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은 어떠한 의미로든 정당화 될 수 없다

[교단일기①] 사랑의 매

등록 2009.03.23 21:02수정 2009.03.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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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체육시간 아이들이 긴줄넘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체육시간 아이들이 긴줄넘기를 하고 있다.박종국

학창시절, 하찮은 일로 체벌을 당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하교 무렵 친구들이랑 정글짐 위에서 놀다가 장난으로 친구를 슬쩍 밀어뜨린 게 화근이었다. 순식간에 땅바닥에 떨어진 친구의 무르팍에 굵은 피가 솟구쳤다. 급이 났다.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있다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채 집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어깻죽지를 푹 늘어뜨린 채 겨우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담인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뺨을 후려쳤다.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었다. 머리통도 몇 대 쥐어박혔다. 서른 초입의 담임은 성질이 마른 장작 같았다. 또 걸핏하면 매를 들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수업을 시작하며 선생님은 웃음을 띠었지만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착 가라앉아버렸다. 선생님의 느닷없는 폭력에 너무 놀란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 결코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또렷하게 남아있다.

치유되지 않은 유년의 상처

오늘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이번 학기부터 교과전담(체육, 실과, 한문)을 맡고 있기에 2학년 꼬맹이들부터 6학년 아이들까지 전교생을 두루 만나고 있다. 단출하게 한 반을 담임할 때보다 자유롭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다른 설렘이 있다. 아이들, 얼굴 생김이 다르듯이 행동 또한 다 다르다. 개중에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곰살궂은 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4교시 체육 시간이었다. 지난주 '움직임 익히기'에 이어 운동장을 세 바퀴 돌면서 몸을 풀었다. 근데 두 녀석이 허튼짓을 했다. 못 본 척 넘겼다. 본 운동으로 '여러 가지 움직임 익히기'를 하는데도 여전히 엉뚱한 짓이다. 그래서 불러 세웠다.

녀석들 태도가 너무나 천연덕스럽다.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했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 숫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까지 괴롭혀댄다. 운동장 수업은 교실 수업과 달리 자칫하면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일쑤다.


"야, 너희 왜 그래. 그만두지 못하겠니?"
"…"
"한 번만 더 그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알았어?"
"…"

몇 번을 그만두라고 다독였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하던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화딱지가 돋았다(머리꼭지가 돌았다는 표현이 옳겠다). 울컥한 감정이 앞섰다. 하마터면 손찌검을 할 뻔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우락부락해지는 내 표정에 뜨악했는지 행동을 멈췄다. 그 순간 불현듯이 삼십여 년 전의 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나도 똑같은 선생이란 말이냐 싶어 좁쌀 같은 내 소가지가 미욱스러웠다.


교사로서 이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경우는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갖은 형태의 체벌이 '단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다. 그렇지만 체벌은 어떠한 의미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 학교에서 자행되는 학생 체벌은 결국 모든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놓고 보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체벌은 크게 두 가지다. 몸에 직접 가해지는 체벌은 학생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직접적인 고통을 준다. 반면에 훈육과 훈계의 경우 타이르거나 꾸짖는 수준을 넘어 아이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로 더 큰 상처를 준다. 즉 체벌보다 '교사의 훈계'가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고, 개인감정을 띤 '언어폭력'으로 이어질 경우 스트레스나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은 물론, 그 상처는 체벌보다 한층 더 심각한 고통으로 두고두고 남는다.
  
체벌은 어떠한 의미로든 정당화될 수 없어

줄당기기 체육시간, 아이들이 봄햇살을 당기고 있다.
줄당기기체육시간, 아이들이 봄햇살을 당기고 있다.박종국

체벌은 공격적인 아이를 만든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전미빈곤아동센터 연구원인 거스프(Gershoff)에 따르면, 체벌을 가할 경우 아이들은 당장에 고분고분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체벌은 '즉각적인 순종'이라는 '단기적인 효과'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부산청년정보문화공동체의 청소년 인권평화센터가 부산지역 청소년(903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인권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부산지역 청소년 대부분은 학교에서 어느 정도 체벌이 필요하겠지만, 교사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체벌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체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47명(71.7%)인 반면, '없어야 한다'는 65명(7.2%)으로 청소년 대부분이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사들이 학생을 체벌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습관적' 217명(24.0%), '이유 없이' 213명(23.6%) 등인 반면, '사랑의 매'라는 답은 87명(9.6%)에 불과 했다. 또 체벌을 당했을 때 느낌은 '반항하고 싶었다' 222명(24.6%),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102명(11.3%) 순으로 나타났고, '잘못을 반성했다'는 57명(6.3%) 뿐이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64.7%는 교사로부터 학생 편애의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으며, 13.3%는 성적 모욕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청소년들에게 학교의 의미는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곳'(33.6%)이거나, '남들이 가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가는 곳'(33.4%)이라는 응답이 67%에 이르렀다.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체벌을 당하는 이유는 '말대꾸'(11.6%), '생활태도 나태'(10.2%), '학업성적 불량'(9.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체벌에 따른 직접적인 당사자들의 의견이 이와 같은데도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체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체벌의 명분이 분명하지 않고, 체벌에 감정이 곁들여져 교육 효과에 의문을 갖게 한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체벌의 일차적 목적이 '교육'보다는 '통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 교육환경에서 절대다수의 아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때리는 것' 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체벌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교육심리학에서도 벌은 무엇을 학습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체벌이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인성교육에 올바른 방법이 아님을 뜻한다.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현재와 같은 학교 체제 속에서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 까? 혹은 재미없는 교육내용 때문에 학습의욕을 상실한 아이들이 헤어날 수 없는 고통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것 하나 현재의 학교 교육 위기 상황을 치유할 만한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도 과연 회초리를 든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까?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좋아할까? 동창회 커뮤니티사이트 '다모임'이 회원(1만10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5%가 학생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선생님을 가장 좋아하는 스승의 모습으로 꼽았다. 또 유머 감각이 있고, 재미있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응답이 13.9%였으며,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 공평한 선생님이 13.4%, 실력 있는 선생님이 6.3%였고, 젊고 예쁜 선생님이 좋다는 응답도 5.9%에 달했다.

반면 가장 싫어하는 선생님으로는 차별대우를 하는 선생님(42.2%),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선생님(38.7%), 실력 없는 선생님(8.8%), 체벌이 심한 선생님(8.4%) 순으로 나타났다. 여태껏 체벌을 하지 않는 교사로서 소임에 충실하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정작 오늘은 개구쟁이 아이들의 하찮은 행동하나를 곱게 보아주지 못하고 생뚱맞게 얼굴을 붉힌 나 자신이 참 낯부끄러운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 뉴스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U포터 뉴스에도 보냅니다.
#체벌 #사랑의 매 #생활지도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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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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