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65)

'46년 전의 일', '좀 전의 일', '좀 전의 웃음' 다듬기

등록 2009.02.27 15:59수정 2009.02.27 15:59
0
원고료로 응원

ㄱ. 46년 전의 일

 

.. 내가 고향을 마지막으로 떠난 것은 1946년 늦가을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의 일이다 ..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김병걸, 창작과비평사, 1994) 13쪽

 

"마지막으로 떠난 것은"보다는 "마지막으로 떠난 해는"으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지금으로부터'는 '지금부터'나 '지금까지'로 고쳐 줍니다.

 

 ┌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의 일이다

 │

 │→ 지금까지 마흔여섯 해나 된 일이다

 │→ 지금부터 마흔여섯 해 앞서 있던 일이다

 │→ 어느덧 마흔여섯 해가 되었다

 │→ 마흔여섯 해가 훌쩍 지난 일이다

 │→ 그동안 마흔여섯 해가 되었다

 └ …

 

'마흔여섯 해'라고 적어도 '전의 일이다'가 뒤따를 수 있지만, '46년'이라 할 때보다는 덜 뒤따른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 '마흔여섯 해'로 적어 주면 됩니다. 다음으로 '지나다-되다-흐르다-묵다-보내다-거치다' 들을 글흐름에 맞게 넣으면 돼요. 글차례를 살짝 바꾸어 볼 수 있고, "고향을 마지막으로 떠난 해가 1946년 늦가을이었으니까, 아이쿠 그새 마흔여섯 살을 더 먹었구나"처럼 뒤쪽을 아예 달리 적어 보아도 됩니다.

 

'전의'에 매이면 '-의'에서 풀려날 수 없는 한편으로, 저마다 다 다르게 펼쳐 보이면 넉넉한 말투가 묶여 버리고 맙니다. 자기 말씨를 찾으려고 조금씩 마음을 기울이고 또 기울이면, 토씨 '-의'는 살포시 떨어져 나갑니다.

 

ㄴ. 좀 전의 일

 

..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을 보였기 때문에 교수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고, 좀전의 실례를 용서했다 .. <무솔리니>(구위드 다메오/이우석 옮김, 학원출판공사, 1989) 167쪽

 

"뛰어난 어학(語學) 실력(實力)을 보였기"는 "뛰어난 말쏨씨를 보였기"나 "여러 나라 말을 훌륭히 할 줄 알았기"로 손질합니다. "실례(失禮)를 용서(容恕)했다"는 "잘못을 덮어주었다"나 "잘못을 너그러이 봐주었다"로 손봅니다.

 

 ┌ 좀 전의 실례를

 │

 │→ 좀 전에 있던 실례를

 │→ 조금 앞서 저지른 잘못을

 │→ 조금 앞서 했던 부끄러운 짓을

 └ …

 

'좀전'처럼 붙여서 쓰는 분도 있으나 '조금 전'을 뜻하는 말이니 '좀 전'으로 띄어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 다음으로 '前'을 '앞서'로 다듬으면, "조금 앞서"가 됩니다. "바로 앞서"로 적어 보아도 어울립니다. '앞서'만 넣어도 괜찮습니다.

 

ㄷ. 좀 전의 웃음

 

.. 덕수는 그저 놀란 마음에 눈이 동그래집니다. 좀 전의 웃음은 간곳이 없습니다 .. <다슬기 한 봉지>(강무지, 낮은산, 2008) 141쪽

 

'미소(微笑)'가 아닌 '웃음'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붙은 토씨 '-의'를 넣은 말투는 아쉽습니다.

 

 ┌ 좀 전의 웃음은

 │

 │→ 조금 앞서 지었던 웃음은

 │→ 조금 앞서 보여준 웃음은

 │→ 조금 앞서 같은 웃음은

 └ …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준다면 어떤 웃음이었는가를 찬찬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넘치게도 아닙니다. 아주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주고, 눈길을 보내 주면 됩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니,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펼치지 못합니다. 조금이나마 눈길을 보내지 못하니, 우리 글을 우리 글답게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이면서 우리 세상을 한결 아름답고 밝게 북돋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조금씩 마음을 바치면서 우리 이웃과 좀더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조금씩 마음을 나누면서 우리 자연과 삶터를 고이 가꿀 수 있습니다만, 말도 삶도 이웃도 마을도 나라도 살갑게 껴안고 있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2.27 15:59ⓒ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5. 5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