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에 개구리알을 찾아 먹는다고?

아름다운 마을 학교의 새로 쓰는 절기 이야기

등록 2009.03.06 10:20수정 2009.03.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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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경칩입니다. 예로부터 경칩이면 겨울잠 자던 벌레나 개구리들이 깨어나 땅위를 기어 다니거나 알을 낳는다고 하지요. 봄햇살이 좋아 그런지 아이들은 배움터에 들어서자마자 산책 가자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려는 아이들의 바람이 대견합니다. 하지만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절기 공부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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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산책하고 싶은 마음을 정돈하고 앉아 차분히 경칩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있다. ⓒ 한희정

▲ 절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산책하고 싶은 마음을 정돈하고 앉아 차분히 경칩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있다. ⓒ 한희정

 

지난 시간에 배운 규표와 1년 365일에 숨겨진 천지운행의 원리를 다시 떠올려봅니다. 규표는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세워 놓고 그림자의 길이를 재던 천문 관측 기구 중 하나입니다. 하지에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고, 동지에 가장 긴데, 그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림자의 길이에 숨겨진 태양의 고도, 빛의 입사각을 그림으로 표현해봅니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원모양으로 공전하지 않고 타원형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5일하고 6시간도 다시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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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표와 천체관측으로 타원형 공전 궤도에 맞게 절기를 만든 조상들 규표와 같은 천체 관측 기구로 1년이 360일 아닌 365일 하고 6시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24절기에 담은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한희정

▲ 규표와 천체관측으로 타원형 공전 궤도에 맞게 절기를 만든 조상들 규표와 같은 천체 관측 기구로 1년이 360일 아닌 365일 하고 6시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24절기에 담은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한희정

그리고 '경칩'에 대해 알아봅니다.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시기라고 전해지지만 기후 변화로 개구리 같은 양서류들은 벌써 잠에서 깨어났을 것 같습니다. 기상청 사이트에 접속해서 지난 30년(1960년-1990년) 평균값과 오늘의 날씨를 비교해봅니다. 서울 경기 지역의 평년값은 최고 기온 6.6도, 최저 기온 -1.3도인데, 오늘 최고 기온은 9도, 최저기온은 2도로 3도 이상이나 높다는 걸 알았습니다. 날씨를 느끼는 데 있어서 1도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기 어렵지만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경칩 즈음에는 황토를 벽에 바르고 농기구를 손질했다고 합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황토벽이 봄이 되어 녹으면서 틈이 생길 수 있고, 또 그 틈을 타고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어서 그런 작업을 했던 거지요. 또 은행알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은행나무는 암수 서로 마주보고 있기만 해도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그 사랑의 징표로 여긴 모양입니다.

 

봄이 되어 한창 물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 수액을 뽑아다 먹기도 했다지요.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옛날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그보다 좋은 '보약'들이 많으니 '수액'을 빨아먹는 '인간 흡혈귀'는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또 경칩의 전령사 개구리와 도롱뇽의 알을 건져다 먹기도 했다는데 그 옛날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런 풍습도 요즘에는 없어져야 할 '야만적인' 풍습이겠지요.

 

우리 조상들은 경칩 즈음 이루어지는 주변 환경과 생활 환경의 변화를 속담에 담아 이렇게 표현하고 전승해 왔습니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우수경칩이 되면 봄이 문턱에 온다.

우수경칩에 대동강물 풀린다.

우수경칩에 김장독 터진다.

우수에 대동강물 풀리고 경칩에 뱃사람 떠나간다.

 

그리고 보리싹을 뽑아 보아서 뿌리가 세 개 내렸으면 풍작, 두 개면 평작, 한 개면 흉작으로 보는 보리점을 치기도 했답니다. 먹고 살 것이 부족했던 시절, 한 해 농사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풍년이 되어도 걱정이고, 풍년이 되어 오히려 애써 농사지은 것들을 갈아 엎어야 하는 천박하고 가혹한 자본의 시대와 비교되는 삶입니다.

 

이런 경칩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은 요즘 우리 생활에 맞는 생활 속담을 지었습니다. 지난 우수에 '우수에 우리학교는 새학기를 시작한다. 우수에 옷이 얇아진다. 우수에 내복을 벗는다. 우수에 겨울 잠바, 겨울 이불을 빤다. 우수에 옷장을 정리한다. 우수에 겨울 부츠를 벗는다. 우수에 개구리가 깨어 돌아다닌다.' 이런 속담들을 지어 보았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더 재미있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경칩에 이불을 차내며 잠을 잔다.

경칩에 개구리알을 찾아 나선다.

경칩에 방정리(집안 대청소)를 한다.

경칩에 봄산책을 시작한다.

경칩에 농구대전 막판이다.

경칩에 월드베이스볼을 시작한다.

경칩에 겨울 잠바를 벗고 봄잠바를 입는다.

경칩에 학교가는 길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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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새순을 보고 있는 아이들 배움터 뒷 골목 작은 화단에서 사철나무 새순을 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 한희정

▲ 사철나무 새순을 보고 있는 아이들 배움터 뒷 골목 작은 화단에서 사철나무 새순을 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 한희정

요즘 아이들 삶에 맞는 새로운 절기 속담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정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책상을 물리고 산책을 나섭니다. 배움터 뒷 골목 길가의 크고 작은 화단에는 여러 나무와 꽃이 있습니다. 사철나무는 벌써 잎눈을 틔우고 싱그러운 연둣빛 잎을 자랑하고 있고, 회양목 새끼 손톱만한 잎 사이로 노오란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피어 올랐던 원추리 마른 잎 사이를 비집고 올라고는 새싹도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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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새싹 지난해 올라왔던 원추리잎은 누렇게 지고 말았지만 그 잎을 비집고 새 생명이 올라고 있다. ⓒ 한희정

▲ 원추리 새싹 지난해 올라왔던 원추리잎은 누렇게 지고 말았지만 그 잎을 비집고 새 생명이 올라고 있다. ⓒ 한희정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와는 달리 잎이 먼저 나는 연산홍 나무에 잎눈이 터서 벌써 1cm 넘게 자라고 있었지요. 잎눈 옆에는 씨주머니들이 입을 벌려 씨를 땅으로 떨어내고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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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 잎이 이렇게나 크게 자랐다니...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먼저 피는 연산홍 잎을 관찰하는 아이들 ⓒ 한희정

▲ 연산홍 잎이 이렇게나 크게 자랐다니...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먼저 피는 연산홍 잎을 관찰하는 아이들 ⓒ 한희정

참나무는 아직도 바싹 말라버린 작년 나뭇잎을 매달고 있었어요. 잎눈과 꽃눈은 그 잎에 가려 보이지 않아요. 아마도 가장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참나무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어느새 누런 잎들을 다 떨구고 초록빛 새순들을 찰랑거리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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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아직도 겨울이니? 지난해 잎을 아직도 달고 있는 참나무, 언제 이 잎을 다 떨구고 새순을 돋울까? ⓒ 한희정

▲ 참나무, 아직도 겨울이니? 지난해 잎을 아직도 달고 있는 참나무, 언제 이 잎을 다 떨구고 새순을 돋울까? ⓒ 한희정

잎눈보다 꽃눈을 먼저 틔우는 개나리와 진달래, 봄의 전령사지요. 잎눈은 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꽃눈은 간질간질거려 못 참겠다는 듯 보였어요. 화성산장 앞 개나리 군락에서 딱새를 만났어요. 봄을 부르는 딱새 소리 참 듣기 좋았지요.

 

딱새 소리를 뒤로 하고 마을 뒤 북한산 냉골 계곡으로 개구리와 도롱뇽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가던 계곡 아래 쪽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3년 전에는 도룡뇽알도 많이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 출입이 많아지면서 알을 잡아가기도 해서 개체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그런 사람들의 발길에 우리의 발길도 덧보태지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었어요.

 

개구리알을 찾아 계곡 위쪽으로 더 올라갔지요. 역시나 산개구리들은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에 알을 낳아 놓았어요. 벌써 겨울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알을 많이 낳아 놓았지요. 옛날에는 개구리나 도룡뇽이 물 깊숙한 곳에 알을 낳으면 가뭄이 들 것이고, 물가에 알을 낳으면 장마가 질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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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던 계곡에서 개구리와 도롱룡알을 찾고 있는 아이들 쉽게 찾았던 2-3년전과는 달리 쉬 눈에 띄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 다니고 있는 아이들 ⓒ 한희정

▲ 늘 가던 계곡에서 개구리와 도롱룡알을 찾고 있는 아이들 쉽게 찾았던 2-3년전과는 달리 쉬 눈에 띄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 다니고 있는 아이들 ⓒ 한희정

 

알 옆에서 산개구리도 만났어요. 겨울잠을 자고 먹이를 얼마 먹지 못해서인지 엄청 홀쭉한 모습이었어요.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느라 힘을 많이 썼을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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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개구리와 개구리알 검은 점점들이 개구리알이고, 큰 바위 밑에 머리를 숨기고 있는 개구리 ⓒ 한희정

▲ 산개구리와 개구리알 검은 점점들이 개구리알이고, 큰 바위 밑에 머리를 숨기고 있는 개구리 ⓒ 한희정

 

미끈거리는 개구리알, 한 번 만져보고 싶었지만 만지지 않기로 했어요. 개구리와 같은 양서 파충류에게 36.5도라는 사람의 체온은 '화상'을 입을 만치 높은 온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손을 차가운 계곡물에 담그고 만져보기도 했는데 도롱뇽 알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더 이상 만져보지 않기로 했지요.

 

옛날에는 개구리도 도룡뇽도 개체수가 많아서 사람들이 경칩에 신경통 약으로 쓴다고 건져다 먹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보호를 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처럼 느껴져요. 그런데도 이렇게 알을 낳아 놓은 것을 보면 '생명력'이라는 것이 참 신비하게 느껴지지요. 46억년 지구의 역사 속에 살아남은 생명의 신비지요.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도중에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계곡 웅덩이에 산개구리 수십마리가 헤엄치며 짝짓기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한참을 지켜보고 있으면서 이 친구들이 경칩, 못난 인간들의 밥이 되지 않고 잘 살아 남길 바라고 또 바랐지요.

 

배움터로 돌아와 산책을 하며 관찰했던 내용을 생태 속담으로 만들어 봤어요.

 

경칩에 회양목 꽃이 피었다.

경칩에 원추리 새싹이 올라온다.

경칩에 사철나무 새순이 올라온다.

경칩에 대추나무와 감나무, 아까시나무 잎눈은 미동도 없다.

경칩에도 대추나무와 감나무, 아까시나무 잎눈은 겨울잠을 자나보다.

경칩에 참나무는 작년 잎을 아직도 매달고 있다.

경칩에 국수나무 분홍빛 잎눈이 예쁘다.

경칩에 연산홍 잎이 피었다.

경칩에 개구리들이 짝짓기를 한다.

경칩에 개구리들이 알을 낳았다.

 

기후 변화가 불러올 변화 앞에 우리는 어쩌면 무력한 존재로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명'은 그런 무력함과 무책임함을 넘어서 천지운행의 원리 앞에 스스로를 내어 놓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제 개구리는 경칩이 아닌 우수에 깨어나고, 개구리알과 고로쇠 수액은 신경통에 좋은 약이 아니라 우리가 묵묵히 지켜봐주어야 할 길동무라고 새롭게 경칩 일기를 써야 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아이들과 함께 절기 활동을 하며 기후변화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과 평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공부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2009.03.06 10:20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아이들과 함께 절기 활동을 하며 기후변화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과 평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공부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름다운마을학교 #경칩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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