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오늘(6일) 오전 출근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사들이 그 정도로 압박을 받았다고 하면 안 된다"며 신영철 대법관의 부당한 재판간섭 행위를 '압력행사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이 대법원장은 사건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진상조사팀의 조사를 받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대법원장을 왜 조사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같은 대법원장의 발언은 이번 사태에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법부 수장으로서 매우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대법원장 이전에 한 사람의 법관으로서 그 자격과 자질을 의심받기에 충분한 잘못된 발언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간섭 사건은 정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스스로 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함으로써 사법부 자신의 명예와 존립근거는 물론 법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중대한 사건이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인 지난 해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촛불시위 재판 담당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건배당부터 선고 방향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간섭과 압박을 가한 것이다.
"집중 배당으로 달성하고자 하였던 보편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노력해 달라"(8월 14일)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0월14일) "적당한 절차에 따라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어떠하냐"(11월 6일)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려달라"(11월24일)
위와 같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 내용은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가지고 해석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상식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그만인 내용들인 것이다. 대체 무슨 내용인가?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촛불시위 관련 피고인들에게 신속하게 유죄를 선고하라는 노골적인 주문이다.
이것이 압력행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첨삭지도란 말인가? 신 대법관은 헌법 제103조(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와 법관윤리강령(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신 대법관은 즉각 퇴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처럼 명명백백한 사실을 놓고서 그것이 불법적인 압력행사인지 아닌지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관으로서 기본적인 판단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장도 법 앞에 평등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공정하고 신속한 진상규명을 통해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또한 대법원장 자신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설령 직접 개입한 바가 없다 하더라도 정확한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근신하면서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사법부의 명예는 물론 대법원장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그렇다.
그런데 이제 막 진상조사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이 대법원장은 '압력행사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이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압력행사가 아니라고 미리 결론을 내린다면 과연 대법원의 진상조사는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또한 그 결과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또한 이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을 왜 조사해!"라며 조사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 또한 매우 부적절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의혹을 받고 있다면 진상규명과 사법부의 명예회복을 위해 스스로 조사를 자청하는 것이 사법부의 수장이자 한 사람의 법률가로서 취해야 할 당연한 처신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서 대법원장도 예외일 수는 없다. 대법원장이라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법 앞에 평등'을 솔선수범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이 대법원장은 부적절한 발언을 사과하고 진상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 법원 스스로 지켜야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법이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정의의 보루이자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의 지배'가 '법을 동원한 지배'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돌격대로 나섰고 검찰은 정권의 시녀를 자청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민주화시대 그토록 독립성을 외치던 사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로 인해 실추된 것은 무엇보다도 법의 권위이다. 법치의 개념은 희화화되었으며, 권력과 법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과 복종은 경멸과 조롱으로 바뀌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군사정권 시절의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법원과 법관들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그 계기가 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09.03.06 22:39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비밀 이메일’, 압력행사 아니면 ‘첨삭지도’? 군사정권 시절 치욕 역사 되풀이 하려는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