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단받고 싶지 않은데요?

[28년째 초등교사가 말하는 초등교육 이야기 14] 3월 31일,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제점③

등록 2009.03.30 15:53수정 2009.03.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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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에 전국에 있는 4, 5, 6학년과 중학교 1, 2, 3학년을 대상으로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실시하는 일제고사 이름이 '교과학습 진단 평가'입니다. 교육청에서 각 학교 공문으로 내려 보낸 알림자료에 있는 내용을 보면, '교과학습 진단평가란 무엇인가요?'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 '교과학습 진단평가'는 학년 초에 학생들의 학력수준(출발점 행동)을 진단하기 위한 평가입니다.
○ 즉, 학생이 어떤 교과, 어떤 영역이 부족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부족한 부분을 지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 본래 각 학교별로 교사가 출제하여 실시하던 것을 '08년부터 업무경감 차원에서 주관교육청이 출제한 문제를 각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활용하여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진단 평가 결과는 어떻게 활용되나요?'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 평가 결과는 학교에서 학생 지도를 위한 자료로 활용합니다.
○ 평가 결과, 부족한 교과 및 영역에 대해서는 학급담임 또는 교과담당 교사가 학습부진학생 지도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보충지도를 시행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물건이 아닙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교육에서 진단 활동은 꼭 필요합니다.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진단 평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진단 평가를 전국에서 한 날 한 시에 같은 문제지로, 그것도 선다형 지필검사로 일제히 한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진단 평가는 가르치려는 사람이 가르칠 대상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해야 하는데, 일제고사로 하다보니 진단하는 방법이 전국 모든 아이들에 대해 다 똑같습니다.

이럴 때 교과부와 교육청에서 주장하는 것이 '표준화', '일반화', '객관적'이라는 말입니다. 교사나 학부모님들 중에서도 교과부와 교육청에서 하는 말처럼 '그래도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객관적으로 볼 필요는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교과부와 교육청, 교사들과 학부모님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건은 기본값에 따라 얼마든지 '표준화'할 수 있습니다. 물건의 경우에는 정해놓은 표준 수치를 집어넣으면 바로 표준에 '미달'과 '도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건의 경우에 평가 결과는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평가하더라도 늘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묘합니다. 아이들은 더 그렇습니다. 그날 날씨와 먹은 음식에 따라서도 행동과 마음이 달라지는 게 아이들입니다.


평가에서도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내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르고, 똑같은 문제를 내도 주변의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시험 감독으로 편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이 들어오느냐, 평소에 엄하고 무서운 선생님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집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언짢은 일이 있을 때는 더욱 달라집니다. 제가 그동안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에게 같은 문제를 주고 답을 하게 하면서 나온 숫자로 '표준화', '일반화', '객관화'를 말합니다. 교육청 알림 자료에 보면, 이번 진단 평가 결과를 '도달'과 '미도달'로 통지한다고 합니다. 딱 한 번 본 평가로 그 아이를 평가하면서 '너는 미도달이다'고 낙인을 찍는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평가 방법이 달라지면 도달인 아이들도 미도달일 수 있고, 미도달인 아이들도 도달로 나오기도 합니다. 누가 함부로 아이들을 '도달'과 '미도달' 둘로 진단할 수 있습니까?

진단평가한 대로 가르칠 수 없는 현실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단 한 번의 일제고사로 진단을 제대로 했다고 칩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과연 교육청 알림자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진단평가 결과에 따라 '부족한 영역을 보충해 주고 잘한 아이는 더 잘하게' 할 수 있나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교실에서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교육과정은 학년별 목표 설정이 되어 있고 학년마다 필수지도요소와 성취기준이 달라서, 학년과 교과마다 정해져 있는 필수지도요소를 그 학년에서 모두 가르쳐야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반드시 정해진 진도를 나가줘야 합니다. 다시 쉽게 말하면, 교실에서는 그야말로 1년 동안 정해진 진도를 빼기에도 무척 바쁩니다. 교사가 이미 뺀 진도에 포함된 내용을 모르는 아이들은 곧 학습 부진아가 되지만, 수업 시간에 앞으로 계속 나가야 할 진도가 있기 때문에 교사에겐 몇 아이 때문에 이미 진도를 뺀 내용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수십 명의 학급 아이들마다 학습정도가 다 다른데도 수업 시간에 못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다시 가르칠 수도 없고, 또 잘하는 아이 수준으로 수준을 높여서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세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저 교사들은 학습 목표에 나와 있는대로 성실하게 진도를 나갈 뿐입니다. 이것이 교실수업의 현실입니다.

난 진단 받고 싶지 않은데요?

교육청 알림글을 다시 보면 진단 평가를 보는 목적이 '학생이 어떤 교과, 어떤 영역이 부족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부족한 부분을 지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번에 선다형 지필검사방법으로 일제고사로 치르는 진단 평가는 '학생이 어떤 교과, 어떤 영역이 부족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없을뿐더러, '부족한 부분을 지도할 수도 없는' 진단 평가입니다.

자, 건강진단을 하려고 병원에 갔더니 병원 시설도 엉망이고, 의료진 수준도 믿을 수 없고, 게다가 검진 방법이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또 건강진단만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아무 조치도 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래도 계속 건강진단은 중요하니까 건강진단을 해보라고 권유할 수 있나요? 병원 대신 다른 식의 진단을 찾아볼 것을 권유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또 아무리 병원시설과 의료진이 훌륭하고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해 낸다 해도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거나 진단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을 과연 강제로 건강진단하게 할 수 있나요? 건강진단 안 받겠다는 아이나 부모를 처벌할 수 있나요? 결국 진단평가도 건강진단처럼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인 만큼 당사자인 아이가 진단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를 강제할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보호자인 학부모가 진단받지 않겠다고 하면 교사도 교육청도 교과부도 그 어떤 법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수요자의 요구'입니다.

교사를 포함한 교과부와 교육청과 학교는 수요자인 아이에게 하는 모든 교육활동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교과부와 교육청은 '학부모의 알 권리'와 '수요자(학부모)의 요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학부모의 알 권리'와 '수요자 요구'는 교과부와 교육청 입맛에 맞게, 또는 유리하게만 적용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학부모의 알 권리'와 '수요자의 요구'라면 교과부와 교육청에 필요한 내용이나 좋은 점만 적극 홍보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면과 다른 생각도 함께 알려야 맞습니다. 일제고사로 치러지는 진단평가에 대해서도 교과부와 교육청은 '좋은 점'만 과장해서 홍보하고 있을 뿐, 좋지 않은 점은 한 가지도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업무 경감은 시양합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은 이번 진단평가를 '2008년부터 업무경감 차원에서 주관교육청이 출제한 문제를 각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활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는데, 진단 평가 문제 출제는 교사들에게 '경감해주어야 할 업무'가 아닌 교사들이 꼭 해야 할 업무입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은 마음에 들지도 않는 문제 하나 겨우 출제해서 보내주고 '업무 경감'해 줬다고 생색을 내고 있는데, 그 대신 그 문제로 치러지는 진단 평가 업무와 관련해서 수업에 쏟아지는 공문과 업무는 또 무엇입니까?

진단 평가 출제는 교사들이 기꺼이 하겠습니다. 교사를 믿지 못해서 문제를 꼭 출제해 주시고 싶다면 다양한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평가문항을 다양하게 출제한 문제 은행을, 필요한 교사가 활용할 수 있게 학교에 보급해 주시면 됩니다.

진단평가 문제 출제 업무 말고 교과부와 교육청이 경감해줘야 할 업무는 참으로 많습니다.

"제발 학교에 보내는 공문은 한번 읽으면 누구라도 해독이 가능하게 써 보내주시고, 학교에 필요하지 않은 공문은 보내지 마시고, 같은 내용의 공문 두세 번씩 보고하지 않게 해 주시고, 수업 빠지면서 출장 가지 않게 해 주시고, 내용이 부실한 교육청 주관 연수에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한 명씩' 참여하지 않게 해 주시고, 교육청 행사로 수업 결손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교사들이 업무 처리보다 수업에 더 열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덧붙이는 글 | 허접한 문제 출제하고 OMR카드 답지 대행해서 채점해 주면서, 진단 평가 업무를 경감해 주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고사와 관련한 공문과 업무가 쏟아집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에 이 일제고사가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허접한 문제 출제하고 OMR카드 답지 대행해서 채점해 주면서, 진단 평가 업무를 경감해 주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고사와 관련한 공문과 업무가 쏟아집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에 이 일제고사가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일제고사 #진단평가 #교육과학부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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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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