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잠재적 예술가다

등록 2009.03.24 10:24수정 2009.03.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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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이리의 마을 구성원들은 2가지 속성의 사람들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그 한 그룹은 직접 창작에 종사하시는 분들이고 또 다른 그룹은 그 창작자들의 결과물을 대중과 만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예술경영자'분들입니다.

 

이 마을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헤이리 마을만들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초지일관 변함없는 생각은 이 마을이 예술과 문화의 생생한 '판'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내의 여러 개인뮤지엄이나 갤러리에서 연중 공을 들이는 상설전이나 기획전 외에도 매년 헤이리'판'페스티벌같은 축제를 열어 공연과 전시, 예술과 문화적 담론이 질펀하게 펼쳐지도록 애썼습니다.

 

헤이리에서 연중 끝이지 않는 각 개별공간의 전시와 다양한 예술행사가 집적된 축제는 모든 예술 애호가들을 위한 관객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이리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을 위해서는 제가 작년에 책임을 넘겨받게 된 '작가모임'이 서로의 창작을 비판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모임은 전업 작가들의 집합체인 만큼 마을내의 다른 주민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마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사강좌나 매주 열리는 다채로운 전시 오프닝에 참여하면서 헤이리 마을의 대다수 주민들이 프로나 전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예술 활동의 참여에 얼마나 열의가 대단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창작적 소양을 가졌으므로 '모든 사람은 잠재적 예술가다'고 여기는 저는 헤이리 모든 주민들이 창작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a  헤이리 주민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전문가를 모셔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미술강좌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헤이리 주민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전문가를 모셔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미술강좌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 주민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전문가를 모셔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미술강좌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 이웃들 중에는 청소년시절에 잠시 꿈꾸었다가 접어두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는 분도 계시고 시를 다시 쓰는 분도 계십니다. 어쩔 수 없이 생업으로 다른 길을 택해야했던 사람들도 평소 가슴에 담아두었던 '가지 못한 그 길'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다면 일상이 더욱 새로운 의욕으로 북받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겠다 여겼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 마을의 자치위원회 회의에서 미술, 음악, 문학, 영상 등 각 그룹별 창작자 모임을 구성하고 모든 마을사람들이 전공과 경력에 관계없이 현재의 열망에 따라 희망 그룹에 소속될 수 있도록 하고 그 그룹의 활동을 지원하도록 발의하였습니다.

 

이 제안이 마을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헤이리사람들'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되고 미술, 음악, 영상, 문학, 연극, 무용, 건축, 전통 등 8개 분야로 대별된 창작자 소모임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헤이리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자유의지에 따라 원하는 그룹에 복수로 소속될 수 있으며 그 소모임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헤이리 이웃의 화가와 소설가, 감독과 음악가 등 전업작가분들이 서로 품을 지고 갚는 방식으로 해당 소그룹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a  헤이리 마을 사람들은 헤이리내에 각 개별 건축을 진행하기전, 주민들의 회의나 강좌, 파티 등 다양한 주민들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기위한 다목적홀인 '커뮤니티하우스'를 제일 먼저 지었습니다.  이 공간을 활용하여 헤이리 외부의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도슨트와 큐레이터 전문강좌를 비롯한 음악과 영화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는 '헤이리문화아카데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헤이리 마을 사람들은 헤이리내에 각 개별 건축을 진행하기전, 주민들의 회의나 강좌, 파티 등 다양한 주민들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기위한 다목적홀인 '커뮤니티하우스'를 제일 먼저 지었습니다. 이 공간을 활용하여 헤이리 외부의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도슨트와 큐레이터 전문강좌를 비롯한 음악과 영화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는 '헤이리문화아카데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 마을 사람들은 헤이리내에 각 개별 건축을 진행하기전, 주민들의 회의나 강좌, 파티 등 다양한 주민들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기위한 다목적홀인 '커뮤니티하우스'를 제일 먼저 지었습니다. 이 공간을 활용하여 헤이리 외부의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도슨트와 큐레이터 전문강좌를 비롯한 음악과 영화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는 '헤이리문화아카데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 이안수

2.

크레타의 김기호 작가께서 책임을 맡게 된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에서는 회원 간에 머리를 맞대고 향후 프로작가와 아마추어간의 소통을 더욱 빈번히 하고 강의와 실습 등의 작가교실과 미술관 나들이 등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 미술분과의 첫 번째 미술관나들이가 지난 3월 5일에 있었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분과의 회원 19분이 헤이리커뮤니티하우스로 모였습니다.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 관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저의 첫 헤이리 밖 나들이기도 했습니다. 포옹으로 저를 반기는 이웃들을 대하고 저는 마침내 안전한 항구로 되돌아왔다는 안도가 들었습니다.

 

몇 대의 차를 카풀로 나누어 타고 일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는 미술관을 오가는 이 시간,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가면서 피사로에 대한 얘기도 하고, 이웃 미술평론가에게 인상파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오는 날의 미술관 나들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 또 어디 있을까요. 헤이리 마을버스하나 구입합시다. 그래서 한 달에 몇번일지 모를 미술관나들이도 함께 버스로 이동하면서 오가는 시간에 강의도 듣고 이웃들의 대소사 얘기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각자 승용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아요. 이 헤이리마을버스는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내를 바꾸면 헤이리 축제 때는 체험공간과 무대로,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경기도 관내의 초·중·고등학교나 이웃마을을 순회하면서 헤이리회원들의 자발적인 나눔으로 '찾아가는 미술관' 혹은 '움직이는 강의실'같은 용도로 활용하여 실기나 발상의 강의를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이 찾아와서 강의로 그 재능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학생들이나 이웃마을 분들이 얼마나 반길까요. 버스는 십시일반으로 몇 년 내에 살 수 있다하더라도 그 운영비가 문제일 터입니다. 그중에서도 운전기사를 채용한다면 결국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될 터이니 김기호 선생님과 저도, 그리고 정건수 선생님도 1종대형면허를 따는 겁니다. 그리고 교대로 운전봉사를 하구요."

 

저는 차속에서 즐거운 상상을 얘기했습니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지니까요.

 

a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 ⓒ 이안수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 ⓒ 이안수

 

3.

아람미술관에 도착하자 미리 예약한 도슨트께서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Camille Pissarro : Family and Friends'전의 전시배경과 작품, 인상파와 그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내의 애슈몰린 미술관The Ashmolean Museum의 업그레이드 공사를 틈타서 이 전시를 유치한 발 빠른 전시기획자 덕분에 직항으로도 12시간이 걸릴 곳을 가지 않아도 피사로와 코로, 도비니와 밀레, 마네와 르느와르를 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시장을 돌고나면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친근해서 '당연한' 화폭 속 풍경의 '빛'과 '그림자'의 묘사조차도 불과 140년전 이 화가들의 벽을 깨는 노력의 결과였음을 알게 됩니다.

 

야수파라는 호칭이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싸잡아 '야수들'이라 비난한데서 비롯되었듯, 인상파Impressionism란 호칭도 당시 모네의 '해돋이'를 본 한 기자의 '한 순간의 인상을 거충거충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야유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아카데미즘academism 주류화가들의 무대였던 '살롱전'에서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실내 스튜디오에서 신화와 전설을 옮기는 기성의 전통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874년의 제1회 인상파전은 비주류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시대는 늘 기성을 따르지 않는 자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1886년까지 8회의 인상파전이 개최되는 동안 분란과 다툼, 갈등과 반목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신념을 지킨 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과 투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피사로와 인상파화가들'전을 통해 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a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에서 담당 도슨트의 설명과 안내로 더 깊이 있는 관람이 되었습니다.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에서 담당 도슨트의 설명과 안내로 더 깊이 있는 관람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 회원들의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관람 나들이에서 담당 도슨트의 설명과 안내로 더 깊이 있는 관람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4.

김기호 선생님 차에 동승했던 우리 일행 중 송효섭 교수님은 야간의 강의를 위해 대학으로 늦은 출근을 하시고 정건수 선생님은 헤이리로 돌아오는 자유로변 휴게소에서 얼큰한 월남국수 세 그릇을 주문하시고 김 선생님과 저를 위해 한사코 지갑을 열었습니다. 김기호 선생님은 자유로를 북진하는 중에도 '헤이리사람들 | 미술분과'회원들의 다음 프로그램을 위해 머릿속을 해찰하기에 여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분야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은 본인의 특별한 노력뿐만 아니라 그를 도운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제공된 환경의 역할에 힘입은 바의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 '예술마을'로서 특성화되고 차별화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헤이리에는 창작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스페셜리스트들이 많습니다. 이 전문성을 타 장르의 이웃끼리 서로 토론하고 협력하여 그 전문성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 헤이리 주민들의 내부적인 당면한 숙제라면 이미 확보된 전문성을 헤이리 밖으로 기부하는 나눔의 전통을 세우는 것이 대외적인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헤이리는 주민들의 안락한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내부 작가들의 도전받는 서식처이며 예술에 목마른 헤이리 밖 모든 사람들이 창의력을 자극받고 충전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2009.03.24 10:24ⓒ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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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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