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남자의 좌충우돌 생활기

단발머리인 나, 머리 길러서 너무 좋다!

등록 2009.03.17 17:11수정 2009.03.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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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좌) 2009년 3월(우)에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은 모자이크 했습니다. ⓒ 이상규


"머리 너무 특이하시네요…."
"머리보니까 음악 하는 사람 같은데 어떤 장르 하세요? 아님 미술이나 연기, 뮤지컬 하세요? 그것도 아니면 뭐지…."
"어라,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였잖아."


저는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이러한 말들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부모님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도 저에게 항상 이러한 말을 하더군요. "아~ 머리 좀 짤러. 도대체 몇 년째 그 머리야?"라고 말입니다.

저는 고3 수능 이후부터 지금까지(군대 시절 빼면) 단발머리였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무렵까지 가수 서태지, LG 트윈스 이상훈, globe의 고무로 테츠야를 열렬히 좋아했는데 세 명의 공통점이 단발머리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명 모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했던 사람들이죠. 이러니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고3 수능 끝나자마자 머리를 길렀습니다.

제가 최대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항상 저의 머리 관련 이야기들을 꾸준히 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 단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장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기르기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달갑지 않은게 현실이죠. 중·고등학교의 두발제한이라든가 기업체에서의 용모단정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머리를 깎으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그동안 애쓰면서 길렀던 머리를 자르려니 조금 무섭더군요. 제가 남들보다 머리가 더 빨리 자라는 스타일이라 미용실을 자주 드나드는 것이 싫었습니다. 중학교 때 2~3주일에 한 번씩 머리를 잘랐기 때문에 이발비가 남들보다 많이 들어서 머리 깎는 것에 '질색'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몇 개월에 한 번씩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를 단발 수준으로 깎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용실을 찾으면 머리 깎기가 더 무섭더군요. 2004년 봄에 어느 모 스포츠 단체가 내걸었던 유명 뷰티샵 상품권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뷰티샵을 찾았는데 그곳의 젊은 종업원들이 손님 입장에서 듣기에 너무 많은 불쾌한 말들을 해서 기분이 안좋았습니다.(미용사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손님이 지루하지 않도록 말을 많이 걸어주는 것은 좋지만 머리 스타일과 얼굴을 연관짓는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안 좋았지요. 그런 일이 있은 이후, 제 머리는 제가 직접 잘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돈을 아낄 수 있어서 행복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면 단발머리하면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겪어 봤습니다. 공중 화장실 같은 경우에는 몇몇 남자분들이 저의 긴 머리를 보면서 '내가 왜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지?'라며 화장실을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죠. 그러더니 저에게 "여자인 줄 알았어요"라면서 웃으면서 넘어가시더군요.

그런데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을 놀래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지 그 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람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나 술주정뱅이가 제 머리를 보고 놀랐다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죠.

그래서 저는 공중 화장실을 갈 때마다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에는 머리띠 혹은 머리끈을 묶으며 화장실에 들어가고 겨울에 화장실을 갈때는 모자 달린 잠바를 입으면서 머리를 모자로 가리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에게 여자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다닙니다. 찜질방이나 목욕탕에서는 옆머리를 물로 축이면서 뒤로 넘기기 때문에 여자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게 되죠.

예전에 대학교 수업 시간 때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학과에 여자들이 별로 없다 보니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시간 강사가 저를 보고 여자 아니냐며 깜짝 놀래곤 하죠. 다행히 친구들이 "얘 남자예요"라면서 대신 답변했지만 그때의 분위기 때문에 수업 시간이 종강까지 활기차게 진행 되었습니다. 갈색 단발머리였으니 오인받기가 쉬웠죠.

그동안 여러 알바를 하면서 제 머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유명 연예인 콘서트 관련 알바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제가 주로 맡는 역할이 팬들의 사진촬영을 막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돌 가수의 사진을 찍으려는 여성팬들을 제지하려고 할 때 몇몇 여자팬들이 "아줌마. 저리 나가요", "아줌마 때문에 안보이잖아요", "같은 여자끼리 왜 그래요. 사진 찍으면 안되요?"등등 여러가지 원망섞인 말들을 들었는데 마음 속으로 너무 재미있어서 행사 알바를 즐겼습니다. 콘서트장이 어둡다보니 사람들이 제 얼굴보다는 긴 머리를 더 주목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웃음 밖에 안나옵니다.

방청 알바할 때는 여자들과 뒤섞이면서 박수와 함성을 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방청 알바 담당하시는 분이 제 머리 스타일이 길은데다 갈색 머리였기 때문에 남자들과 붙어있는게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른 누구보다 박수와 함성 소리가 크고 호응이 제일 뛰어나기 때문에 '여자들과 같이 있으면 호응이 더 좋겠지?'라는게 담당자분의 생각이었습니다. 남자 중고등학교와 '여자들이 많지 않았던' 공대를 다녔던 저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당자분들 믿고 오랫동안 알바를 할 수 있었죠.

군대 다녀온 이후 어느 중학교에서 오랫동안 급식 알바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일을 열심히 하니까 영양사와 조리원, 교사,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저를 많이 알아주시더군요. 머리가 길었기 때문에(물론 머리를 묶으면서 일했습니다. 일반 규격보다 크기가 큰 모자로 -시중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머리 부분을 완전히 덮으면서 일했죠.) 쉽게 눈에 띄었죠.

가장 보람찼던 것은 퇴근할때 몇몇 학생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인사를 받아도 안 받아도 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지만, 제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죠. 물론 긴 머리가 한 몫을 했지만요.

그런데 요즘에는 단발머리 때문에 고민입니다. 군대 가기 이전에는 마른 체격인데다 얼굴이 앳되었기 때문에 긴 머리가 어울릴 수 있었지만(여기에 꽃남방까지 걸쳐 입으면 여자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 꽃남방이 유행했죠.)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얼굴살 및 체격이 커지는 바람에 긴 머리가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앞머리를 눈섭까지 자르면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게 되었죠. 나이를 좀 더 먹으면 단발머리가 제 얼굴에 어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WWE의 언더테이커 헤어스타일이 저의 미래의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는 그때가서 생각해 볼 일이죠.

하지만 저는 지금의 스타일에 매우 만족합니다. 이런 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개성 표현 수단이자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즐기려고 합니다. 물론 장발 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사람들에게 얽매이는 것보다 제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중 하나의 키워드가 될 단발머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단발머리가 남자들 중에서 쉽게 눈에 띄니까요.

앞으로 단발머리를 유지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단정하게 깎을수도 있고 생활속에서 겪게 될 에피소드들도 많겠지만, '남들과는 전혀 다른' 추억과 행복을 많이 쌓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아직 멀은 이야기겠지만, 노년기에 젊었을적을 회상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죠. 이 땅에서 장발 머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받는 분들이 힘을 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장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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