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그만둔 여동생, 안쓰러워

첫 직장 그만둔 여동생, 그저 앞날이 잘되길 바랄 뿐

등록 2009.03.28 15:33수정 2009.03.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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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 밤 11시 30분 즈음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을 하기 위해서 저녁에 미리 취침했는데 주방에서 여동생과 엄마가 수다 떠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여동생이 밤 10시에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매일마다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두 여자 모두 목소리가 너무 크다 보니 취침하는 저를 항상 깨우곤 했죠. 특히 이른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을 하는 경우가 있을 때는 수다소리 때문에 취침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어제는 수다소리가 정말 심하게 들렸습니다. 밤 9시 30분에 '오늘도 그 소리 때문에 못 자는 건 아니겠지?'라는 속마음으로 '잠에 깊게 들기 위해' 책을 읽은 뒤에 취침했는데 이번에도 깨버린 것이죠. 여동생과 엄마의 떠드는 목소리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터라 마음속으로 힘들었죠.

 

그런데 이날 여동생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힘이 넘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직장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엄마와 대화하며 우울함을 털어내고자 했던 그동안과는 다르게 즐겁게 수다를 떨더군요. 알고 봤더니 어제부로 직장을 그만둬서 엄마와 함께 좋아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 달 전부터 엄마에게 직장 그만두겠다며 재차 말했던 것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죠. 여동생은 논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강사로 일하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두기를 절실히 원했습니다.

 

여동생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인 작년 2학기에 논술학원에 취직했습니다. 전문대 시절 장학생 출신이라는 것과 관련 자격증 소지자라는 장점이 플러스가 되어 취업에 성공했는데 생애 처음 취업원서를 지원해서 단번에 합격한 것이죠. 하지만 21세의 여자가 취업전선에서 살아남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입사하자마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억눌림을 느끼더니 상사가 평소에 까다롭게 굴었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직원들이 그만두는 경우가 빈번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21세의 여자가 견디기에는' 많이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힘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의자에 편하게 앉으며 교육을 받는 입장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 학원에서 오랜 시간 동안 무거운 구두를 신으며 항상 서있는 자세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신분으로 바뀌다보니 적응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것은 둘째치고 짓궂은 아이들과 상대하다 보니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어떤 날에는 한 남자아이가 모 여자 가수의 히트곡이기도 했던 '유고걸(You go girl)'을 외치며 자신을 부르는 등 무례하게 굴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불경기라 임금까지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할 수 밖에 없었죠(임금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직장은 집에서 상당히 멀은 곳에 위치했던 터라 출퇴근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입장에서는 정말 어려운 도전이었던 거죠.

 

엄마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동생이 직장에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집안 빚을 갚는 데 톡톡한 효과를 봤지만 이제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마음속 기분이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 여동생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갖은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 그만두는 것을 허락했지요. 그래서 어제 여동생과 수다를 떨면서 겉으로 반기면서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여동생의 계획은 며칠 쉬면서 충전하다가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면 학교 다니면서 1년 넘게 일한 적이 있었던 편의점 '알바'를 다시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평소에 즐기던 소설을 쓰면서 '등단'에 대한 꿈을 키울 거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꿈과 목표 그리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여동생이 선택한 길이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직장을 그만둔 여동생이 안쓰럽더군요. 요즘 같은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다시 자리를 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앞날에 사회에서 확고한 위치에 오르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어서였죠. 제가 여러번 설득해봤자 "오빠, 그 소리 그만해"라고 단번에 끊는 등 그만두겠다는 의지가 확고했지요. 물론 자신의 진로는 어디까지나 여동생의 몫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쩔수 없이 존중해야겠지만 그 직장이 자신에게 자신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안타까워 보였던 것은(저의 입장에서) 동생의 목표가 '등단'이라는 것입니다. 등단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제가 알기로는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현실 속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더군요. 워낙 글 쓰는 것을 즐기고 흥미롭게 여기는 성향이라서 등단을 꿈꾸고 있겠지만 등단을 하더라도 성공적인 위치에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직장이라는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평소에 본인이 바라던 꿈이 있다보니 그것을 꺾기가 쉽지 않더군요. 제가 모험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성향이다 보니 마음 속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여동생이 앞으로 하는 일들이 그저 잘 되길, 그토록 바라던 등단이 꼭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죠. 어제 여동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수고했다'는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충분히 쉬면서 그동안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풀고 다시 일어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os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3.28 15:3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os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직장 #취업 #여동생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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