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부도로 엄마가 노점상 했지만 경매로 쫓겨나

[연재소설] 모래마을 사람들 8회

등록 2009.03.06 09:56수정 2009.03.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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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복날의 손수레 8

저쪽에서 몇몇 남녀 초등학생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신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상당한 실력이었다. 두 사람은 리어카에서 가까운 벤치로 가 앉았다.


"음, 뭐랄까…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말이 있잖아. 구월시장과 모래내시장 뒷동산에 오래 살다 보니 나도 장사꾼이 되었지, 허허허."
"그런데요, 선생님… 왜…."

붉어진 낯이 가시지 않은 효진이 말꼬리를 흐렸다.

"왜 그 많고 많은 장사 중에 고물 장사냐는 말씀인가?" 
"속상해요, 선생님."

효진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선호를 쳐다보았다.

"하하, 밑천 들지 않는 장사는 이것밖에 없더구나. 리어카도 고물상에서 빌려온 거니 한푼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장사인 셈이지."
"선생님, 그렇게 어려우세요?"


"가뜩이나 책 안 보는 나라인데, 더군다나 나라 경제마저 어려우니 별 수 없는 노릇이구나. 책 잘 나가는 작가 중에 누군가는 자기처럼 영혼을 불어넣어 쓰면 책이 잘 팔릴 거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분 생각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겠지. 안 팔리는 작가 심정이 안 돼 보고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럼 책 안 팔리는 작가는 다 작품을 엉터리로 쓰기 때문에 그런가? 절대 그렇지 않거든. 물론 좋은 소설이 잘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엉터리 소설이 잘 팔리는 경우도 있고, 또 좋은 소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우리 나라는 뭐 이렇죠? 책 안 보는 사람들 다 나빠요, 선생님."
"이 나라가 IT 강국이니 뭐니 하며 자랑스러워하는데, 정신문화가 밑받침이 안 되어 있으니 사실 자랑스러워할 것 별로 없는 노릇이지. 독서 강국과 함께 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지만, 하루가 달리 과학문화가 발전해 나가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독서가 국력'이 아닐까? 몸이 튼튼하면 물론 좋겠지만, 머릿속에 사색할 수 있는 힘이 조금도 스며들어 있지 않다면 소용없는 노릇이지. 사색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뭐야? 그게 바로 독서 아닌가. 세상의 변화와 미래를 얘기해 주는 책도 읽을 필요가 있겠고, 또 급변하는 현실에서 지쳐가는 정신세계를 가다듬어 줄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도 읽을 필요가 있겠지."

"속상해요, 선생님. 방과후 특별활동도 글짓기보다 PC를 더 배우려고들 했어요."
"지금은 적성교육이라고 하나?"
"예."
"PC야 이제 필수적으로 다뤄야 하는 세상이 됐고, 또 시간 많이 안 걸리게 좋은 정보와 지식거리를 얻을 수 있으니까 좋은데, 가르치는 방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거야."
"……"

"옳지 않은 정보를 얻는다거나, 밤낮없이 게임용으로만 사용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니. 그러자면 PC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제대로 가르쳐줘야 하겠지. 그런데 책읽기 싫어하면서 PC 다루는 기술적 요령으로만 무장(武裝)된 선생님이라면 곤란할 거야. 사색이 없는 기계 같은 선생님이 가르쳐선 안 되겠지. 단순, 단순 하는데, 그게 생각이 좁고 얕은 의미의 단순이라면 안 되겠지. 이런 방법은 어떨까? 글짓기 선생님이 PC를 이용한 글짓기를 가르친다면? 글을 쓸 때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바르게 찾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말이야."
"예에."

"참, 효진이 무슨 과 갔지? 미술 전공인가?"  
"후후, 선생님 전공하셨던 거랑 같은 과 갔어요."
"오, 그래? 문예창작?"
"예."

"소설? 시?"
"소설이에요. 박경리 선생님 같은 분처럼 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토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우와! 대단하구나, 하하하."
"선생님, 흉보시는 거죠?"
"그럴 리가 있겠니? 대견해서 감탄하는 거지.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거야."
"꿈은 그런데 소설가나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소설가가 돼서 끼니 잇고 살아가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소설가 되기는 물론 더 어렵지. 우리 때도 전국에서 글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입학한 건데, 60명 중에서 소설가가 겨우 두 명밖에 안 나왔으니 말이야."
"선생님 동기이신 작가선생님이 김아은 선생님이시죠?"
"그래. 초등학생 때 내가 얘기해 줬었나?"
"아뇨. 교수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그래? 어느 교수님이지?"
"소설창작 가르치시는 소설가 선생님이세요. 선생님 선배님이시라던데요."
"가만 있자, 어디 학교인가?"
"놀라지 마세요, 후후. 선생님 모교예요, 후후."

"그럼 박인아 선배 얘기하는 모양이군."
"예, 맞아요." 
"그 선배는 여자 몸으로 러시아까지 가서 석사 학위를 받아 왔으니, 정말 대단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셨지."
"예, 배울 게 많아요."

그때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뜯어진 청바지 차림의 두 젊은 남녀가 깡통과 과자 봉지를 땅바닥 아무데나 던져버리고 일어나는 게 효진의 눈에 들어왔다. 효진은 그리로 가서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깡통을 들고 돌아와 손수레의 깡통 자루 속에 넣었다.

"선생님, 여기 맞게 넣었죠?"

선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말했다.

"참, 효진이네가 모래내시장에서 장사를 했었지?"

선호는 1996년에 모래내시장에 라면에 넣어 끓일 오징어를 사러 내려갔다가 우연히 어머니가 하는 노점 좌판에 놀러왔던 효진과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예, 아빠 사업이 부도 맞고 회복되지 않아서 엄마가 노점상 했었어요."

양말 노점상이었다. 그때 효진의 어머니가 딸아이 선생님이라고 반가워하며 양말 몇 켤레를 검정봉지에 담아 주었었다. 사양했지만 한사코 쥐어 주는지라 하는 수 없이 들고 오고는, 나중에 글쓰기 시간에 자신이 쓴 동화책을 효진에게 선물해 주었었다.

효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지금은 모래마을에 안 살지?"
"예. 빌라가 경매 붙어서 쫓겨났어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선호는 마치 자기 일이었던 것처럼 머릿속이 희게 탈색되는 느낌이었다.

[계속]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쓰고 물건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들 소설 속의 효진이네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어머니가 양말 노점상을 했지만, 결국 집이 경매에 붙어 쫓겨나고 말았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쓰고 물건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소설 속의 효진이네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어머니가 양말 노점상을 했지만, 결국 집이 경매에 붙어 쫓겨나고 말았다. 김선영

덧붙이는 글 | 2004년 말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세상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보충하고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2004년 말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세상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보충하고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모래마을 #모래내시장 #노점상 #집 경매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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