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국으로 으뜸인 냉이를 만나보세요

등록 2009.03.02 10:17수정 2009.03.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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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묵정밭의 냉이 집 앞 묵정밭에 도란도란 자라난 냉이 무더기

묵정밭의 냉이 집 앞 묵정밭에 도란도란 자라난 냉이 무더기 ⓒ 박종국


어릴 적 봄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놀러 갈 때면 외할머니는 "아이구, 내 강아지들 왔나?" 연방 볼을 부비고 나서 찬거리가 없다고 삽짝을 나셨다. 어린 마음에 외할머니가 무엇 하시나 싶어 졸졸 따라 나서면 아무 것도 없는 텃밭에 터 잡고 앉으셨다.


"할머니, 여기서 무엇 하세요?"
"아냐, 아무 것도 안 혀. 신발 베리니께 어서 나가여."
"근데 할머니 풀을 캐고 있잖아? 뭔 풀인데?"
"응, 쬐끔만 기다리그레이. 배고프제? 맛난 거 해줄랑게."

그랬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난 봄철 먹을거리라는 것을 몰랐다. 용케도 한 소쿠리 캐온 냉이를 쇠죽이나 끓일 때 덤으로 넣는 잡풀 정도로 여겼을 따름이다. 외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애지중지하며 다듬을 때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작 밥상머리에 그것이 올랐을 때도 나는 젓가락 한번 권내지 않았다.

근데 이제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나잇살이 든 지금, 시장에서 만나는 냉이는 달리 보이지 않는다. 어쩜, 장마당에서 냉이를 팔고 계시는 분들 모두 예전의 내 할머니 같은 연세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특별한 먹을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외할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손녀에게 정성을 다해 챙겨주셨을 냉이무침과 냉이국, 정작 혀끝으로 맛보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봄나물국으로 으뜸인 냉이

예나지금이나 봄나물국으로 으뜸인 게 냉이다. 그만큼 냉이의 어린 순과 잎, 뿌리는 이른 봄을 장식하는 나물이다. 모든 봄나물이 겨울을 이겨내고 올라오는 싹이니 만큼 그 안에 모든 양기가 들어있다.


a 냉이 추운 겨울을 이겨낸 냉이 한 포기, 배추 한 포기처럼 살찌다.

냉이 추운 겨울을 이겨낸 냉이 한 포기, 배추 한 포기처럼 살찌다. ⓒ 박종국


요즘은 비닐하우스를 해서 냉이를 사계절에 걸려 맛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름 냉이는 쇠어서 질기고, 하우스 냉이는 여려서 향이 봄철냉이만큼은 못하다. 냉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그 짧은 기간에 수확한 것이 가장 맛도 좋고 향도 진하다.

봄나물은 그 종류도 많다. 냉이, 달래, 민들레, 사철쑥, 곰취, 기름나물, 냉초, 두릅, 물레나물, 바위취, 번행초, 별꽃, 속속이풀, 솔나물, 엉겅퀴, 오이풀, 왕고들빼기, 원추리, 제비꽃, 조뱅이, 질경이, 참당귀 등 봄철산야에서 나는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도 모두 우리의 소중한 먹을거리다. 이들 식물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인 셈이다.


오늘 집 앞 묵정밭에서 냉이를 만났다. 도란도란 돋아있는 냉이. 이즈음 농촌에서 가장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도톰하게 잘 자라 향긋한 향취가 금방이라도 흠뻑 배어들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냉이 꽃을 피울 테지만 미안한 마음에 한 소쿠리 캤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냉이국. 먼저 적당량의 냉이를 준비하고, 미리 해캄 해 둔 바지락에다 두부, 파, 다진 마늘을 준비해 둔다. 이어 다시마와 마른새우, 멸치와 청량고추로 육수를 우려내고, 된장은 한 숟가락 정도면 향긋하고 은은한 맛을 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a 잘 씻은 냉이 살찐 냉이를 다듬어서 깨끗이 씻었다.

잘 씻은 냉이 살찐 냉이를 다듬어서 깨끗이 씻었다. ⓒ 박종국


포기냉이를 다듬을 때는 잎 쪽에서 뿌리 닿는 부분이 흙이 제일 많이 붙어있으므로 칼로 살짝 긁어가면서 뿌리까지 깨끗하게 다듬는다. 묵정밭에서 겨울을 이겨낸 냉이는 묵은 잔잎이 많기 때문이다. 다듬은 냉이는 찬물로 서너 번 씻는다.

냉이에는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고 칼슘과 철분이 탁월

다음으로 멸치와 마른새우, 다시마와 청량고추를 찬물에 같이 넣어서 팔팔 끓을 때까지 우려낸다. 이때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며 바로 건져내야 한다(너무 오래 끓이면 멸치의 비린내가 심해진다).

불을 좀 줄이고, 된장을 채에 넣고 잘 푼다(굳이 된장을 안 풀어도 되지만 맑은 냉이국을 원한다면 조물조물 푸는 것이 좋다).

a 냉이장국 냉이장국은 다시마와 마른새우, 멸치와 청량고추로 한소끔 끓여 육수를 우려낸다.

냉이장국 냉이장국은 다시마와 마른새우, 멸치와 청량고추로 한소끔 끓여 육수를 우려낸다. ⓒ 박종국


a 된장풀기 냉이장국을 중불에 끓이다가 된장을 체에 거르면서 푼다.

된장풀기 냉이장국을 중불에 끓이다가 된장을 체에 거르면서 푼다. ⓒ 박종국


한소끔 끓기 시작하면 바지락을 넣고, 바로 고춧가루 한 스푼, 다진 마늘 반 스푼을 정도 넣고 팔팔 끓기 시작하면 냉이를 넣는다(특히 냉이국을 끓일 때는 뿌리째 넣어야 참다운 맛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진 파와 두부를 넣으면 맛깔스런 냉이국이 만들어진다. 간이 부족하면 소금으로 맞춘다. 냉이국은 쌀뜨물(속뜨물)을 넣어 끓이면 더욱 구수하다

a 묵정밭 냉이 봄철 냉이는 묵정밭에 자란 게 향기가 으뜸이다.

묵정밭 냉이 봄철 냉이는 묵정밭에 자란 게 향기가 으뜸이다. ⓒ 박종국


냉이에는 단백질 함량이 가장 많고 칼슘과 철분도 많이 들어있다. 특히 비타민A와 C도 풍부하여 비염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냉이의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제채'라 하여 약재로 쓰는데, 꽃이 필 때 채취하여 햇볕에 말리거나 생풀로 쓴다. 말린 것은 쓰기에 앞서서 잘게 썬다. 약효는 지라(비장)를 실하게 하며, 이뇨, 지혈, 해독 등의 효능이 있어 비위허약 ·당뇨병 ·소변불리 ·토혈 ·코피 ·월경과다 ·산후출혈 ·안질 등에 처방한다.
#냉이 #냉이무침 #냉이국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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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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