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보도가 사법부 파괴 공작?
<조선> 방송겸영, 이래서 안 된다

[取중眞담]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신영철 이메일 압력

등록 2009.03.09 15:49수정 2009.03.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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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일보> 7일자 사설.

<조선일보> 7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 7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일부 판사들이 좌파신문과 TV에 이메일 제공"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압력 파문 와중에 <조선일보>가 '설상가상'식 사고를 하나 쳤다.

 

<조선>은 지난 7일 '사법부 비판을 넘어선 조직적 사법부 공격에 대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가리켜 "이 사건은 일부 판사들이 좌파 신문과 TV에 이 이메일을 제공해 폭로, 알려지게 됐다"고 규정했다.

 

사설은 "자기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법원 내부 일을 외부에 조직적으로 폭로하거나 일부 언론과 편을 짜 법원 내부 인사에 대해 인민재판식으로 집단 몰매를 가하는 것은 건전한 사법부 비판을 벗어난 사법부를 향한 파괴공작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했다.

 

<조선> 사설을 보고 분노는커녕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런 신문이 한국에서 1등 신문이라고 자부하는 게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맨몸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았다.

 

'혁명을 위해 성까지 도구로 사용했다'던 5공 검찰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7월 17일 공안 검찰은 "성 모욕 주장은 급진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는 의식화 투쟁의 일환으로 혁명을 위해 성까지 도구로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성을 혁명 도구로 사용했다"고 비난했던 1980년대 공안 검찰과 이번 사건을 "인민재판식 사법부 파괴공작"이라고 부르는 <조선>이 뭐가 다른가?

 

'엽기적 상상력' 측면에서 보면 "문근영은 빨치산 선전용", "<워낭소리>는 게릴라형 문화전쟁의 예고편"이라는 '반공 초등학생'(진중권 교수의 표현) 지만원씨와 동급이다.

 

역사책에서나 볼 줄 알았던 억지가 20여 년 만에 또다시 도졌다. 한국 사회는 10년 전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1980년대, 197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

 

대체 이 신문은 저널리즘을 뭐로 보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논조는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취재 방식과 기사 쓰기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이었다.

 

만약 <조선>이 메일을 먼저 입수했다면? 

 

그러나 <조선> 사설로 보건대 만약 문제의 메일이 <조선>에 제일 먼저 입수됐었다면? 자기 성향과 맞지 않으니까 보도하지 않고 뭉개면 다행일 것이다. <조선> 사설에서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볼 때 아마 1면 머리기사로 "좌익 판사들 인민재판식 사법부 파괴 공작, 이메일 조직적으로 외부 유출하며 수뇌부 공격" 정도로 썼을 것 같다.

 

아니면 좌익 판사들의 국기 문란행위를 도저히 눈감을 수 없다며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며 수사 의뢰를 했든지….

 

이번 사설은 역설적으로 <조선>을 비롯한 수구 족벌 신문이 왜 방송 겸업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하게 드러냈다.

 

촛불 재판을 둘러싼 일부 법원 수뇌부와 판사들간의 갈등은 여러 번 언론들을 통해서 보도됐다. 문제는 결정적 물증이 없어 아직 의혹이나 논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메일이라는 물증이 나옴으로써 이번 사건은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이메일은 KBS 법조팀이 지난 5일 아침 특종 보도했다. KBS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접수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도 이런 보도가 나왔다.

 

하다 못해 '골수 민방' SBS도 지난 6일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을 모아놓고 촛불재판으로 구속된 피고인들을 보석으로 풀어주면 곤란하다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55893)

 

그러나 조중동 민방이라면 취재는커녕 단 한 개의 팩트라도 찾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는 동료 기자들을 향해 "좌익 언론들의 발악"이라고 등 뒤에서 총질이나 해댈 것 같다.

 

<조선> 논설위원들이 솔깃할 사설거리

 

마지막으로 <조선>의 논설위원들에게 다음 사설 거리를 하나 제공해볼까 한다.

 

신영철 대법관 압력 파문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KBS 법조팀이다.

 

<조선>의 논설위원들은 "KBS 법조팀은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게 아니라 좌파들의 사법부 파괴 공작에 앞잡이를 선 혐의로 파면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사설 제목은 '이번 사건을 KBS 내부 좌익세력 뿌리 뽑는 계기로' 또는 'KBS 내부 정화 없이 시청료 받길 바라나' 정도면 될 것이다.

2009.03.09 15:49ⓒ 2009 OhmyNews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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