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책상과 비품들 교실 짐을 옮기고 나면 망가진 것들도 있지만, 지난 해에는 잘 쓰던 것도 교사에 따라 필요없어져 버리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부영
초임 시절만 해도 새 학년이 되면 주전자, 양동이, 먼지털이, 빗자루, 쓰레받기, 쓰레기통, 비누곽, 거울 같이 교실에서 쓰는 비품은 모두 학부모들에게 부탁을 해서 마련했습니다. 심지어 교사 책상보와 방석은 물론이고, 커튼까지도 학부모들이 새로 해서 달아주고 또 더러워지면 빨아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새 학년이 되면 각 교실은 학부모들이 주전자, 양동이, 쓰레기통, 화분 따위를 들고 오가느라 북적거렸지요.
일부 교사들은 교실에 새로 갖출 품목을 써 주면서 학부모들에게 미리 요구하기도 했지만, 주로 새로 뽑힌 반장 엄마를 위주로 구성된 어머니회 임원들이 나서서 '알아서' 교실을 새 물건으로 새롭게 바꾸어 주었기도 했습니다. 닦아서 쓰면 될 물건들도 다 버리고 새로 사고, 멀쩡한 커튼도 떼고 새로 달기도 했습니다.
민망하게도 제가 자리를 뜬 사이 교사 책걸상에 학부모 취향의 분홍색 레이스가 화려한 책상보와 방석까지 새로 마련해서 놓기도 했습니다. 한때 학부모가 어떤 물건을 어느 만큼 채워주느냐로 교사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있었습니다. 학부모들 사이에 경쟁이 붙기도 했고요.
사정이 이러니 반장이 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이 나오고,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지요. 문제가 터지자, 학교에서는 교실에 필요한 물건은 학부모에게 요구하지 못하게 하고 학교 예산으로 모두 마련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휴지 하나라도 학부모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된지 한참 되었는데 최근에도 여전히 학부모들한테 교실에 필요한 것 없냐는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교실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학교에서 마련해 주고 있으니 학부모님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고 답합니다. 아니 실제로 그렇습니다.
교실에 필요한 청소도구를 비롯한 학습 교구는 물론이고, 아이들 학습에 필요한 학습준비물비까지 예산에 책정해서 모두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 우리 반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공부시간에 쓰는 모든 것을 다 사서 주었습니다. 미술 활동에 필요한 준비물과 음악 시간에 필요한 악기는 물론이고 알림장, 일기장, 풀, 자, 가위, 연필, 지우개, 셀로판 테이프까지 모두 교실에 사서 마련해 두고 썼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우리 반 아이들이 집에서 사 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