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매일 아침, 하루도 안 빼고 108배 절을 한다. 누구를 숭배해서 하는 절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참회하는 절이다.
권영숙
"엄마는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두려워?"
"음… 욕심.""에이? 욕심은 누구나 있는 거야. 아빠도 있고, 나도 있고, 언니도 있고, 이 세상 사람 다 있어.""음… 그럼, 지나친 욕심."난 정말 내 욕심이 두렵다. 왜냐하면 내 욕심대로 하려고 했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 뜻대로 돼야 하고, 자식도 내 뜻대로 돼야 하고, 돈도 내 뜻대로 잘 벌려야 하고, 어느 모임에서건 내 주장이 관철돼야 하고, 심지어 대통령도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늘 마음 속으로 '내 뜻대로 이루어지리라'를 외치고 살았다. 하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당연 진리. 그것도 모르고, 난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내고, 짜증내고, 상대를 원망했으니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했겠나.
난 내 뜻대로 안 되면 일단 외면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런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 고집도 세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양보해서 같이 하기보다 안 해버리거나 외면했다. 아이들의 속성은 어른을 그대로 따라 배운다더니 참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한 종교단체에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4년째 매일 아침, 하루도 안 빼고 108배 절을 한다. 누구를 숭배해서 하는 절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참회하는 절이다. 사람이 자기 주장을 할 때는 누워 있던 사람은 일어나 앉게 되고, 앉아 있던 사람은 서게 되고, 서 있던 사람은 고개를 치켜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낮출 때 서 있던 사람은 앉게 되고, 앉았던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되고, 무릎 꿇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게 된다. 어제 하루를 살면서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상대를 원망하고 화낸 내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의 처지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아, 당신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 당신이 그래서 화를 냈군요. 저는 제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당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어느 날은 상대가 절대 이해되지 않아 이를 악다문다. 또 어떤 날은 너무 억울해서 절도 못하고 엎드려 울기만 한다. 어떤 사람은 하루만에 이해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몇 년 만에 이해되기도 한다.
상대가 옳고 내가 틀렸으니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에서 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의 마음을 내는 것이 참회임을 알았을 때 난 자유로워졌다. 상대가 바뀌어야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전제에서 놓여나 상대가 바뀌지 않아도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 버리니 어른이 되고, 주인된 느낌이다.
"엄마, 진작에 마음공부 하지 그랬어." 내 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까칠한 엄마가 많이 바뀌었단다. 농담 잘하고, 장난 잘 치던 예전의 엄마로 돌아왔단다. 현재 내 상황은 과거와 비교해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벌어놓은 돈은 별로 없고, 빚내서 장만한 집은 팔아도 빚도 다 못 갚고, 남편은 여전히 치료 중이고,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훨씬 내 자신이 편안해졌다.
불쑥 우울이 엄습할 때, 토닥토닥 "괜찮아""한길엄마는 좋은 일만 있나봐.""왜요?""늘 웃잖아, 편안해 보여. 한번도 찡그리는 걸 못 봤어."우리 동네 14억 아파트를 가진 한 분이 주식이 폭락해 손해를 많이 봤다며 내게 죽을 상을 하고 왔다. 북한동포 돕기 모금함을 보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난 1000원 한 장도 저기에 넣을 수가 없어. 주식해서 쫄딱 망했어. 위로하려고 하지 마.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할 수가 없어."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그분의 절망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난 그분의 말을 충분히 들어만 줬다. 그날, 난 내 자신에게 고마움의 일기를 썼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내 마음이 고맙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르쳐 준 스승님이 고맙고, 세상을 향해 왜 나누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 제3세계와 북한동포에게 고맙고, 나눔의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고, 아픔을 잘 견뎌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 고맙다고.
이 세상에 고맙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다. 나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다고 여기면 늘 부족함에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이 되지만 두 눈이 있어 볼 수 있어 행복하고, 두 다리가 있어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두 손이 있어 집을 수 있어 행복하고, 두 귀가 있어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자가 된다. -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법문 중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건 내 마음이 짓는다. 한 생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까? 그렇진 않다. 여전히 내 안에 두려움과 욕심과 불안이 또아리를 틀고 있고, 불쑥불쑥 못 견디게 두려움을 동반한 눈물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런 나를 토닥여 준다. 두려워하는 나를 꼴보기 싫어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바라봐 준다.
'그래 니 마음도 아프구나. 그래 불안하지, 왜 불안하지 않겠니. 괜찮다. 다 괜찮다.'남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내가 나를 죽이는 것도 살인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줄 때, 나는 더 힘을 내서 오늘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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