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줄 테니, 애 좀 낳아주라?

둘째를 고민하는 아빠가 생각하는 출산장려정책

등록 2009.03.19 15:27수정 2009.03.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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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문제에 대한 빈약한 사회적 인식

 

오전에 같이 일하는 박 선생이 신문을 보다가 큰소리로 나에게 읽어준다.

 

"'전북 출산장려금 지자체마다 천차만별' 진안군 1300만원이네. 좋겠네."

"네…에? 난 120만원 받았는데."

"여기 나와 있구먼. 진안군이 많이 주네"

"어디요"

 

기사를 보니 정말 그랬다. 남원이 1700만원으로 수위를 달리고 무주, 진안이 1600만원, 1300만원으로 1000만 원대를 이루었다. "어떻게 1300만원이지?" 고장에 살고 있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 아래 주석이 보인다. '지원액=첫째~다섯째까지의 합계' 실소가 나왔다. "그래, 첫째 120만원, 둘째 120만원, 셋째부터 360만원으로 3명이면 1320이 정확하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요즘 애 다섯 낳는 집이 있나. 내 주변에는 눈 씻고 봐도 없던데'였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OECD 최저인 1.13명이라고 난리다. 이런 상황에 둘째도 아니고 다섯째라니. 너무 앞서가신 것 아닌가. 게다가 아이는 계속 자라고 다섯째를 낳으려면 매우 건강하고 부지런한(?) 부부라도 최소 6~7년은 잡아야 하는 기간이다.

 

또 현실과 동떨어진 자료를 '미끼'삼아 '낚시질'하는 기자가 미워졌다. 나도 허망했지만 분명 아이를 준비하는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고, 혹시 이걸 잘못 보고 자신의 지역에서 지원을 바라고 있는 많은 임산부들이 허탈해 하지는 않을까 생각되었다.

 

둘째 갖기가 제일 힘들다

 

주민등록상 인구 3만명(2007년)에서 2만7000명으로 줄어버린(2008년) 지자체 진안에 들어와서 결혼하고, 애도 낳았다. 먼저 들어와서 애를 낳은 선배들은 받지 못한 혜택을 받았다. 출산장려금. 생각도 못했던 돈이라 아이가 돈을 벌어준다며 좋아했다. 10만원씩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니 좀 모자라긴 해도 기저귀 값이라도 할 수 있어 좋았다.120만원 지원. 늘어가는 비용에 애를 가지기가 두려운 실정이지만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와 같이 지낼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 키우는 부모면 누구나 생각하는 문제일 것이다.

 

며칠 전 일이다. 아내가 혼자 노는 아이를 보면서 나에게 말한다.

 

"낳을까?"

"글쎄, 괜찮을까?"

"좀 부담스럽긴 하지"

"부담가지지 말지. 케세라 세라"

 

그리고 말이 없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쉴 새 없이 종알대는 아들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린 낳고 싶어 하는걸까. 아니면 낳을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주변 친구들의 경우를 봐도 둘째 가지기를 힘들어하는 가정이 많다. 둘을 낳으면 셋이 되고 넷이 되는 것은 오히려 쉬운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자체 인구늘리기정책의 세밀한 검토 필요

 

출산장려금에 관한 기사를 조회해 보면, 전국에서 출산장려금을 제일 화끈하게 주는 곳은 경북 안동이다. 물론 쉬운 조건은 아니다. 다섯째, 행여나(?) 다섯째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의 양육비만큼은 국가가 거의 책임지는 셈이 된다. 무려 월 100만원을 지원해 준다니. 그것도 2년 동안이다. 잠시지만 빨리 넷 낳고 그곳으로 이사 가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니, 입양은 어떨까. 입양은 해당이 안 될 거다. 아마. 그리고 나서 나는 허탈해졌다. 지금 통계를 보면 결혼한 부부가 한명을 겨우 낳고 두 명을 낳지 않는 집이 훨씬 많다는 것인데, 왜 행정은 '다섯'으로 유혹하는가. 이거 보통 핸드폰으로 다짜고자 하는 '당첨되셨습니다'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마케팅방식과 흡사한 것은 아닌가.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지자체 재원을 위한 인구 늘리기에서 출발하는 출산지원책이 푼돈을 던져주며 생색내는 모양이 되어서는 된다. 아닌 말로 1년에 100만원 가지고 애를 키우라고 하면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그리고 순전히 내 입장이긴 하지만, 둘째부터 화끈하게 지원하는 발상은 무리인가. 통계가 1.1명이면 최소한 2를 고려한 정책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지면, 아마 나부터도 당장 아이를 낳는 상상이 조금은 행복해 질것 같은데. 적어도 분유 값, 기저귀 값은 걱정하지 않을 거 아냐. 그렇지? 여보.

2009.03.19 15:27ⓒ 2009 OhmyNews
#출산 #출산지원금 #출산보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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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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