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왔다. 보내는 곳의 주소는 사서함 8**호이다.
교정시설에 있는 장기수용생이다.
"높은 담안에서도 봄꽃들은 봉오리 지고, 빛살은 운동장을 내리쬡니다. 식판에는 봄나물이 자주 올라오고요. 봄처녀를 비롯한 배웠던 노래들과 가슴으로 따스하게 차별않고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떠오르릅니다. 올해도 다시 교육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는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고, 얼마 안 있으면 저는..."
사연이 무척 길다. 사춘기 때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와 답신은 간결하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하는 등 정석화 되었다. 그러나 교정시설에서의 편지는
온갖 회한과 사회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들이 미처 살피지 못하고 살았던 또 다른 자신들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거나, 잊거나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소감도 때론 진솔하게, 때론 장황하게 길게 적힌다.
작년 처음 특수교육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되었을때 교육생 모집을 하고 음감진담을 했다.
음감진단을 해서 바리톤, 테너 등으로 파트를 나눌때 자기 자신들도 목소리의 음색을 몰랐다고 했다. 아주 정확하고 좋은 음색을 가진 분과, 음치에 가까운 분들도 있었다.
교육생 모집에 들어온 분들의 느낌을 물어 보니
"나는 노래를 좋아하지만 이런 정통음악인지는 몰랐어요." 하며 조금 김을 빼는 소감
"이번 기회에 음치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유행가 아닌 다른 노래들도 자신감 있게 부르고 싶어서..."
시작할 즈음에는 예상대로 그집 앞이라든가, 보리밭, 선구자 등의 곡들에 대해서 다소
진부하게 느끼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러나 교육회수가 10여 회를 넘어서자
어머니에 관한 노래를 부를 때 눈물짓는 교육생들이 나오고, 복도를 지나가던
작업반 수용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들어와서 함께 음악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풍경도 생겼다.
정통노래 특강을 하는 틈틈이 악기연주 강습도 하고, 공연단을 교정시설내로 초빙하여 관람도 했다. 어떤 분이 원해서 교육외의 시간연장을 통해서 자원봉사로 미남가수분과 노래방기기도 활용하여 신나는 대중가요도 목청껏 부르게 하였다.
교육종반에 들어설 즈음, 단기간의 프로그램이 아닌 상반기와 하반기 8개월에 걸친 음악교육의 효과는 담당교도관의 표현대로 하면, 거친 언행들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 씩 부드러운 노래를 부르고, 발표 즈음에서는 그 노래들을 외우려고
하다가 잠이 들다 보니 잠을 자면서도 노래를 부르더라는 것이었다.
수료식을 할 때, 너무나 아쉬워하면서 꼭 종강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던 교육생들은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면 다시 지원하겠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긴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니 왜 음악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소식이 없는지 궁금해서 편지를 부친 것 같다.
음악교육 종료가 반 년을 지나니 이제는 노래가사들도 가물가물하다는데, 봄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기전에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주어야 할 텐데....
마음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강사들을 섭외해서 가주고 싶지만, 예술강사들도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 지원금이 있어야 파견할 수가 있다.
전국의 교정시설의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중앙기관이 많이 바쁜 모양인지, 아니면 법무부와의 연계단계에서 뭔가 늦어지는지, 아니면 교육정책이 변경이 되었는지, 작년이면미 추진기관 선정이 끝나고 교육이 추진될 시점이다. 그러나 아직 공지조차 없고,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올해 봄은 참 빨리 와서 숨 고르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2009.03.18 15:35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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