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마니또 사랑합니다

등록 2009.03.24 08:59수정 2009.03.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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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얼마나 좋으면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 믿을만한 좋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친구 한 사람으로 하여 인생이 전혀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내 조카는 3학년 때 짝과 사랑을 키워 이번 주말에 결혼식을 올렸다. 청첩장을 받아보니 그 풋풋함에 내 가슴이 설렜다.

 

초등학교 3학년 한 반에서 공부한 소꿉친구가

시간이 흘러 어느 새 연인이 되었습니다.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던 그날 약속했습니다.

처음 만난 그 설렘과 순수한 마음으로 평생을 함께 하자고....

 

그러나 아직은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날마다 싸우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교사나 아이들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 매를 들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적으로 매는 필요하다, 매는 비교육적이다' 찬반이 팽팽하지만 나는 매 없이 교육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그러니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말이 충분히 통하는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고 싶지 않아서다.

 

날마다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울리는 아이가 있다. 그 한 아이로 하여 교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태권도를 해서 힘도 좋은 데다 사교성까지 좋아 아무도 그 애를 어떻게 해보지 못한다. 이 아이를 어찌 할 것인가 고민이 많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마니또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의 비밀친구를 하면서 그 친구를 위해 기도도 해주고, 작은 선물도 주면서 일주일 동안 그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 마니또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설명을 해주고 마니또 게임을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에 단체에서 성인들끼리 했던 게임이라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별 기대는 없었으나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날마다 한 교실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도록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만날 싸우고, 울고, 이르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를 도와주고 위해주며 잘 지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이 선생님도 참여하기를 원해서 나도 함께 했다.

 

자기소개,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 받고 싶은 선물(천 원 미만), 내 마니또에게 하고 싶은 말, 네 가지를 써서 접은 종이를 돌아가면서 뽑게 했다. 그런 다음 내가 뽑은 그 아이를 위해서 일 주일 동안 아무도 모르게 천사노릇을 해주도록 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대 내게 눈길을 돌릴 때 내 마음 흐뭇하고 즐거워

언젠가 그대이름 밝히리 지금은 누구라고 말할 수 없어-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나는 내 마니또 좋아하지요.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런데 시작한 다음날부터 놀랍게도 교실 분위기가 알아보게 바뀌었다. 친구를 때리고 울리는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다. 이르는 아이도 물론 없어졌다. 그렇게 되니 하루 생활이 예전과 달리 훨씬 편안하고 부드러워졌다.

 

두 아이의 마니또 선물을 보았다. 한 아이의 선물은 학을 가득 담은 항아리였다. 밤새 접었는지 수십 마리였다. 그 안에는 쪽지편지도 여러 장 들어있었다. 양해를 구해서 읽어보았다. 모두 짧은, 그러나 힘을 주는 문장들이었다.

 

힘내. 울지 마. 넌 할 수 있어. 용기를 잃지 마. 꽃보다 아름다운 네 마음. 즐거운 하루 보내. 해처럼 밝게 웃어. 등

 

8장의 쪽지편지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받은 아이보다도 내게 더 깊은 감동이 일었다. 학을 받은 아이는 잘 우는 아이였는데 하루 종일 밝은 얼굴이었다.

 

또 한 아이는 학용품을 선물로 받았다. 필통과 종합문구세트. 부모님이 특별한 날에나 사줄만한 큰 선물이었다. 받고 싶은 선물에 그냥 학용품이라고 썼는데 마니또가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그 아이 주위에 몰렸다.

 

학급조회 시간에 진행자가 그 아이에게 마니또 자랑 한마디 하라고 하니까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감동이 너무 커서 아직은 표현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그 아이에게는 이런 선물 받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천원 미만으로 정한 선물이 너무 커서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그 아이의 처지를 잘 알고 마니또 역할을 해준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마니또였다. 이런 배려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의 마니또가 누군지 무척 궁금하다. 그러나 발표할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쩌다가 혹시 알게 되어도 모른 체 해야 한다는 규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조했다.

 

내일은 또 어떤 마니또 이야기들이 나를 감동시킬까.

2009.03.24 08:59 ⓒ 2009 OhmyNews
#마니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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