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의 경제위기 해법을 놓고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갈등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한국 시간으로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상대적으로 경제 기반이 취약한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최근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유럽 '또 다시 철의 장막 펼치나'
이날 헝가리의 쥬르차니 페렌츠 총리는 동유럽 9개국(헝가리, 폴란드, 체코,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을 대표해 최대 3,000억 유로(약 581조원)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며 우선 1,900억 유로의 특별펀드 조성을 요청했다.
페렌츠 총리는 "만약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유럽 대륙을 가를 것"이라고 서유럽 국가들을 압박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옛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꺼내든 이후 유럽의 경제적, 사상적 경계선 역할을 했던 '철의 장막'이라는 단어가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들은 동유럽 국가들의 다급한 구조 요청에 끝내 고개를 돌리면서 결국 특별펀드 조성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모든 국가들이 똑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각 국가마다 구제 방안이 사례별(case-by-case)로 정해져야 한다"고 밝히며 특별펀드 조성을 거부했다.
메르켈 총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폴란드, 체코 등도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유럽
이처럼 서유럽 국가들이 일부 동유럽 국가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금 지원을 기피하는 것은 이들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독일과 프랑스는 오히려 자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동유럽의 위기를 계속 못 본체 할 수는 없기에 '금고 열쇠'를 쥐고 있는 서유럽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독일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이미 동유럽에 수천억 유로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유럽에서는 '동유럽 국가들이 돈만 많이 빌려가고 경제성장은 이루지 못했다'는 비난의 여론도 높다.
만약 동유럽 국가들이 위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디폴트 선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면 유럽 전체는 물론이고 다른 대륙으로까지 충격이 옮겨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역시 동유럽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시달리면서 또 다시 동-서간의 경제적 격차라는 딜레마에 빠진 유럽 대륙이 과연 어떠한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2009.03.03 09:2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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