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로마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을 새겨라"

[리뷰]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

등록 2009.03.22 11:42수정 2009.03.22 11:42
0
원고료로 응원
a 책겉그림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

책겉그림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 ⓒ 생각의 나무

올 초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28살의 젊은 후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후배는 나와 10살 차이가 난다. 고향은 같은 곳이지만 함께 오래도록 산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이후 10년 넘게 못 본 터라, 낯선 면도 없지 않았다.

점심을 같이 먹고 이런 저런 세월들을 이야기했다. 녀석은 군에서 장교 복역을 하다 이제 갓 전역을 한 터였다. 뜻한 바가 있어서 2년을 목표로 사법시험에 매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 보니, 나와는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뭐랄까? 녀석의 생각이 너무 늙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녀석은 그저 주어진 조직의 합리적인 기능만을 바라보려고 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생각보다는 그저 세계화의 추세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녀석과 헤어진 후 나는 한 참 동안이나 나를 들여다봤다. 나는 과연 젊은이인가? 생물학적인 나이로는 젊은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늙은이도 아니다. 꼭 중간지대에 속한 기분이다. 그래도 아이들 셋을 두고 있는 삶 속에서 항상 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젊음의 탄생> 첫 장에 나오는 경구이다. 참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격언이 아닐까 싶었다. 마치 여행에 대해 누군가 "여행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옮기는 것이다"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9개의 매직 카드를 통해 젊은이들의 지성을 업그레이드 하게 도와준다. 이를테면 '카니자 삼각형'에서 시작하여, '물음느낌표', '개미의 동선', '오리-토끼', '매시 업', '연필의 여섯모꼴', '빈칸 메우기', '지(知)의 피라미드', 그리고 '둥근 별 뿔난 별' 등의 9개 매직 카드를 통해 창조적인 발상과 역발상 등 다양하고 참신한 내용들을 정리해 놓고 있다.


그 중 내 뇌리를 크게 때렸던 것은 미국의 대통령과 우리나라 대통령에 관한 부분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우리나라 언론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세계 모든 언론들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고 대서특필한 바 있다.

이어령 교수는 그런 관점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른바 흑 아니면 백이라는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오마바는 백인의 어머니와 아프리카 케냐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기 때문이란다. 그의 피에는 백인과 흑인의 두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예 한쪽을 무시하고 한쪽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럴듯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다중복합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로 세상을 보려는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어서 문제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관점이 그렇고, 정치판이 세상을 바라보는 대립각도 그렇다.

한편 우리나라의 이명박 대통령에 관해서는 '독창'적인 '물결'이라는 빈칸 메우기를 주문한 게 너무 신선했다. 이어령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불의 정권이었다면, 이명박 정부는 청계천 복원과 대운하 건설로 끝장을 보려는 물의 정권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동행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인 '천천히 서둘러라'를 새기도록 주문했다. 그만큼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통치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울러 '청계천 새물 맞이'라는 구호도 '청계천 새물결 맞이'로 바꿀 때에라야 독창적인 대통령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이 밖에도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서구적 양자택일의 방식에서 이것도 저것도의 동양적 양자병합의식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생각을 비롯해, 기성관념에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젊은이의 모든 지적활동의 출발점이라는 것, 삶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빈칸들이 있기에 젊은이들의 삶은 운명의 실로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 등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부분이지 않나 싶다.

아무쪼록 196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어 냈던 이어령 교수의 번뜩이는 지혜들이 이 책에는 색다른 카드로 그려져 있으니, 이 세대의 젊은이들이 참된 젊음을 품을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이다.

젊음의 탄생

이어령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3


#이어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