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71) 순응적

―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체제 순응적인 인물’ 다듬기

등록 2009.03.04 19:56수정 2009.03.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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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결코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이두호-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 55쪽

 

 '결(結)코'는 '조금도'로 고쳐씁니다.

 

 ┌ 순응적 : x

 ├ 순응(順應) : 환경이나 변화에 적응하여 익숙하여지거나 체계, 명령 따위에

 │    적응하여 따름

 │   - 지금은 새로운 체계에 순응이 필요한 시기이다

 │

 ├ 결코 순응적으로

 │→ 조금도 고분고분

 │→ 조금도 함부로

 │→ 그저 곧이곧대로

 └ …

 

 "부드러이 따른다"는 뜻을 한자로 옮기면 '順應'입니다. 말뜻 그대로 "부드러이 따른다"라 하면 그만인 한편, '고분고분하다'라는 한 낱말로 담아내도 괜찮습니다. 고분고분한 모습은 다른 생각을 않고 '곧이곧대로' 좇아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은 앞뒤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함부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라고도 하겠지요.

 

 보기글에서는 '순응-적'이 아닌 '순응'만 넣어 "그 말을 조금도 순응하지 않는다"처럼 다듬어도 됩니다. '순응' 뒤에 붙인 '받아들인다'는 겹치기가 되기도 하거든요. '-적'을 붙이는 바람에 뒷말과 겹치기가 되는 줄 미처 몰랐으리라 봅니다.

 

 

ㄴ. 체제 순응적인 인물

 

.. 그것은 지배계급이 고안해 낸 체제 순응적인 인물로서, 하층계급 사람들이 자기들 스스로를 그것과 동일시하고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37쪽

 

 '지배계급(支配階級)'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다스리는 계급"이나 "다스리는 사람들"이나 "다스리는 자리에서"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고안(考案)해'는 '생각해'나 '짜내'나 '만들어'로 다듬고,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하층계급(下層階級)'은 '낮은자리'로 손질하며, "그것과 동일시(同一視)하고"는 "그와 똑같이 보고"로 손질해 줍니다.

 

 ┌ 체제 순응적인 인물로서

 │

 │→ 체제를 잘 따르는 사람으로서

 │→ 체제에 길들어진 사람으로서

 │→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으로서

 └ …

 

 '체제(體制)'란 '조직(組織)'을 가리키고, 조직이란 '체계(體系)'를 이룬 무엇을 가리키며, 체계란 '짜여진' 무엇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짜여진 틀'이나 '엮이어 있는 틀거리'가 '체제'인 셈입니다.

 

 체제를 잘 따르는 사람이라면, 짜여진 대로 잘 따르는 사람입니다. 짜여진 대로 잘 따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하여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주어진 대로 하는 사람이고, 주어진 대로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 사람이니 시키는 대로 하게 마련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어떤 틀거리에 길들어진 사람입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니 노예나 종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노예나 종 같은 사람들은, 지식은 많이 쌓아 놓고 있어도 바보처럼 굽니다. 얼뜨다고 할까요, 어수룩하다고 할까요, 얼빠졌다고 할까요. 어리석다고 할까요, 어설프다고 할까요, 어처구니없다고 할까요.

 

 ┌ 다스리는 쪽에서 만들어 낸 노예 같은 사람들

 ├ 다스리는 자리에서 생각해 낸 바보 같은 사람들

 ├ 다스리는 이들이 빚어 낸 얼뜬 사람들

 └ …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생각을 담아내는 말을 우리 깜냥껏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땅에 터내린 삶을 녹여내는 말과 글을 쓰기보다는, 서양 해바라기에 휩쓸려 영어 나부랭이로 지식 자랑을 합니다.

 

 일제식민지를 비판하고 일제부역을 한 지식인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고스란히 쓰고 있는 한편, 일제부역을 한 지식인들이 쓰던 얄딱구리한 일본 한자말을 하나도 안 털어내고 있습니다. 미국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전쟁 미치광이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며,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쓴소리를 하는 우리들이지만, 미국말(영국사람 말이라기보다 미국사람 말이기에)을 아무렇지도 않게 뇌까리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쩌면, 제도권 입시교육을 나무라면서 '그래도 나는 대학 졸업장을 딸 테야'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대입시험에 목매다는 주입교육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렇지만 내 아이는 일류대학에 붙어야 해' 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한손으로는 꾸짖는 글을 쓰지만, 다른 손으로는 문제집과 참고서와 교과서를 베껴쓰면서 달달 외웁니다. 한귀로는 올바른 목소리를 듣는다지만, 다른 귀로는 제 밥그릇 챙기는 이야기를 귀담아듣습니다. 앞에서는 나무라는 목소리를 내지만, 뒤에서는 같은 입으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구요' 하고 핑계를 댑니다.

 

 ┌ 체제 순응적인 인물

 │

 ├ 체제를 잘 따르는 사람

 ├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

 ├ 스스로 찾아나서지 못하는 사람

 ├ 바보 같은 사람

 ├ 얼뜨기 / 얼치기 / 어리보기 / 머저리

 └ …

 

 달콤쌉싸름한 힘과 이름과 돈에 매이면, 어쩔 수 없이 마음과 넋과 생각을 내놓아야 합니다. 한손에 힘을 쥐고 다른 손에 사랑을 들 수 없습니다. 한손으로 이름을 움켜쥐면서 다른 손에서 믿음을 펼칠 수 없습니다. 한손으로 돈을 붙잡으니 다른 손으로 나눔을 함께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두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입으로 읊는 말과 손으로 옮겨적는 글이 달라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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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19:5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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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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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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