하는 선생님을 지켜보며, 부모님과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조바심 내며 매년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는 것에 몸과 마음이 적응되어 가는 동안 키도 크고 머리도 큰다.

일제고사는 표면적 교육과정을 파행화하는 문제점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아이들이 체험할 잠재적 교육과정을 망가뜨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간 일상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사람이 만든 시스템을 절대시하고, 불공정한 경쟁을 절대원리로 수용하고, 성공과 승자를 신화화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패배자에 대한 경멸로 바뀔 것이다.

연대해야 할 수많은 이웃들을 스스로 궁상맞게 여겨 모래알 같은 섬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기득구조를 전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내면화하게 만드는 것. 나는 이게 무섭다. 세상은 이토록 넓고, 아이들의 여린 시선이 가 닿음으로써 따스하게 생동할 만물이 천지에 있는데, 몸과 영혼이 함께 자라는 보드라운 시기에 냉혹한 세상이치를 때 이르게 체득하고 미리미리 늙어갈 아이들을 보게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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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학교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대부분의 관료들과 일부 교사들은 자신의 커리어 향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닦아세울 것이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온갖 파행과 부정 역시 그들이 충성스럽게 수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보이는 당혹감은 아이들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에 있지 않다. 제도 자체가 필요악-공부를 도구화하고, 서열화를 부추기는-을 긍정하고 있음으로 인해, 제도 시행에서 드러나는 악습 역시 필요악일 수밖에 없음은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당혹감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자기결정권을 알려준 교사 몇 명 무섭게 자르고, '너희들이 시험 안 봐 선생님 내쫓기는' 꼴 보여주며 학생들 겁주면 깨끗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내부 고발자가 나오고, 언론이 집요하게 보도하고, 분노한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일제고사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하는 국면, 그게 당황스러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가 '오버'라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일제고사를 재논의하여야 한다. 당연히 시험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여하고, 비판여론도 수용하여야 한다. 교육의 생동감을 말살하고 사교육시장을 살찌우기 위한 음험한 목적이 아니라면 국민의 혈세를 말도 안 되게 쏟아붓는 이 시험을 억지로 모든 학생에게 강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일제고사반대 #임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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