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이 아양을 떨다

[윤희경의 山村日記] 꽃샘추위에 꽃들이 화들짝 놀라

등록 2009.03.29 11:53수정 2009.03.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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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 바람꽃
변산 바람꽃윤희경
변산 바람꽃 ⓒ 윤희경

 

4월이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봄꽃 출석부'를 들고 봄이 오는 정원을 돌아봅니다.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생명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어둡고 썰렁한 계절을 건너왔으련만 들꽃들은 말이 없습니다. 말을 걸어 이름을 부를 때마다 겨우 고개를 내밀며 가녀린 몸짓으로 다가설 뿐입니다.

 

벌써 봄 마중을 끝내고 저만치 물러나 있는 복수초, 남쪽 해풍을 몰고 와 가던 길 멈추고 바람으로 남아있는 변산 바람꽃, 이제 막 꽃물을 열기 시작한 수선화, 노루귀,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상사초 등등…. 백여 식구도 넘는 대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정원을 한 바퀴 돌자면 한참이나 걸릴 듯싶습니다.

 

 설중매
설중매윤희경
설중매 ⓒ 윤희경

3월의 끝자락, 불쑥불쑥 솟아나는 생명들이 작년 늦가을 헤어질 때처럼 한 명의 결석도 없이 모두 출석을 하고 있는 지 안부를 묻습니다. 며칠 전부터 산 동백, 산수유, 목련들도 다투어 피어나 가슴이 둥둥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나 꽃샘추위의 시샘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낮에 별안간 비바람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이 무슨 심통이란 말인가, 쌀쌀맞고 얄밉다고나할까. 이래서 봄날을 심술꾸러기라 하는 가 봅니다. 화투연(花妬娟; 꽃이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떤다) 즉 꽃샘바람이란 말이 실감나는 오늘입니다.

 

 산수유
산수유윤희경
산수유 ⓒ 윤희경

1월을 '해오름달', 2월을 '시샘달', 3월을 '물오름달', 4월을 '잎새달'이라고 한다던가. 요새처럼 일교차가 심하고 일기가 변덕스러워서야 3월을 시샘달이라 해야 될 것만 같습니다. 예부터 '꽃샘추위에 거지가 얼어 죽는다.' '꽃샘 잎샘바람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다 봄이 왔다고 수선을 떨며 방심하지 말고 몸을 조신하라는 암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동백
산동백윤희경
산동백 ⓒ 윤희경

꽃샘추위, 잎샘바람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습니다. 추워도 춥지 않고 바람이 살결을 파고들어도 헤살굽지가 않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혼자 이리 꽃샘추위와 잎샘바람을 좋아하고 방정을 떨어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꿩..꿩..끌끄르릉….'

무슨 새의 소리인지 눈치를 채셨나요. 요새 아침마다 새벽 산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뚫고 이름 모를 무덤가에 내려앉는 장끼의 울음소리입니다. 맑은 소리가 얼마나 정갈한지 아침잠이 금세 날아가 버립니다. 소리가 들려온다보단 차라리 귀 가까이 굴러오는 물방울 소리 같습니다.

 

퇴원한 지 얼마 안 돼 어칠비칠 대니까 팔다리에 힘을 불어넣어주려는 모양입니다. 혼란스러웠던 응급병동을 생각하면 사뭇 다른 세상으로 날아온 기분입니다. 꿩 소리를 듣고 있으면 흥김 같은 바람이 일어납니다. 곧 건강이 회복될 것 같은 흥분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복수초
복수초윤희경
복수초 ⓒ 윤희경

백석(白石) 시인은 장끼의 기운차게 구르는 소리를 '아침볕에 섭 구슬이 한가로이 익는 골짝에서 꿩은 울어 산울림과 장난을 한다'고 했습니다. 장끼와 까투리가 얼려서 산울림을 치는 산골짝의 아침정경이 사뭇 평화스럽습니다.

 

 산마늘
산마늘윤희경
산마늘 ⓒ 윤희경

그저께 아침인가 싶습니다. 아침을 여는 꿩 소리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이 무슨 행운인가 싶어 미친 사람처럼 밖으로 튀어나가 눈을 받아먹습니다. 봄눈을 받아먹으면 행운이 돌아온다 하지 않던가. 이미지도 찍어내고 부산을 떨어봅니다. 여기 올린 사진이 다 그날 아침에 찍은 것입니다. 특히 벌써 봄 마중을 끝내고 먼 길을 떠나려던 설중매와 복수초를 챙길 수 있어 여간 행운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이런 신나는 순간도 만날 수 있어서 세상은 살맛이 나는 가 봅니다.

 

 상사화
상사화윤희경
상사화 ⓒ 윤희경

백운거사가 한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겠으며, 바람 없는 삶이 또 어디 있더란 말이냐. 비바람이 몰아치고 꽃샘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야 꽃도 피고 봄이 오는 조물주의 오묘한 진리를 누가 막을 수 있더란 말이더냐.'

 

조금만 참으면 완연한 봄도 멀지 않으리.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웰촌,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윤희경 수필방을 방문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2009.03.29 11:5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웰촌,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윤희경 수필방을 방문하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변산 바람꽃 #설중매 #복수초 #산동백 #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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